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분석] 김정은, 문재인 대통령에 뜻밖의 조의문...소통 잃은 남북관계 돌파구 될까
[ME분석] 김정은, 문재인 대통령에 뜻밖의 조의문...소통 잃은 남북관계 돌파구 될까
  • 류수근 기자
  • 승인 2019.10.31 20: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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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어제 오후 판문점서 윤건영 청와대 상황실장에게 건네
북한의 남쪽 조의전달은 6월 故 이희호 여사 이후 처음
남북정상 4개월만에 소통..."의례적 차원의 예의 표시"인 듯

[메가경제 류수근 기자] 북미 핵 협상이 이렇다할 돌파구를 찾지 못하며 교착 상태에 빠지면서 남북 관계도 경색 국면이 심화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예상을 깨고 문재인 대통령 모친상에 조의문을 보내오면서 얼어붙은 남북관계에 해빙의 계기가 될지 주목된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31일 오후 춘추관 브리핑에서 "고(故) 강한옥 여사 별세에 대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30일 문재인 대통령 앞으로 조의문을 전달해왔다"며 "김 위원장은 조의문에서 강 여사 별세에 대해 깊은 추모와 애도의 뜻을 나타내고 문 대통령께 위로의 메시지를 전했다"고 말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조의문 관련 고민정 대변인 브리핑 모습. [사진= 연합뉴스 영상 캡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조의문 관련 고민정 대변인 브리핑 모습. [사진= 연합뉴스 영상 캡처]

 

고 대변인은 “조의문은 어제(30일) 오후 판문점을 통해 전달 받았으며 밤늦은 시각 빈소가 차려진 부산 남천성당에서 대통령께 직접 전달됐다”고 받은 경위도 설명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조의문은 윤건영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이 북측으로부터 판문점에서 전달받았고, 윤 실장은 전날 밤 빈소를 찾아 문 대통령에게 직접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 위원장이 남측 인사에 대해 조의를 표한 것은 지난 6월 19일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가 별세했을 때 이후 처음이다.

당시 김 위원장은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을 직접 보내 조의문과 조화를 전달했다.

 

[사진=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동생 김여정 노동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이 지난 6월 12일 오후 고 이희호 여사 서거와 관련, 판문점 통일각에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박지원 김대중평화센터 부이사장에게 김 위원장이 보내는 조화를 전달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조의문을 통해서이긴 하지만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소통이 이루어진 것은 지난 6월 30일 판문점 남북미 정상 접촉 이후 4개월만이다.

그동안 북한은 남북관계 개선에 기여한 주요 남측 인사의 장례에는 조의 표시를 잊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번 조의문은 뜻밖의 일로 받아들여진다. 금강산 남측 시설 철거와 관련한 회담을 거부하는 등 북한이 최근 남북관계에 강경한 입장을 더해왔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 23일 북한 매체에 보도된 금강산관광지구 시찰에서 "보기만 해도 기분이 나빠지는 너절한 남측 시설들을 남측의 관계 부문과 합의하여 싹 들어내도록 하고 금강산의 자연경관에 어울리는 현대적인 봉사시설들을 우리 식으로 새로 건설하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선임자들의 의존정책이 매우 잘못되었다"고 남측과의 협력을 통한 금강산관광을 선임자 책임론까지 제기하며 비판한 뒤 "우리의 명산인 금강산에 대한 관광사업을 남측을 내세워서 하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래픽= 연합뉴스]
북한 김정은 위원장 금강산 남측 시설 철거 지시. [그래픽= 연합뉴스]

 

이같은 작심 발언은 "조건이 마련되는 데 따라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사업을 우선 정상화한다"는 지난해 9월 문재인 대통령과의 평양 공동선언 합의와 정면으로 어긋나는 것이다.

이후, 북한은 이틀 뒤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통해, 남측 정부와 민간에 금강산의 남측 시설을 철거해 가라며 실무적 문제를 협의하자는 내용의 통지문을 보내왔다.

북한은 통지문에서 "금강산 지구에 국제관광문화지구를 새로 건설할 것"이라며 "합의되는 날짜에 금강산지구에 들어와 당국과 민간기업이 설치한 시설을 철거해 가기 바란다"고 밝혔다.

북한은 "실무적 문제들은 문서교환 방식으로 합의하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북한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금강산관광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실무회담마저 거부하는 등 최대한 남측과 만나지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그동안 금강산관광이나 개성공단 같은 주요 남북경협 사업 재개는 북미협상 과정에서 북한의 비핵화를 촉진할 수 있는 반대급부 '카드'로 꾸준히 거론돼 왔다.

 

[그래픽= 연합뉴스]
[그래픽= 연합뉴스]

 

특히, 지난해 남북정상회담 과정에서 양 정상이 도출한 9·19평양공동선언은 올초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과 남북관계 정체 중에도 화해·협력 기조의 '보루'로서 여겨져왔다.

하지만 김 위원장이 이를 사실상 번복하면서 지난해 시작된 대남 협력 기류에서 방향을 틀겠다는 신호일 수 있다는 해석까지 나오던 터였다. 이럴 경우 남북관계 경색 국면의 장기화는 불가피하다.

앞서 김 위원장은 지난 4월 시정연설에서 문 대통령을 향해 "'오지랖 넓은 중재자·촉진자 행세를 할 것이 아니라 민족의 일원으로서 제정신을 가지고 제가 할 소리는 당당히 하면서 민족의 이익을 옹호하는 당사자가 되어야 한다"며 “외세의존 정책에 종지부를 찍고 모든 것을 북남관계개선에 복종시켜야 한다”고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이런 일련의 차가워진 기류 때문에 북측이 문 대통령의 모친 별세와 관련해 조의를 표할 것이라고 생각한 이들은 많지 않았다.

통일부는 조문이나 조화를 받지 않고 가족상으로 조용히 치르겠다는 문 대통령의 의사를 존중해 북측에 모친상 소식을 전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김 위원장이 먼저 조의를 표한 것은 어떤 의미일까? 현 남북관계와 무관하게 북한 최고지도자로서 상대국 지도자에 대한 예우를 갖추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남북관계가 아무리 냉랭해도 작년 세 차례나 정상회담을 한 남측 최고지도자의 모친상을 외면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고 판단해, 예의를 중시하는 최고지도자의 덕목을 과시하려는 속내로 볼 수 있다.

 

[사진=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30일 오전 부산 남천성당에 마련된 모친 고 강한옥 여사의 빈소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사진= 청와대 제공/연합뉴스]

 

그럼에도 뜻밖의 조의 표명이 얼어붙은 남북관계에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하지만 당장 남북관계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이번 조의 표명이 문 대통령의 모친상에 대해 의례적 차원에서 예를 차린 것 이상으로 해석하기 어렵다는 견해다.

특히, 북한이 이틀 전 남측의 금강산 실무회담 제의를 하루 만에 거절한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 때문에 조의문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청와대 관계자도 "조의문을 전달받으면서 남북 간 (현안과 관련한) 다른 얘기는 없었던 것 같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이번 조의문 전달을 계기로 남북 정상 간 신뢰가 이어질 수 있다는 해석도 있다. 이를 바탕으로 대화의 문이 다시 열릴 수 있다면 장기적으로 경색된 남북관계를 반전시킬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견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연합뉴스에 "양 정상 간에 아직 상호 존중이 남아있다는 징표"라며 "바로 남북관계 개선으로 이어지지는 않겠지만 이런 '조의 정치'가 얼어붙은 남북관계를 약간 녹일 수 있는 하나의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과연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내온 예상치 못한 ‘조의문’이 남북 관계의 경색을 푸는 실마리가 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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