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가시론] 대(對)한국수출규제가 소환하는 군국주의 망령
[메가시론] 대(對)한국수출규제가 소환하는 군국주의 망령
  • 류수근
  • 승인 2019.07.27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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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막무가내식 대(對) 한국 수출규제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려하고 있다. 일본이 한국을 수출절차 간소화 우대국가에서 제외하는 절차를 예정대로 진행할 것으로 전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26일 일본의 최대 유력지인 요미우리신문은 일본 정부가 이르면 내달 2일 열리는 각의에서 한국을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 대상에서 제외하는 수출무역관리령(정령) 개정안을 처리하는 방향으로 최종 조율 중이라고 보도했다.

이날 각의에서 시행령 개정안이 처리되면 세코 히로시게 경제산업상 서명과 아베 신조 총리의 연서에 이어 나루히토 일왕이 한국의 화이트리스트 제외를 공포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그 시점부터 21일 후부터 시행한다. 이대로 진행되면 시행 시점은 8월 하순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래픽= 연합뉴스]
[그래픽= 연합뉴스]

 

앞서 일본 주무부처인 경제산업성은 지난 1일부터 24일까지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내용의 개정안에 대한 국내외의 각계 의견을 받았다. 이 신문에 따르면 의견은 3만여 건이 접수됐고 이중 90% 이상이 한국에 혜택을 주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고 전해진다. 경산성은 이들 의견을 정리한 내용을 내달 1일 공개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이 화이트 리스트에서 제외되면 일본 기업이 한국으로 수출할 때 식품, 목재를 제외한 거의 전 품목에서 일일이 허가를 받아야 한다. 새로운 조치를 적용받는 품목은 857개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우리 기업이 일본 제품을 수입하려면 서약서를 비롯한 추가서류를 내야 하는 등 절차가 복잡해지는 데다 일본 정부는 자의적으로 수출을 불허할 수도 있어 한·일 간 원활한 무역은 사실상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 정부는 지난 24일 이런 방침의 철회를 요구하는 의견서를 전달하는 등 상황 악화를 막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일본의 입장은 요지부동이다. 현재로서는 한국 쪽에 유리한 미국의 중재를 기대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화이트리스트 제외라는 상황에 이르면 우리의 주요 산업은 타격을 받을 것이 분명하다. 아베 총리는 이 점을 노리고 한국에 대한 강경 입장을 고수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피해는 한국에만 미치지 않는다. 피해의 경중은 있겠지만 일본도 피해가 불가피하다.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 한국의 대 일본 무역수지 적자는 6046억 달러로 700조 원이 넘는다. 지난해에도 소재 부품 부문 151.3억 달러를 포함해 모두 240.8억 달러의 적자를 봤다. 이를 역으로 생각하면 한·일 무역관계가 어그러지만 일본 기업의 피해도 그만큼 커질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공식환영식에서 의장국인 일본 아베 신조 총리와 악수한 뒤 이동하고 있다. 당시 정상회의를 거부했던 아베 총리는 정상회의 폐막 이틀만에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대법원의 배상 판결과 관련해 한국에 수출 보복조치를 내렸다. [사진=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공식환영식에서 의장국인 일본 아베 신조 총리와 악수한 뒤 이동하고 있다. 당시 정상회의를 거부했던 아베 총리는 정상회의 폐막 이틀만에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대법원의 배상 판결과 관련해 한국에 수출 보복조치를 내렸다. [사진= 연합뉴스]

 

한국에 부품을 수출하던 기업들은 당장 피해가 커질 것이고, 한국 내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심화하면서 한국시장에서 돈을 벌던 기업들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한국여행객들이 더 줄어들면서 일본 지역 경제에도 악영향을 끼칠 것이다. 대한민국의 산업이 타격을 받을 경우 우리 제품을 수입해서 중간재, 혹은 최종재로 쓰는 전 세계 경제의 공급망도 연쇄적으로 타격받을 수밖에 없다. 장차 그에 따른 비판도 일본에 돌아갈 것이다.

아베 총리와 일본 각의 대신들이 이런 사실을 모를 일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대 한국수출규제 절차는 오랫동안 치밀하게 준비한 듯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는 느낌이다. 빈약한 논리에도 불구하고 아베 총리가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대 한국수출규제 조치를 밀어붙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참의원 선거 때까지만 해도 선거에서의 대승 목적이 큰 만큼 선거 후에는 해결 실마리가 풀리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조심스럽게 나돌았다. 하지만 참의원 선거에서 어느정도 만족할 만한 승리를 거둔 이후에도 전혀 일정을 늦출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래픽=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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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애당초 대 한국수출규제의 이면에 ‘다른 속마음’이 있다고밖에는 해석할 수 없다. 내외신과 전문가들의 말을 종합하면 크게는 세 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듯하다.

