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가경제 류수근 기자] “지난 삼십 년은 제가 믿는 가정을 위해 아낌없이 보낸 시간이었습니다. 목숨을 바쳐서라도 가정은 지켜야 하는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가정'을 좀 더 큰 공동체로 확대하고 싶습니다. 저의 남은 여생은 사회를 위해 이바지 할 수 있는 길을 찾아 헌신하겠습니다.”
집착을 버리고 마음을 비우면 만사가 담담해지는 게 세상의 이치인가 보다.
최태원(59) SK그룹 회장과 이혼 소송을 벌이고 있는 아내 노소영(58)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 4일 오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꼭 지키겠다고 마음 먹었던 ‘가정’을 더 큰 공동체인 사회로 확대하며 여생을 살겠다는 의지가 인상적이다.
노 관장은 이 글의 서두에는 “저의 지난 세월은 가정을 만들고 이루고 또 지키려고 애쓴 시간이었습니다. 힘들고 치욕적인 시간을 보낼 때에도, 일말의 희망을 갖고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희망이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라며 그간의 세월을 ‘치욕적인 시간’으로까지 표현하며 이제는 일말의 희망도 저버렸음을 읽게 한다.
그러면서 “그 사이 큰 딸도 결혼하여 잘 살고 있고 막내도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남편이 저토록 간절히 원하는 '행복'을 찾아가게 하는 것이 맞지 않나 생각합니다”라며 최 회장과의 이혼을 결심했음을 내비쳤다.
노 관장은 이어 “끝까지 가정을 지키지는 못했으나 저의 아이들과 우리 사회에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남고 싶습니다”라고 끝을 맺었다.
연합뉴스가 법조계를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노 관장은 이날 서울가정법원에 최 회장이 낸 이혼소송에 대한 맞소송을 제기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이혼 소송을 벌이고 있는 아내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 재산 분할을 요구하는 맞소송을 낸 것으로 4일 알려졌다. [사진= 연합뉴스]](/news/photo/201912/92361_64597_2019.jpg)
노 관장은 이혼의 조건으로 최 회장이 3억원의 위자료를 지급하고 보유한 회사 주식 등 재산을 분할할 것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페이스북의 글은 이혼소송에 대한 재산분할 맞소송을 내기까지 보낸 번민의 시간과 현재의 심경, 그리고 향후 계획을 응축해서 피력한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노 관장은 최 회장과의 이혼에 반대하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져왔다. 하지만 이날 맞소송 제기 소식에 이어 페이스북 글을 통해 이 사실을 공식적으로 알린 셈이다.
노 관장에 대한 최 회장의 이혼 의사가 처음 세상에 알려진 것은 지난 2015년 12월이었다. 당시 최 회장은 한 일간지에 편지를 보내 혼외 자녀의 존재를 공개하고 성격 차이를 이유로 노 관장과의 이혼 의사를 밝혔다.
이후 최 회장은 2017년 7월 노 관장을 상대로 이혼 조정을 신청했다. 이혼조정은 정식 재판을 거치지 않고 부부가 법원의 조정에 따라 협의를 통해 이혼하는 절차다.
하지만 두 사람은 이혼조정에서 합의를 이루지 못했고, 결국 정식 이혼소송을 진행 중이다.
지난달 22일은 이혼소송 4회 변론기일이었다. 서울가정법원 가사3단독 나경 판사 심리로 열린 노 관장과의 이혼소송 4회 변론 기일에 당시 최 회장은 법률대리인들과 함께 출석했다.
노 관장은 앞서 2,3회 변론에는 재판에 출석했으나 이날은 법정에 나오지 않았고 대리인들만 출석했다.
이날 재판은 약 15분 만에 마무리됐고, 최 회장은 옅은 미소만 지은 채 취재진의 질문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은 채 빠른 걸음으로 법원을 빠져나갔다고 연합뉴스는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다음 변론 기일은 1월 17일이다.
노 관장이 4일 이혼 의사를 공식화하면서 이제부터 두 사람의 이혼 소송은 최태원 회장의 재산 분할과 관련한 공방에 초점이 모여지게 됐다.
![노소영 관장은 4일 오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최태원 회장과 이혼 결심을 한 심경을 담은 듯한 글을 올렸다. [출처= 노소영 페이스북 캡처]](/news/photo/201912/92361_64598_2249.png)
이혼할 때 분할 대상이 되는 재산은 부부가 결혼한 이후 함께 일군 공동 재산이 원칙이다. 한쪽에서 상속·증여받은 재산은 통상적으로 분할 대상에서 빠진다. 또 회사 경영의 안정성과 직결되는 재산인지도 법원의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최 회장이 보유한 회사 지분 등이 분할 대상이 될 수 있을지를 두고 양측이 치열한 법정 공방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최 회장의 자산은 4조원이 넘으며, 이중 일부 부동산과 동산을 제외한 대부분이 SK㈜ 지분 18.44% 등 유가증권 형태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노 관장은 최 회장이 보유한 SK㈜ 지분 중 42.29%를 분할하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전날 종가를 기준으로 약 1조4천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법원이 이 지분과 관련해 재산분할을 얼마나 인정해 줄지는 미지수다.
다만, 노 관장은 혼인 이후에 형성된 재산의 경우 기여도를 따져서 최대 50%까지 재산을 나누도록 하는 원칙을 강조하며 맞설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임우재 전 삼성전기 고문이 벌인 이혼 소송은 참고할 만하다. 임 전 고문 측은 1조2천억원의 재산 분할을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지난 9월 2심 재판부는 141억원만을 인정했다.
1988년 부부의 연을 맺었던 두 사람이 삼십여 년의 세월을 뒤로하고 남남으로 가는 마지막 수순을 밟고 있다. 국내 굴지 그룹 회장의 이혼 소송에서 법원이 재산분할과 관련해 앞으로 어떤 판단을 하게 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