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가시론] 화성연쇄살인사건 범인, 공소시효 완성에도 끝까지 규명해야 하는 국가적 책무
[메가시론] 화성연쇄살인사건 범인, 공소시효 완성에도 끝까지 규명해야 하는 국가적 책무
  • 류수근
  • 승인 2019.09.19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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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에서 지켜야 할 기본적인 질서나 도리를 거스를 때 ‘반인륜적(反人倫的)’이라는 말을 쓴다. ‘반인륜 범죄’에는 여러 종류가 있지만 연쇄살인은 그 중에서도 최악의 반인륜적 행위다.

인간이기를 포기한 연쇄살인범에게 주어져야할 형벌은 극형이고, 죄인이 이 세상을 위해 마지막으로 해야할 일은 자신의 죄과에 대한 진정한 뉘우침과 자신으로 말미암마 비명에 간 피해자와 그로 인해 평생 눈물과 충격 속에 살아야 하는 가족에게 진정으로 사과하는 길뿐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0조에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살인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송두리째 말살하는 짐승보다 못한 범죄다. 더군다나 연쇄살인은 이 나라에서 행복하게 잘 살아야 할 국민의 권리가 범죄자에 의해 잇따라 빼앗기는 천인공노할 범죄다.

국가는 국민들이 누구나 행복하게 잘 살아야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이런 연유에서 어느 국민이 누려야할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누군가가 앗아가버렸다면 그 범죄자를 끝까지 추적해 응징할 무한책무가 있다.

 

[그래픽= 연합뉴스]
19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경기남부지방경찰청에서 반기수 화성연쇄살인사건 수사본부장이 화성연쇄살인사건 용의자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그래픽= 연합뉴스]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미제사건으로 남아있던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가 마침내 특정됐다는 소식이 18일 전해졌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은 이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현재 다른 범죄로 수감 중인 A(50대) 씨를 특정했다.

용의자로 특정된 A씨는 현재 화성사건과 비슷한 범죄를 저질러 수감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은 특정한 용의자의 개인 인적 사항은 알릴 수 없다면서도, 나이는 56세라고 밝혔다.

A 씨는 1994년 1월 청주에서 자신의 집에 놀러 온 처제 이모(당시 20세) 씨에게 수면제를 탄 음료를 먹인 뒤 성폭행하고 살해한 혐의로 현재 부산교도소에서 무기수로 복역 중이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은 1986년 9월부터 1991년 4월까지 경기 화성 일대에서 부녀자 등 10명의 여성이 끔찍하게 살해된 사건이다. 이번에 용의자의 실체를 확인한 시점은 1차 사건 발생일로부터 무려 33년 만의 일이다.

경찰이 용의자의 실체를 확인한 것은 1차 사건 발생일로부터 무려 33년 만의 일이다.

 

[사진= 연합뉴스]
7차 사건 당시 용의자 몽타주 수배 전단. [사진= 연합뉴스]

 

19일 경찰에 따르면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 A(56) 씨의 DNA가 총 10차례 살인사건 중 5차·7차·9차 사건 증거물에서 나온 DNA와 일치한다. 이 가운데 9차 사건에서는 피해 여성의 속옷에서 A 씨의 DNA가 검출됐다.

이들 사건은 범행 후 피해자의 속옷을 사용해 손과 발을 결박한 점, 농로나 야산에서 시신이 발견된 점 등 범행 수법과 시신 유기 장소 등에서 유사점을 보인다.

경찰은 이 남성이 모방 범죄로 밝혀진 8번째 살인사건을 제외한 나머지 9차례의 화성사건을 저질렀는지를 확인하는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경찰은 남은 증거물에 대해서도 감정을 의뢰하고 수사기록과 관련자들을 재조사하는 등 A 씨와 나머지 사건들과의 관련성을 추가 확인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이 사건은 희대의 연쇄살인사건이었다. 1986년 15일 태안읍 안녕리 목초지에서 이모(71)씨가 숨진 채 발견된 것을 시작으로 1986년에 총 4차례, 987년 2차례, 1988년 2차례(이 중 1건은 모방범죄로 알려졌고 피의자 검거), 1990년과 1991년 1차례씩이었다.

당시 잔혹한 범행수법으로 온국민이 치를 떨었다. 7차 사건 당시 용의자 몽타주는 나이 24~27세 가량, 신장 165~170㎝로 돼 있다.

 

[사진= 연합뉴스]
[사진= 연합뉴스]

 

1980년대 전국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이 사건은 1991년 마지막 살인사건이 있은 뒤 2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 국민들의 마음에 여전한 공포의 대상이 돼 왔다.

우리나라 범죄사상 최악의 장기미제로 남으면서 배우 송강호 주연의 '살인의 추억'이라는 영화로 제작되기도 하는 등 국민적 관심을 모아왔다.

