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저널 그날' 573돌 한글날 기념 '조선어학회'의 사전 편찬 작업...이극로는 누구?
'역사저널 그날' 573돌 한글날 기념 '조선어학회'의 사전 편찬 작업...이극로는 누구?
  • 장주희 기자
  • 승인 2019.10.08 20: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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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가경제 장주희 기자] 9일은 573돌을 맞는 한글날이다. 한글날은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반포한 것을 기념하고 세계 속에 빛나는 고유 문자인 한글의 연구와 보급을 장려하기 위해 정한 날이다.

8일 밤 방송되는 KBS 1TV '역사저널 그날‘이 한글날을 기념해 ’조선말과 조선 겨레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주제로 암흑같았던 일제시대에 목숨을 걸고 우리말을 모으고 한글을 지켰던 ’조선어학회‘의 활동상을 추적한다.

 

[사진= KBS 1TV '역사저널 그날' 제공]
[사진= KBS 1TV '역사저널 그날' 제공]

 

한국근현대사사전에 따르면, 조선어학회는 1921년 12월 3일 우리말과 글의 연구를 목적으로 조직된 단체로 ‘한글학회’의 전신이다.

처음의 명칭은 ‘조선어연구회’였으며 장지영, 김윤경, 이윤재, 이극로, 최현배, 이병기 등을 회원으로 활동했으며, 1927년 2월부터 기관지 ‘한글’을 발간했다.

1929년에는 ‘조선어사전’ 편찬사업에 착수했으나 일제의 탄압으로 실패했고, 1931년에 조선어학회로 바꾼 뒤 1933년에 ‘한글맞춤법 통일안’을 발표했다.

조선어학회는 1942년 10월 이른바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회원들이 일제에 의해 검거돼 투옥되면서 온갖 고초를 겪어야 했다.

이날 ‘역사저널 그날’에서는 일제강점기에 이들은 왜 그처럼 목숨을 걸고 우리말을 지키려 했는지, 그 감동의 스토리를 만난다.

 

[사진= KBS 1TV '역사저널 그날' 제공]
[사진= KBS 1TV '역사저널 그날' 제공]

 

일본은 한일 강제합병 이전부터 ‘조선인을 일본인으로 만들어라’는 야욕을 치밀하게 준비했다. 목표는 조선어 말살이었다.

일제는 일본어 강제정책을 단계적으로 시행한다. 동시에 조선어 언론지 철폐와 창씨 개명을 행한다.

조선말을 사용하면 어떤 고초가 따를지 모르는 암울한 상황에서도 우리말을 지키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조선어학회’였다.

조선어학회의 본격적인 활동은 독일 유학 중 유럽 열강의 제국주의를 목도한 이극로가 가입하며 시작됐다.

“말은 민족의 정신이요, 글은 민족의 생명이다.”

조선어학회는 우리말과 글을 지키기 위해 일제의 눈을 피해 전례 없는 은밀한 작전을 감행한다. 이들은 우리말을 지키면 민족을 보존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조선어 사전 편찬을 꾀한다.

낮에는 경성 거리에서 구두를 닦고 밤에는 편찬 작업을 추진했다. 사전 편찬 작업을 위해 현재 가치 17억원을 기부한 이도 있었고 토지와 건물을 제공한 이도 있었다.

그러나 조선어학회 사전 편찬 작업은 예상치 못한 사건을 빌미로 일제가 검거에 나서면서 조선어학회 회원들은 치안유지법 위반이라는 죄목으로 투옥됐다.

 

[사진= KBS 1TV '역사저널 그날' 제공]
[사진= KBS 1TV '역사저널 그날' 제공]

 

이 사건으로 목숨을 잃거나 잔혹한 옥고를 치른 이들이 33명에 달했다. 사전 편찬을 위해 필사적으로 준비했던 원고는 재판 증거물로 압수당했고 조선어학회의 활동은 멈췄다.

이 사건의 발달은 예상치 못한 데서 시작됐다. 사전 편찬 작업이 한창이던 어느 날, 한 조선인 남자가 일제 경찰의 검문을 받게 된다. 사소한 꼬투리로 인해 가택수색이 이어지고, 그 과정에서 일기장 2권이 발견된다.

그런데 일기장에 적혀있었던 ‘국어를 썼다가 선생님한테 꾸지람을 들었다’라는 글이 발견된 것이 발단이 됐다.

일제강점기의 국어는 무엇이고, 꾸지람을 준 선생님은 조선인이었는지, 일본인이었는지에 대해서도 알아본다. (당시 '국어'는 일본어였고, 아이에게 꾸지람을 한 선생은 조선어학회 정태진 선생이었다)

일제의 혹독한 우리말 말살 정책도 이들의 꿈은 결코 꺾지 못했다. 이날 방송에서는 그후 조선어학회의 사전 편찬 꿈이 어떻게 진행됐는지도 살펴본다. (광복 후 서울역 역사에서 '조선어사전' 원고를 찾아냈다)

 

[사진= KBS 1TV '역사저널 그날' 제공]
우리말과 글을 사랑하는 독일인 다니엘 린데만. [사진= KBS 1TV '역사저널 그날' 제공]

 

이날 ‘역사저널 그날’에는 국문학과 출신 개그맨 이윤석, 우리의 말과 글을 노래하는 시인 류근, 우리말 지킴이 아나운서 최원정, 민족문제연구소 박용규 연구위원이 함께해 우리의 말이 곧 우리의 정신이라 믿었던 그 치열했던 시대 속으로 들어가 본다.

특히, 우리말과 글을 사랑하는 독일인 다니엘 린데만이 출연해 한글과 관련된 인연을 털어놓는다.

‘한국인보다 한국말을 더 잘하는 외국인’으로 인정받는 그는 독일의 작은 성당에서 한인들에게 한글을 배웠다며, 일제강점기 우리말과 글을 지킨 여정에 특별한 감동을 느꼈다고 제작진은 전했다.

한글날의 역사

한글날의 시작은 일제의 서슬이 시퍼렀던 192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해 11월 4일(음력 9월 29일) 조선어연구회가 중심이 되어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반포한지 480주년이 된 해를 맞이하여 기념식을 갖고 제1회 ‘가갸날’로 정했다.

 

[사진= KBS 1TV '역사저널 그날' 제공]
[사진= KBS 1TV '역사저널 그날' 제공]

 

‘세종실록’에 기록된 반포 시점인 세종 28년(1446년) 음력 9월의 마지막 날인 29일을 ‘가갸날’로 정한 것이다.

이후 1940년 7월 ‘훈민정음 해례본’이 발견되면서 집현전 대제학 정인지의 서문에 반포일이 9월 ‘상한(上澣)’인 것이 확인됐다. 이에 상순의 끝날인 9월 10일을 양력으로 환산해 10월 9일을 한글날로 정하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한글’이라는 이름은 1910년대 초 주시경 선생을 비롯한 한글학자들이 쓰기 시작했다.

한글 창제의 원리와 사용법이 기록돼 있는 훈민정음 해례본(국보 70호)은 전 세계 문자 가운데 새로운 문자를 만든 주체가 직접 그 원리를 밝히고 상세히 풀이한 세계 유일의 문자해설서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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