하나는 ‘전쟁이 가능한 나라’를 만들기 위한 ‘평화헌법 개정’과 군사 대국화를 위해 우익을 지속적으로 결집시킬 필요가 있어서다.

이를 위해서는 우익들에게 눈엣가시처럼 보이는 한국정부 때리기는 좋은 대상이 될 수 있다. 한국을 때릴수록 일본 우익은 똘똘 뭉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더 이상 한국 경제의 발전을 가만히 지켜볼 수 없다는 위기감일 것이다. ‘잃어버린 20년’을 보내며 일본이 혁신의 기운을 잃은 사이,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에서 세계 최강국이 되었고, 스마트폰에 이어 5G 선도국이 되었다.

최근에는 비메모리 반도체, 전기차와 수소차 등 친환경차 중심으로 투자를 늘리며 선도국 지위를 넓히려 하고 있다. 일본으로서는 더 이상 가만히 보고 있을 수 없게 됐다는 분석이다.

마지막으로, 아베 총리를 비롯한 현재의 주요 일본 내각 구성원의 철학적 바탕에 근대부터 이어져온 일본의 우월주의·군국주의 사상이 뿌리박고 있다는 해석이다. 강한 일본을 위해서는 다소간의 희생은 감소할 수 있고, 상대적으로 약한 국가의 도전은 용납할 수 없다는 사상이 바탕에 깔려있다고 보는 견해다.

역사를 보면 그 나라의 속성을 상당부분 이해할 수 있다. 특히 역사적인 과오에 대한 단죄를 하지 못한 나라는 과거의 역사관이 악습처럼 그대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일본은 경제면에서는 선진국이지만 정치나 사회적으로는 서구와는 전혀 다른 정서를 가진 나라다. 중세에는 ‘칼’을 든 사무라이가 지배하는 막부가 통치하는 정치체제였고, 근대에는 천황주권설과 군국주의로 무장해 한국 등을 식민지화하고 태평양전쟁까지 일으키며 아시아 각국을 침탈한 역사를 가진 나라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지난 2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일본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 관련 정부 의견서 제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이날 우리 정부는 불충분한 사유에 기인한 일본 정부의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강화 조치에 대해 유감의 뜻과 개정안 철회의 내용을 담은 의견서를 일본 정부에 전달했다. [사진= 연합뉴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지난 2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일본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 관련 정부 의견서 제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이날 우리 정부는 불충분한 사유에 기인한 일본 정부의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강화 조치에 대해 유감의 뜻과 개정안 철회의 내용을 담은 의견서를 일본 정부에 전달했다. [사진= 연합뉴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연합국에 무릎을 꿇었지만 여전히 전쟁 피해국에 진정한 사과를 하지 않으며 일왕을 신성시하는 군주국이다. 일본이 연합국에 항복한 건 불변의 역사적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일본 내에는 그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꽤 많다.

이들은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항복할 당시, 쇼와 일왕이 행한 방송은 ‘옥음(玉音·임금님의 목소리)방송’으로 ‘항복’이라는 말이 들어있지 않은 ‘종전(終戰) 조서’였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저 전쟁이 끝났다는 사실을 ‘천황’이 ‘신민’에게 알렸다는 논리다.

또 이들은 아시아 각국을 강제로 침략한 게 아니라 서구열강의 식민지배로부터 벗어나 아시아 국가들의 ‘공영’을 되찾으려 했다는 ‘대동아공영권’이나, 일본 식민지배를 통해 아시아 각국들의 근대화를 도왔다는 ‘식민지근대화론’ 같은 억지논리를 신봉한다. 이런 바탕에서 전쟁범죄 사실들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려 든다.

아베 신조 총리와 그의 가계를 살펴보면 이런 분석은 상당한 신빙성을 얻는다.

아베 총리는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 부친인 아베 신타로에 이어 3대째 일본 우익을 떠받치고 있는 대표적인 정치인이다.

일본 우익의 원조격인 기시 전 총리는 일제의 괴뢰정부였던 만주국 정부를 경영한 5걸 중 한 명이었고, 태평양전쟁의 최대 전범으로 꼽힌 도조 히데키 내각에서 대신도 지냈다. 이로 인해 도쿄전범재판소에 의해 A급 전범 용의자로 기소되기도 했다. 전후에는 자민당 결성에 이바지했고 총리도 지냈다. 일본의 밀실정치를 대표하는 인물이기도 했다.

일본인의 성격을 말할 때 ‘혼네(속마음)’와 ‘다테마에(겉마음)’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오랜 역사 동안 ‘칼’과 ‘전쟁’이 지배한 사회에서 자연스레 생긴 생존방식이었을 터다.

외할아버지 기시와 외손자 아베가 세대를 뛰어넘어 가장 존경한 인물을 보면 아베 총리의 '혼네‘에 더 근접할 수 있다. 바로 요시다 쇼인이라는 역사적 인물이다.

