[메가시론] 어른거리는 자영업 대란의 그림자
[메가시론] 어른거리는 자영업 대란의 그림자
  • 박해옥
  • 승인 2019.03.01 09: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일자리 부족이 우리 사회의 현안이 된 지 오래다. 대통령이 청와대 여민관 집무실에 일자리 상황판까지 걸어두고 정부의 분발을 촉구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더 악화되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악화하는 속도마저 빨라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2017년만 해도 전년에 비해 늘어난 일자리 수가 31만을 웃돌았다. 통계청이 매달 중순경 내놓는 직전 월의 전년 동월비 일자리 증가폭 평균치가 그 정도였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 수치는 지난해 9만7000명으로 급감했다. 당황한 정부가 올해엔 심기일전해 증가폭을 15만으로 늘리겠다고 약속했지만 이행이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많다.

[사진 = 연합뉴스]
[사진 = 연합뉴스]

그 이유가 무엇이든 일자리 문제의 단기간 내 해결은 기대난망이다. 설사 정책 오류가 원인이라 하더라도 정치적 이해가 얽혀 있는 만큼 당장 획기적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흔히 보아왔듯이 나름의 철학이 가미된 정부 정책은 정권과 운명을 같이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지금 같은 저성장기에 일자리가 남아돈다면 오히려 그게 이상한 일이긴 하다. 일본의 경우 구인난에 시달린다지만, 현지 사정을 잘 아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곳 상황도 그리 낙관적인 것만은 아닌 듯하다. 매장 점원이나 기타 일용직 등의 일자리가 넘치는 건 사실이지만 양질의 일자리는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임금 수준이 물가에 비해 낮은데 따른 불만도 팽배해 있다고 한다. 복지마저 유럽국들에 비해 뒤지는 탓에 부자 나라의 가난한 백성들이기는 우리나 매한가지란다.

그래도 그들이 우리보다 나은 건 중위소득 이하의 가구원들이 의지만 있으면 무엇이든 일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의 경우 그마저 여의치 않으니 문제다.

통계청의 가계동향조사 자료에 의하면 지난해 4분기 기준 소득 1분위(하위 20%) 가구의 월평균 근로소득은 43만500원이었다. 일해서 버는 돈이 고작 그 정도라는 뜻이다. 1분위 가구의 월평균 소득 123만8000원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은 이전소득(58만5100원)이었다. 1분위 가구 상당수가 사실상 정부 지원을 업고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자료다. 지난해 4분기 기준 1분위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1년 전 동기에 비해 17.7%, 근로소득은 36.8%나 줄어들었다.

1분위 가구의 소득이 이렇게 쪼그라든 건 일본에선 넘쳐난다는 임시직·일용직이 최저임금 인상 등 정책적 이유로 인해 크게 줄어든 데서 비롯됐다. 그 수가 20만개 이상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1분위 가구 소득의 급격한 감소를 자영업자의 몰락에서 찾는 견해도 있다. 통계청도 비슷한 취지의 분석을 제시했듯이, 2분위 언저리에 있던 자영업자 가구 상당수가 사업 부진 또는 폐업으로 인해 1분위로 추락한 것이 원인 중 하나이리라는 뜻이다.

자영업 전반의 위기는 사람 많이 몰리기로 유명한 종로 1가만 나가봐도 금세 느낄 수 있다. 요즘 이곳에 나가보면 뒷골목은 말할 것도 없고 큰길가의 점포들마저 흉물스럽게 비워져 있는 곳이 적지 않다. 해당 점포의 유리창엔 으레 임대문의 전화번호가 붙어 있다. 굳이 종로 1가를 예로 든 건 종로가 원래 번화가인데다, 예부터 1~6가 순으로 숫자에 맞게 10~60대가 주로 몰리는 곳이라는 점 때문이다. 종로에서도 젊은이들이 주로 몰린다는 종로 1가가 그 정도라면 다른 곳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영업은 실직자, 구직 실패자들을 유인하는 함정이 되고 있다.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주변을 보면 어쩔 수 없이 불나방이 된 심정으로 자영업에 뛰어들려는 이들이 적지 않다. 임시직·일용직마저 구하기가 여의치 않으니 갈 곳이 자영업밖에 없어 벌어지는 현상이다.

더구나 올해는 소위 ‘58년 개띠’들이 대거 자영업에 뛰어들 가능성이 큰 시점이다. 지난해 환갑을 맞아 직장에서 대거 은퇴했을 그들이 수개월에 걸친 백수의 무료함을 견디지 못해 움직이기 시작할 법한 시기와 맞물리는 때가 올해다.

‘뺑뺑이 고교 입시’ 1기인 ‘58년 개띠’는 우리 사회가 새 질서에 의해 재편되는 시대를 모르모토처럼 살아온 이들이다. 그들은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 출생자)의 중심이면서 그 수가 워낙 많아 남들보다 더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왔다. 그들 동년배만 80만을 넘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들 중 상당수가 떼밀리듯 또는 호시탐탐 자영업의 세계에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다. 자칫 자영업 대란 속에 새로운 재앙이 닥칠 가능성이 무르익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자영업 진출을 말리는 정책이 발등의 불이 된 이유다.

그 해답은 역시 그들을 수용할 일자리다. 그들 다수가 스스로 인정하고 있듯이 이전 같은 번듯한 일자리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자녀들 독립시키고 부부가 오붓하게 남아 생활할 수 있는 정도의 소득만 올리면 족하다는 장삼이사들의 기본 요구를 충족시켜준다면 구태여 낯선 자영업의 세계에 뛰어들 이유도 없는 게 그들이다.

은퇴한 58년 개띠들 중 상당수에게는 현 정부가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월급기준 최저임금 174만5150원이 사치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174만5150원은 최저시급에 맞춰 하루 8시간씩 주5일 근무를 하고 주휴수당까지 챙길 경우 받을 수 있는 최저임금이다. 월급을 기준으로 최저임금 고시를 하는 사업주는 최소한 이 액수 이상을 근로자에게 지급해야 한다. 정부가 지난해 연말 각의에서 강행 처리한 최저임금법 시행령 개정안이 그 근거 규정이다.

그 바람에 많은 영세 사업주들은 주휴수당 지급 대신 사람 자르는 쪽을 선택하게 됐다. ‘일자리 정부’를 표방한 문재인 정부가 오히려 저임금 근로자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역설적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당장 급한 과제는 ‘58년 개띠’들의 무모한 자영업 진출을 막는 일이다. 그러려면 먼저 정책적 노력으로 그들이 일할 기반을 마련해주어야 한다. 현실적 대안은 최저임금, 주 52시간 근무제의 유연한 적용이다. 입법을 통한 보완이 필요하다면 그렇게 해서라도 꼭 이뤄야 할 과제들이다.

그리고 나서 정부가 그들에게 웬만하면 자영업하지 말라고 자신 있게 말해야 한다. 그게 수많은 ‘58년 개띠’들과 줄지어 은퇴 대기 중인 나머지 베이비부머들을 위해, 그리고 국가 경제를 위해 두루두루 좋은 일이다.

박해옥 업다운뉴스 주필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