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수출 보복과 진정한 되갚음
일본의 수출 보복과 진정한 되갚음
  • 조재원
  • 승인 2019.07.01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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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정부, 강제징용피해자 판결에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 조치 발표
소재부품산업 고도화로 일본 의존도에서 벗어나는 계기 삼아야

'설마‘했던 사태가 벌어졌다. 1일 일본 정부가 반도체 제조 등에 필요한 핵심 소재 등의 대(對) 한국 수출 규제 조치를 발표했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한국대법원 첫 배상 판결이 나온지 지 8개월여 만에 본격적인 보복에 나선 것이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이날 한국으로의 수출관리 규정을 개정해 스마트폰 및 TV에 사용되는 반도체 등의 제조 과정에 필요한 3개 품목의 수출 규제를 강화한다고 발표했다. 과거사 문제에서 시작된 외교 문제를 통상 문제로 전환시켜 버린 행태다.

‘대한민국 수출관리 운용 재검토에 관해서’라는 제하의 경제산업성 뉴스릴리스에 따르면, “경제산업성은 외국환 및 외국무역법(외환법)에 의거한 수출관리를 적절히 실시하는 관점에서 대한민국용 수출에 대해 엄격한 제도를 운용한다”고 돼 있다.

이어 “수출관리제도는 국제적인 신뢰관계를 바탕으로 구축되고 있으나 관련 부처에서 검토한 결과 한·일간 신뢰관계가 현저히 손상되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한민국과 신뢰관계 아래 수출관리에 임하는 것이 어려워지고 있는 데다, 대한민국과 관련된 수출관리를 둘러싸고 부적절한 사안이 발생함에 따라 수출관리를 적절하게 실시한다는 관점에서 엄격한 제도운용을 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그래픽= 연합뉴스]
일본 정부가 1일 기습적으로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핵심 소재에 대한 수출 규제 조치를 내렸다. 이에 한국 정부는 신속히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를 검토하는 등 한일 양국간 대치가 최악의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그래픽= 연합뉴스]

 

그러면서 일본 경제산업성은 두 가지 보복조치를 발표했다. 첫째는 “대한민국에 관한 수출 관리상의 카테고리 재검토”였다. 1일부터 대한민국에 관한 수출 관리상의 카테고리 개정을 위해 외환법 상 이른바 ‘화이트(백색) 국가’에서 대한민국을 삭제하기 위한 시행령 개정에 대해서 의견수렴을 개시한다는 내용이다.

둘째는 “특정 품목의 포괄 수출허가에서 개별 수출허가에 대한 전환” 조치였다. 오는 4일부터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리지스트, 에칭가스의 대한민국 수출 및 이와 관련된 제조 기술의 이전(제조 설비의 수출에 따른 것도 포함)을 포괄 수출허가 제도의 대상에서 제외하고 건별로 수출허가 신청을 요구, 수출 심사를 실시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일본 정부가 규제하겠다는 세 품목은 스마트폰의 디스플레이 등에 사용되는 플루오린 폴리이미드와, 반도체 기판 제작 때 쓰는 감광제인 리지스트, 그리고 반도체 세정에 사용하는 에칭가스(고순도불화수소)다.

일본 정부는 그동안 이들 품목의 한국 수출 절차를 간소화하는 우대 조치를 취해왔으나 4일부터는 이 조치에서 제외하고 수출규제를 가하겠다는 방침이다. 우대 대상에서 제외되면 수출 계약별로 90일가량 걸리는 일본 정부 당국의 승인절차를 거쳐야 한다.

일본 정부는 또 한국에 대한 통신기기 및 첨단소재의 수출 통제를 강화하는 대책을 검토하겠다는 의도다. 이를 위해 외환법에 따른 우대 대상인 '화이트(백색) 국가' 리스트에서 한국을 빼기로 하고 시행령 변경 절차에 들어가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집적회로 등 일본의 국가안보에 관계된 제품을 한국에 수출할 때마다 건별로 일본 정부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일본 정부는 의견 수렴 절차를 거쳐 오는 8월 중 시행령을 개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은 현재 한국과 미국, 영국 등 27개국에 ‘백색국가’ 우대를 부여하고 있다.

이번 보복조치는 바로 하루 전 일본 산케이신문에 의해 미리 보도됐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보도의 진위를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단순 위협용’이 아니겠느냐는 조심스런 추측까지 나왔다. 이같은 내용의 보복조치가 시행되면 한국 업체 뿐만 아니라 일본 관련 업계에도 적잖은 피해를 줄 수 있어서다.