당시 연쇄살인범을 쫓기 위해 동원된 경찰 연인원만 205만여명으로 단일사건 가운데 최다였다. 수사대상자 2만1280명, 지문대조 4만116명 등 각종 수사기록은 지금도 깨지지 않고 있다.

A씨가 유력한 용의자로 추정되는 상황이지만 범인으로 최종 확인되더라도 이미 2006년에 공소시효가 만료된 상태여서 A씨를 이 사건으로는 처벌할 수 없다.

그동안 경찰은 2006년 4월 2일 마지막 10차 사건의 공소시효가 끝난 후에도 관련 제보를 접수하고 보관된 증거를 분석하는 등 진범을 가리기 위한 수사를 계속해왔다.

그러나 전담팀을 구성하고 DNA 기술 개발이 이뤄질 때마다 증거를 재차 대조하는 노력을 기울였지만 수사는 수년간 답보상태에 머물렀다.

 

[사진= 연합뉴스]
19일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찾은 하승균 전 총경. [사진= 연합뉴스]

 

"화성연쇄살인사건 유력 용의자가 확인됐다는 소식을 듣고 화가 나 잠을 설쳤습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화성 사건 당시 수원경찰서 형사계장으로 재직하며 수사를 맡았던 하승균(73) 전 총경은 용의자 특정 소식에 19일 사건 브리핑이 열리는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을 찾아 상기된 표정으로 이렇게 밝혔다고 한다.

하 전 총경은 "사건 공소시효가 만료돼 진범을 잡더라도 처벌을 못 한다고 한다"며 "용의자의 실제가 밝혀져 기분이 좋기도 하지만, 화가나 잠을 제대로 못 잤다"고 말했다는 것.

하 전 총경은 2003년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배우 송강호가 주인공 역을 맡은 박두만 형사의 실제 모델이기도 하다.

아직도 화성연쇄살인사건 희생자들의 이름과 그날의 날씨를 마치 어제 일처럼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는 그는 최근까지도 사건 제보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당시 수사팀들에게도 얼마나 골수에 사무칠 만큼 트라우마가 깊었던 사건이었는지 짐작할 만하다.

2015년 7월 24일 국회 본회의에서는 '고의로 사람을 살해하고 사형에 해당하는 범죄'에 대해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내용의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표결에 부쳐 반대표 없이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당시 25년이던 형법상 살인죄의 공소시효는 완전히 폐지됐다.

 

[그래픽= 연합뉴스]
2015년 7월 24일 공소시효 폐지 국회 본회의 통과 당시 국내 살인죄 공소시효 변화. [그래픽= 연합뉴스]

 

이 법안은 1999년 5월 20일 대구 동구 골목길에서 학습지 공부를 하러 가던 김태완(사망 당시 6세) 군이 누군가의 황산테러로 49일간 투병하다 숨진 사건이 영구미제로 남게 될 위기에 처하면서 입법이 이뤄졌다. 이 때문에 일명 ‘태완이법’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이 개정안은 ‘부진정소급'(현재 진행중인 사실관계 또는 법률관계에 적용) 원칙에 따라 현재 공소시효가 완성되지 않은 모든 살인죄에 대해서도 공소시효를 폐지하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돼 영구미제로 남을 뻔한 살인사건들의 공소시효가 없어졌다.

하지만 화성연쇄살인사건은 ‘부진정소급’ 원칙에 포함되지 않는다. '태완이법'이 시행되기 전 이미 공소시효가 완성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당시 살인죄의 공소시효는 15년(2007년 개정 후 25년·2015년 개정 후 폐지)에 불과했기에 2006년 4월 2일을 기해 공소시효가 지나 미제로 남았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가 경찰의 집념 어린 수사와 과학수사 발달의 개가로 뒤늦게나마 30여년 만에 실체를 드러내는 듯하다.

그럼에도 정작 용의자에 대한 형사 처벌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 죗값을 물기는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다.

 

[사진= 연합뉴스]
1987년 1월 5차 사건인 화성 황계리 현장을 살펴보고 있는 경찰. [사진= 연합뉴스]

 

하지만 ‘죄는 끝까지 추적해 죄를 묻는다’는 국가적 책무를 완수했고, 이를 통해 ‘완전범죄는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 줄 수 있다는 가치는 결코 과소평가될 수 없다.

아직 용의자는 범행을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오라기 하나 의문점이 남지 않도록 끝까지 범죄를 규명해야 한다.

이것이 무엇보다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 희생자들의 영혼과 그 가족들의 아픔을 조금이나 달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를 계기로 개구리소년실종사건처럼 장기미제사건에 대한 지속적인 해결 필요성과 수사 의지도 다시 다지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화성연쇄살인사건 범죄자로 최종 확인된다면, 죄에 합당한 벌을 줄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도 마지막까지 숙고해야 한다. 공권력의 바람직한 존재가치가 이런 데 있지 않을까 싶다.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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