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혁명수비대, 우크라이나항공 민간 여객기 "실수 격추" 시인 배경과 전망

류수근 기자 / 기사승인 : 2020-01-12 02: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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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크루즈 미사일로 오인…단거리 대공미사일 발사"
이란 혁명수비대 "여객기 격추에 죽고 싶었다" 통렬한 반성
우크라 대통령, 격추 시인에 "철저한 조사·공식사과" 요구
"미와 대치 속 격추 확인되면 국제 여론 악화 판단했나"

[메가경제 류수근 기자·연합뉴스종합] 미군에 의해 제거된 가셈 솔레이마니 이란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을 위한 복수를 다짐하며 이라크 주둔 미군기지를 공격하는 등 기세를 올리던 이란이 민간 여객기 격추라는 초대형 악재를 만나면서 대미항쟁의 기조가 급격히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이란 당국은 지난 8일(현지시간) 오전 이란 테헤란 부근 상공에서 추락한 우크라이나항공 소속 PS752편 여객기를 실수로 격추했다고 인정했다.


이란 군합동참모본부는 11일(현지시간) 낸 성명에서 "사고기는 테헤란 외곽의 민감한 군사 지역 상공을 통과하고 있었다"며 "미국의 모험주의가 일으킨 위기 상황에서 이를 적기로 오인한 사람의 의도치 않은 실수로 격추당했다"고 밝혔다.


이 발표 직후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트위터에 "이란은 참혹한 실수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 이번 사건은 용서할 수 없는 참극이다"라고 애도를 표시했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트위터에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트위터에서 민간 여객기 격추에 애도를 표시했다. [사진=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 트위터 캡처]

앞서 우크라이나 여객기는 지난 8일 테헤란 외곽 이맘호메이니 공항에서 이륙한 지 몇분 만에 추락해 탑승자 176명이 모두 사망했다.


전날까지만 해도 서방에서 제기된 격추설을 '자국을 괴롭히려는 음모론적 심리전'이라며 완강히 거부했던 이란은 결국 사고 사흘 만에 격추를 인정했다.


이란 혁명수비대가 이라크 미군 기지에 대한 미사일 공격 직후 미국의 반격을 예상해 전군이 최고 경계태세를 유지한 상황에서 발생한 의도치 않은 실수라고 하더라도, 민항기를 군이 격추했다는 데 대해 이란의 책임과 세계적인 비난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란 혁명수비대의 아미르 알리 하지자데 대공사령관도 우크라이나 여객기가 이란의 미사일에 맞았다는 소식을 듣고 "죽고 싶었다"며 "이번 격추 사건에 대한 모든 책임을 인정하고 관계 당국의 어떤 결정도 달게 받아들이겠다"라고 강조했다.


하지자데 사령관은 "최근 일 주일여 간 중동의 긴장과 갈등이 사상 최고로 높아졌다"며 "이란군은 전시 상황에 준하는 100%의 경계 태세를 유지했고, 특히 미국이 이란의 주요 지점을 타격한다고 경고한 만큼 이에 철저하게 대비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상황에서 수도 테헤란을 둘러싼 방위 체계에 수많은 방어 시스템이 추가됐다"며 "새로 추가된 대공 방어 시스템에서 여객기를 격추한 실수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여객기 미사일 피격 추정 상황. [그래픽= 연합뉴스]


하지자데 사령관은 또 "피격 여객기가 이맘호메이니 공항을 이륙했을 때 방공 부대는 전달된 정보를 근거로는 적의 전투기 공격 전 발사된 크루즈 미사일로 판단했다"며 "대공 미사일 발사 전 이를 교차 확인해야 하는 데 당시 상황에서 교란 시스템인지, 통화 중이었는지 모르겠지만 통신 시스템이 원활치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대공부대는 5초밖에 대응할 시간이 없었고 불행히도 조급하게 나쁜 결정을 해 단거리 대공 미사일을 발사했고 여객기가 이에 맞았다"라고 인정했다.


이란 민간항공청이 전날까지 미사일 격추 의혹을 부인한 데 대해서는 "민간항공청은 그들이 확보한 정보로만 판단했기 때문에 잘못이 없다. 전적으로 우리의 잘못이다"라고 변호했다.


이란 당국이 우크라이나 여객기를 실수로 격추했다고 인정하자,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철저한 조사와 공식 사과 등을 요구했다.


연합뉴스가 타스 통신을 인용해 전한 바에 따르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11일(현지시간) 공식 텔레그램 채널에 올린 성명을 통해 "국제위원회의 작업이 끝나기 전에 이란이 우크라이나 여객기 격추에 대한 책임을 인정했다"고 전하면서 "하지만 철저한 책임 인정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란으로부터 철저하고 투명한 조사에 대한 자세 천명, 책임자 처벌, 사고 희생자 시신 송환, 손해 배상금 지급, 외교적 경로를 통한 공식 사과 등을 기대한다"고 요청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또 "향후 조사가 인위적 지연이나 방해 없이 이루어지길 바란다"면서 "우리 전문가(이란 파견 우크라이나 전문가) 45명이 정의 규명을 위해 (사고 현장에) 전면적으로 접근하고 (이란 측의) 협력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날 밤까지만 해도 격추 사실을 강하게 부정했던 이란이 하룻밤 만에 180도 태도가 바뀐 데 대한 배경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란은 그동안 중동에서 일어나는 각종 무력 사태와 분쟁과 관련해 이란 탓으로 돌리는 서방의 전방위 공세에도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그러했던 이란이 이번 여객기 추락에 대해 신속히 책임을 시인한 것은 극히 이례적으로 여겨진다.



8일 테헤란 부근에서 격추된 우크라이나 여객기의 파편. [AP=연합뉴스]


외신들은 이란이 태도를 급변하게 된 데는 스모킹 건(결정적 증거)이 확인됐고 이를 더는 감출 수 없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우선, 이란을 실시간으로 정밀 감시하는 미국의 군사 정찰 위성의 자료와 추락 장면을 찍은 동영상이 외국 언론에 의해 공개되면서 음모론 수준이었던 격추설이 대세론으로 굳어지는 흐름을 피할 수 없었을 것으로 보는 견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이 이란 내 이익대표부 역할을 하는 주 테헤란 스위스 대사관을 통해 격추를 증명하는 자료를 보냈다고 보도했다.


이 보도가 사실이라면 상대방이 격추를 입증할 충분한 자료를 갖고 있다고 판단한 이란이 먼저 책임을 자인했다고 풀이할 수 있다.


미국과 정치·군사적 긴장이 첨예한 상황에서 명백한 증거를 외부에서 먼저 제시해 '외통수'에 몰리기 전에 인정하는 게 국제 여론전에서 그나마 유리하다고 이란 지도부가 판단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란 혁명수비대는 지난해 7월 호르무즈 해협 부근 상공에서 미군의 첨단 무인기를 격추, 국내외에 깜짝 놀랄만한 대공 방어 전투력을 증명했고, 미국의 솔레이마니 사령관 살해를 미사일로 보복한 혁명수비대에 대한 이란 내 지지도도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런 우호적인 여론이 무르익기도 전에 같은 날 민항기 격추라는 최악의 악재를 만나면서 국민적 지지는 물론 혁명수비대가 자랑하는 대공 방어능력도 빛을 잃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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