 

[사진= 연합뉴스]
[사진= 연합뉴스]

 

7월 첫날 들려온 일본의 대(對)한 수출규제 발표는 오사카 주요 20개국(G20) 공동선언문의 정신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공동선언문을 주도한 장본인이 아베 총리여서 비난은 커질 전망이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G20 회의 당시 아베 총리는 다른 19개국을 대표해 공동성명에 들어갈 '자유무역' 관련 문구를 둘러싸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협상하는 역할을 했는데 그 결과 “자유롭고 공평하며 무차별적이고 투명성이 있는 무역과 투자 환경”이라는 문구가 들어갔다는 것이다. G20 의장국으로서 '자유무역의 중요성'을 강조한 지 이틀 만에 스스로 말을 뒤집는 이율배반적인 조처를 한 셈이다.

아베 총리는 오사카 회의 당시 G20 국가 중 유일하게 문재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거부하며 강한 불신을 드러냈다. 하지만 세계 경제를 선도하는 정상국가가 이틀만에 이처럼 ‘기습적인’ 경제보복 조치를 취하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일본의 보복조치가 국내 업계에 미치는 파장이 간단치 않다고 판단한 정부는 신속히 강력한 대응에 나섰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1일 서울 무역보험공사에서 열린 수출상황점검회의에서 이번 일본 정부의 결정은 WTO 협정에서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오사카 G20 정상회의 선언문에서 명시한 '자유롭고 공정한 무역' 원칙에도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아울러 성 장관은 일본 정부가 발표한 대(對) 한국 수출 규제와 관련,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를 비롯해 필요한 대응조치를 취하겠다고 경고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일본의 수출 규제에 대응해 국내 부품·소재·장비 산업의 경쟁력 제고 방안에 대해서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정부는 이날 오전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관계부처 장관과 청와대, 외교부 고위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회의를 열고 대응 방향에 대해 숙의했다. 또 외교부는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 일본대사를 도렴동 청사로 초치해 일본 정부의 '경제 보복 조치'에 대해 항의하고 유감을 표시했다.

국내 관련 업계는 미·중 통상전쟁 장기화, 글로벌 IT 시장 수요 정체 등에 따른 불확실성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또 다른 대형 악재가 추가되자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는 분위기다. 가뜩이나 내수 침체에 수출 부진까지 겹친 가운데 그나마 우리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산업마저 위협받을 수 있어서다.

일본이 수출 규제 대상에 올린 3개 품목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산업 등에서 필수 소재로 꼽히는 핵심 소재다. 플루오린 폴리이미드와 리지스트는 세계 전체 생산량의 90%, 에칭가스는 약 70%를 일본이 점유하고 있다. 일본에서 이들 소재를 공급받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한국기업들의 피해가 불가피해 보이는 이유다.

아직 전면적인 수출 금지가 아닌 수출 절차 강화 수준이라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일본 의존도가 높은 소재인데다 사태가 장기화할 수 있어 최악의 경우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일단 관련 업체들은 재고 점검과 대체 수입선 확보에 나서면서 사태추이를 살펴볼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한일 간 ‘강대강 대치’ 국면이 단시일내에 해소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징용 배상 문제가 풀리지 않는 한 한국에 대한 수출을 허가하지 않겠다는 게 일본 정부의 방침인 것으로 알려져 사실상의 금수 조치로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공식환영식에서 의장국인 일본 아베 신조 총리와 악수한 뒤 이동하고 있다. 당시 정상회의를 거부했던 아베 총리는 정상회의 폐막 이틀만에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대법원의 배상 판결과 관련해 한국에 수출 보복조치를 내렸다. [사진= 연합뉴스]

 

일본의 '기습 공격'에 한국이 WTO라는 '초강수'로 맞선 가운데 양국의 정치 셈법이 크게 작용하면서 단기간 내에 합의점 도출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다만 이번 조치가 미국과 유럽 등의 기업에도 연쇄적인 타격을 줄 수 있고, '외교 보복' 차원의 무리수라는 비판도 나올 수 있다는 점은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일각에서는 우리 기업이 이번 수출 규제 품목의 대체 조달 역량을 갖추고 있어 사태가 장기화하지 않을 경우 오히려 경쟁력이 높아질 수 있다는 낙관론도 조심스레 나오고 있다.

위기는 곧 기회가 될 수 있다. 영원한 우군도 적도 없는 냉엄한 국제 질서를 새삼 깨닫고 우리 경제체질을 강화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이번 일본의 ‘기습적인 보복조치’를 계기로 한국 경제의 취약점을 재점검하고 핵심 소재부품의 개발과 수입선 다변화 등을 추구하는 적극적인 계기로 삼아야한다. 그동안 일본의 소재부품 산업에 대한 우리 경제의 높은 의존도에 대한 우려가 지속적으로 제기돼왔으나 여전히 안주해왔던 게 현실이다.