기시와 아베는 도쿄에서 출생했지만 성장한 곳과 지역구 기반은 일본 본토의 서부에 위치한 야마구치 현이다. 이곳은 메이지유신 전에는 ‘조슈(長州)번’이었던 지역으로, 이곳 출신들이 ‘사쓰(薩摩)번’(현재 가고시마 현)과 함께 ‘사쓰마-조슈 동맹’을 맺어 도쿠가와 막부를 무너뜨리고 메이지유신을 성공시키며 왕정복고를 이뤘다. 일본의 근대 군국주의의 철학적 기반이 태동한 곳이기도 하고 이를 실행에 옮긴 주역들이 태어나고 자라난 곳이기도 하다.

그 정신적인 지주가 된 인물이 바로 ‘조슈’ 출신의 요시다 쇼인이었다. 현재 야마구치현의 하기시에서 태어난 그는 이곳에 개인학당인 ‘쇼카손주쿠(松下村塾)’를 세워 ‘일군만민론(一君万民論)’이라는 천황주의를 설파하고 막부타도와 왕정복고의 이론적 기반을 세웠다. ‘조선을 정벌해야 한다’는 정한론을 최초로 펼친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의 저서에서 “홋카이도를 개척, 류큐(琉球·현재 오키나와로 당시는 독립국)를 일본 땅으로 하며, 조선을 속국화하고, 북으로 만주를 점령하고, 남으로 대만과 필리핀 루손 일대를 노획한다. 열강과 교역에서 잃은 국부와 토지를 조선과 만주에서 보상받아야 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유지를 이어받는 이외에 다른 길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주장은 조선의 식민지화는 물론 일제가 태평양전쟁의 논리로 세운 ‘대동아공영권’의 논리적 토대가 되었고, 현재까지도 일본의 극우 세력은 이 논리를 신봉하고 있다.

요시다 쇼인 밑에서 80여명의 문하생이 배출됐다. 그 중에는 조슈번 출신으로 ‘존왕양이’의 지사로 통한 다카스키 신사쿠, 메이지유신 3걸로 꼽히는 기도 다카요시, 스승의 정한론을 실천한 이토 히로부미 등 근대 군국주의 일본을 대표하는 인물들이 대부분이다.

이런 역사적 철학을 유산처럼 물려받은 아베 총리라면 일본에 위협이 될 수 있는 한국을 더 이상 좌시하고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렇다할 만한 근거도 없이 전략물자 통제 미흡 등을 이유로 둘러대며 한국을 오랜 적국 대하듯 신뢰할 수 없는 나라로 거칠게 몰아붙이는 속내를 읽는데 단초가 될 수 있을 듯하다.

우리 대법원이 일본 기업에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배상 판결을 계기로 한국 보복에 나선 아베 총리의 대 한국수출규제가 조기에 원만히 해결되기를 기대하기 어려운 이유다.

 

[그래픽= 연합뉴스]
[그래픽= 연합뉴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대 한국수출규제과 관련한 화이트리스트 의견수렴이 어떤 식으로 모아졌을지는 보지 않아도 뻔하지 않을까 싶다. 이번 정령 개정안에 대한 의견수렴 과정은 어차피 요식행위에 불과하다고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베 총리는 오사카G20 정상회의에서 주관국으로서 ‘자유무역’을 외친지 이틀만에 이율배반적인 반도체 소재라는 급소를 찌르며 대 한국수출규제 카드를 전격 들고 나왔다.

여기서 아베 총리가 명심해야 할 게 있다. 일본에 극단적인 논리를 펴며 경제 분야로 확전하는 것은 명분도 없고 신뢰 훼손을 자초하는 일이라는 사실이다.

이 문제로 세계 경제에 혼란을 준다면 앞으로 누가 일본을 자유무역 국가로 평가해줄 것인가.

한국이 무조건 무릎 꿇고 나오기를 기대한다면 큰 오산이다. 한국경제가 당분간은 힘든 과정을 겪겠지만 얼토당토않은 수출규제가 가져온 우리 국민의 분노가 한국 경제의 약점을 보강하는 계기로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 아무리 진실을 덮고 바꾸려해도 역사적 진실은 불변하다는 사실도 명심해야 한다.

그간 원만한 한·일 관계 속에서 우리는 일본의 정체를 잠시 깜빡 잊고 있었다. 우리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으킨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그리고 일제에 의한 국권침탈로 무수한 목숨을 잃고 헤아릴 수 없는 고통과 피해를 경험했지만 윤택한 시절을 살면서 그 아픔을 점차 잊어가고 있었다.

한데 일본은 ‘가깝고도 먼 나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이번 일본의 대 한국수출규제를 계기로 일본에 대한 역사적 자각과 국제 관계의 냉엄한 힘의 논리를 뼈저리게 되새겨야 한다.

아널드 토인비는 “인류에게 가장 큰 비극은 지나간 역사에서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한다는 데 있다”고 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대표필자 편집인 류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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