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이슈] ‘스톡홀름 노딜’ 북미협상 결렬에 비핵화협상 시계 '제로'...상황 후퇴하나
[ME이슈] ‘스톡홀름 노딜’ 북미협상 결렬에 비핵화협상 시계 '제로'...상황 후퇴하나
  • 류수근 기자
  • 승인 2019.10.06 17: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국 '창의적 아이디어' 제시에도 북한 "협상결렬" 성명 발표
북한 "미국에 연말까지 숙고 권고"...미국, 2주내 협상재개 용의
비핵화-제재해제 여전한 이견차 확인...협상중단 장기화 갈림길
북미 실무협상 결렬에 속타는 청와대 ‘대화동력 유지’에 집중

[메가경제 류수근 기자] 하노이 2차 정상회담 후 교착상태에 빠진 지 7개월여 만에 열린 실무협상 재개를 계기로 연내 3차 북미정상회담 가능성까지 조심스럽게 점쳐졌던 북미 관계가 ‘스톡홀름 노딜’로 다시 중대기로에 빠져들었다.

5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재개한 북미 실무협상이 비핵화 해법을 둘러싼 간극을 좁히지 못한 채 또 다시 '노딜'로 귀결되면서 지난해부터 이어져 온 비핵화 협상은 다시 기약없는 갈림길에 서게 됐다.

북미 간 비핵화 실무협상이 결렬됐다는 소식에 청와대도 구체적인 상황 파악과 대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김명길 북한 외무성 순회대사와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 등 북미 대표단은 이날 오전 10시쯤 스웨덴 스톡홀름 외곽에 위치한 콘퍼런스 시설인 '빌라 엘비크 스트란드'에서 실무협상을 가졌다.

 

김명길 북한 외무성 순회대사가 5일(현지시간) 오후 스톡홀름 외곽 북한대사관 앞에서
김명길 북한 외무성 순회대사가 5일(현지시간) 오후 스톡홀름 외곽 북한대사관 앞에서 "북미 실무협상은 결렬됐다"고 발표했다. [스톡홀름=공동취재단/연합뉴스]

 

하노이 핵 담판 결렬 후 7개월 만에 실무협상이 재개된다는 소식에 그간 북미 양국에서는 긍정적인 신호들이 있었고 청와대 내에서도 북미 대화가 제 궤도에 오를 것이라는 기대감이 컸던 게 사실이다.

협상 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경질 후 '새로운 방법론'을 거론하는 등 북미 양측에서 흘러나온 메시지가 긍정적이었다는 점에서 구체적 성과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이 적지 않았다.

이날 스톡홀름 실무회담의 시작은 충분히 그같은 기대감을 갖게 만들었다. 오전 9시 50분쯤 김명길 대사가 차량에서 내리자 이 보다 30여분 앞서 협상장에 먼저 도착해 있던 비건 대표가 웃으며 맞이하는 모습이 외신 영상에 잡히는 등 협상은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시작됐다.

하지만 김 대사는 오전 2시간에 이어 오후 4시간 정도의 협상이 끝난 뒤 결국 실무협상 결렬을 선언했다.

김 대사는 이후 오후 6시30분쯤 북한대사관 앞에서 굳은 표정으로 결렬 성명문을 낭독했다.

그는 "협상은 우리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결렬됐다"고 선언한 뒤 "미국이 구태의연한 입장과 태도"를 버리지 못했으며, "우리가 요구한 계산법을 하나도 들고나오지 않았다"면서 회담결렬의 책임을 미국에 돌렸다.

 

[사진= 연합뉴스]
북미실무회담이 열린 스웨덴 스톡홀름 외곽의 콘퍼런스 시설 '빌라 엘비크 스트란드'. [사진= 연합뉴스]

 

이날 협상은 철저히 비공개로 진행됐다. 그럼에도 전날의 예비접촉이 우호적인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고 이날도 미국 측에서 낙관적 신호가 흘러나왔던 터라 김 대사의 성명 발표는 의외로 받아들여졌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이날 이번 실무협상과 관련, "우리(미국)는 일련의 아이디어(a set of ideas)를 가지고 왔다"며 "우리는 북한이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싱가포르에서 합의한 것을 진전시키고 이행하고자 시도하는 좋은 정신과 의향을 갖고 왔기를 희망한다"고 밝혔었다.

하지만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데에는 불과 몇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결국 지난 2월 베트남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7개월 만에 재개된 북미 협상마저 결렬 위기에 몰리며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은 다시 중대기로에 서게 됐다.

미국 대표단은 이날 오전 협상장에 들어간 이후 북측이 입장 발표를 예고할 때까지 나오지 않다가 이후 협상장을 떠나 숙소로 돌아간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국무부는 이날 협상 관련 성명을 내고 "미국은 창의적인 아이디어들을 가져갔고 북한 카운터파트들과 좋은 대화를 가졌다"면서 북한이 협상 결렬을 선언한 데 대해 북한 대표단의 앞선 언급은 이날 "회담의 내용이나 정신을 반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일단 이날 실무협상에서 북미 양측은 모두 협상 진전을 위한 방안을 설명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결국 완전한 비핵화와 이에 따라 제공될 대북 안전보장 및 제재 해제를 둘러싼 협상에서 현격한 의견차만 확인한 것으로 풀이된다.

 

[사진= 연합뉴스]
[그래픽= 연합뉴스]

 

협상 결렬 뒤 모건 오테이거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창의적인 아이디어들을 가져갔다"고 밝혔으나, 북한 김명길 대사는 "현실적인 방도를 제시했다"고 주장했다.