한국 대법원은 지난해 10월 30일 징용 피해자들이 배치됐던 일본제철(구 신일철주금)을 시작으로 위자료 지급을 명령하는 판결을 잇따라 내렸다. 그러자 일본 정부는 1965년 체결된 한일청구권협정을 근거로 국제법 위반 상태라며 한국 정부에 시정을 요구해왔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사법부 판결에 개입할 수 없다며 피해자 중심의 해법을 모색한다는 기조를 유지해왔다. 이에 일본 정부는 청구권협정에 규정된 분쟁처리 절차를 주장하며 중재위 가동을 끈질기게 요구해왔다.

당시 대법원은, 청구권협정이 제한한 청구권은 양국 간 합법적 관계에서 발생한 재정적·민사적 채무관계에 따른 청구권에 한하고, 강제징용 피해에 대한 배상청구권 등 불법적 관계에서 발생한 청구권은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일본 정부는 한일청구권협정만 내세울 게 아니라 대한민국 사법부의 최종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 그것이 보편적 인륜에 부합하는 길이다.

1989년 일본의 고무로 나오키 박사는 '한국의 붕괴'라는 책에서 한국 경제를 '가마우지 경제'라고 비판했다. 한국 경제는 목줄이 묶인 양쯔강의 가마우지처럼 목줄이 묶여 물고기를 삼켜도 곧바로 주인에게 바치는 구조라는 비판이었다.

목을 끈으로 묶어 물고기를 잡아도 삼키지 못하게 하고 어부가 가로채는 가마우지 낚시법에 한국경제를 빗댄 것으로, '목줄'은 '소재부품산업'을, 생선은 '완제품'을, 주인은 '일본'을 지칭했다. 선진국 따라잡기를 통해 일군 '한강의 기적'에 취한 한국 경제의 최대 약점을 꼬집은 내용이어서 그후 한국 경제를 비판할 때 자주 인용되곤 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의 소재부품 산업은 일천하기 그지없었다. 1999년 일본의 오마에 겐이치라는 평론가가 한국은 소재부품 산업을 육성하지 않아 재생하기 어렵다고 단언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이에 김대중 대통령은 소재부품산업 육성을 위한 특별대책 강구를 지시했고 2002년 특별법이 제정되며 비로소 소재부품산업 육성에 눈을 떴다. 투자한 결과 한국은 2015년에 중국 미국 독일 일본에 이어 교역규모 5위 권의 소재부품산업 강국이 되었다. 

공공데이터포털에 따르면, 2018년 우리 소재·부품은 수출 3162억 달러, 수입 1772억 달러, 무역흑자 1391억 달러(246억 달러 증가)를 기록했다. 소재부품 강국으로서 위상이 변화했다. 그럼에도 한국 소재부품산업은 시장 선도자보다는 여전히 추격자에 더 가깝다.

선진국과의 격차가 줄어들기는 했지만 일본 등 선진국에 여전히 종속된 분야가 적지 않다. 특히, 소재부품 대일본 무역수지 적자는 과거에 비해 큰 폭으로 줄어들기는 했지만 2018년에도 151억 달러(수출 137억, 수입 288억)에 달했다. 소재부품의 고도화가 시급한 이유다.    

일련의 사태를 보면 아베 총리가 트럼프식 무역협상 방식을 따라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나오고 있다. 진위야 어떻든 한일 무역관계는 막대한 대(對)중국 무역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미국이 중국에 제기하고 있는 무역 상황과는 차원이 다르다. 오히려 일본은 한국으로부터 엄청난 무역흑자를 지속적으로 기록해온 당사국이기 때문이다. 1965년 국교정상화 이후 한국의 대일 무역적자 금액은 무려 700조원에 이른다.   

이번 대(對)한국 수출 보복조치와 관련해 일본 내에서도 중장기적으로 한국기업의 '탈(脫)일본'을 초래할 것이라는 비판 여론이 제기되고 있다고 한다. 당장 우리 경제에는 큰 악재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피해갈 수 없다면 지혜롭게 돌파해 대일 무역역조를 바로잡는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정부와 업계가 하나가 돼 치밀한 장단기적 계획 아래 소재부품산업의 고도화를 통해 ‘탈일본’를 가속시키는 호기로 전환시키길 기원해 본다.

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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