미국이 제시한 '창의적 아이디어'가 무엇인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간의 흐름을 감안할 때 비핵화의 정의에 대한 '포괄적 합의'와 '영변 폐기+α' 등 북한의 비핵화 조치에 따라 연락사무소 개설을 비롯한 안전보장 조치와 섬유·석탄 수출제재의 유예 등 일부 제재완화를 상응조치로 제시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이같은 미국 측의 ‘창의적 아이디어’가 북한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하면서 결국 결렬된 것으로 보인다.

김명길 대사가 "구태의연한 입장과 태도를 버리지 못했다", "빈손으로 협상에 나왔다", "우리가 요구한 계산법을 하나도 들고나오지 않았다"는 등의 성명으로 비난한 데서 미국측의 제안이 북측의 기대감과 상당한 괴리가 있었음을 읽을 수 있다.

김 대사는 또 "조선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는 우리의 안전을 위협하고 발전을 저해하는 모든 장애물들이 깨끗하고 의심할 여지없이 제거될 때에라야 가능하다"고 말해 '안전보장'과 함께 '제재 해제'가 요구 조건임을 거듭 강조했다.

'하노이 노딜'의 배경인 비핵화와 안전보장·제재해제 이행을 둘러싼 간극이 이번 실무회담에서도 좁혀지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일각에선 이번 협상 상황이 '하노이 회담' 때보다 오히려 후퇴한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한다. 하노이 회담 때는 북한이 영변 핵시설 폐쇄를 '카드'로 내놓았지만, 지금은 이마저도 아니고 한미연합훈련 중단, 제재 중단 등을 요구하는 상황일 수 있다는 것이다.

 

[사진= 연합뉴스]
7개월만에 재개된 북미 실무협상이 결렬되면서 청와대의 고민도 깊어지게 됐다. [그래픽= 연합뉴스]

 

이날 김명길 대사의 발언을 보면 이같은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는 '현실적 방도'를 제안했다며 핵실험 및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중지 등 자신들이 취한 조치를 열거한 뒤 "우리가 선제적으로 취한 비핵화 조치들과 신뢰구축 조치들에 미국이 성의있게 화답"해야 다음 단계 비핵화 조치 논의에 들어갈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미국의 추가 제재, 한미 연합군사훈련 지속, 미국의 전략자산 전개 등을 거론했다. 이런 조치들이 중단돼야 완전한 비핵화의 합의든, 영변 핵시설 폐쇄든 다음 단계 비핵화 조치를 논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었다면 미국이 여러 '창의적 아이디어'를 내놓았더라도 북한은 이에 대해 논의할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협상이 재개될 수 있을지 현재로서는 불투명하다.

앞서 북한은 지난달 9일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의 담화를 통해 미국이 이번 실무협상에서 "낡은 각본을 또다시 만지작거린다면 조미사이의 거래는 그것으로 막을 내리게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다행히 이날 김명길 대사가 당장 미국과 대화를 접겠다는 식으로 나오지는 않았다. 이는 협상 재개에 여지를 남긴 것으로 볼 수 있다.

김 대사는 "조선반도 문제를 대화와 협상을 통해서 해결하려는 우리의 입장은 불변하다"면서 "(미국 측에) 협상을 중단하고 연말까지 좀 더 숙고해볼 것으로 권고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이번 조미실무협상이 실패한 원인을 대담하게 인정하고 시정함으로써 대화 재개의 불씨를 살리든가 아니면 대화의 영원히 닫아버리든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미국의 태도에 달려있다"며 미국을 압박했다.

 

[사진= 연합뉴스]
5일 북미 실무협상장으로 향하는 북한대표단 차량. [사진= 연합뉴스]

 

북한의 갑작스런 결렬 성명에도 미국은 어렵게 시작된 협상의 불씨를 꺼트리지 않으려는 듯 협상 조기재개에 대한 의지를 밝혔다.

오테이거스 국무부 대변인은 2주 이내에 스톡홀름으로 돌아와 다시 만나자는 스웨덴 주최 측 초청을 수락했다고 말했다.

일단 청와대는 '북미대화 재개의 시작'이라고 이번 실무협상 성사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며 대화 이후에도 동력을 살려가는 데 힘을 집중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이번 북미 간 실무협상에서 당장의 실질적인 진전은 없었지만, 북측 신임 대표단과의 협상이 시작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이를 계기로 북미 간 대화의 모멘텀이 계속 유지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정부는 이번 협상에서의 양측 입장을 바탕으로 대화가 지속할 수 있도록 미국과 긴밀히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청와대는 외교·안보라인을 중심으로 실무협상에서 양측의 이견이 좁혀지지 못한 이유를 정밀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대화동력 유지를 위한 한국 정부의 역할에 대해 숙고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 평화교섭본부장은 조만간 미국을 방문해 비건 대표와 만나 대응 조치를 논의할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이번 실무협상 결렬로 결국 가장 핵심적인 부분에 대한 북미 간 인식 차이는 그대로인 것이 재차 확인된 것이어서 협상이 다시 장기간 교착상태로 빠져드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은 커질 수밖에 없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 4월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3차 북·미 회담 가능성을 열어놓으면서도 대화 시한을 올해 연말로 못 박으며 미국의 입장 전환을 촉구한 바 있다.

내년 말 선거를 앞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우크라이나 의혹 관련 탄핵조사 정국까지 겹치며 앞으로 국제보다 국내 문제에 치중할 수 밖에 없는 처지다.

이 때문에 올해 안에 북미가 비핵화와 관련한 해법에 도달하지 못한다면 장기간 교착상태에 빠지는 것은 물론 오히려 사태가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물론 북미가 단번에 실질적 성과를 거두기보다는 서서히 거리를 좁혀갈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그럼에도 이번 7개월여 만에 재개된 북미협상의 결렬로 한반도의 시계는 다시 ‘제로’의 안개 속으로 빠져들게 됐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