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칼럼] 봉준호 감독 '기생충' 아카데미 작품상이 깬 '자막 장벽 1인치'의 의미
[ME칼럼] 봉준호 감독 '기생충' 아카데미 작품상이 깬 '자막 장벽 1인치'의 의미
  • 류수근 기자
  • 승인 2020.02.10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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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가경제 류수근 기자] "'기생충'이 공식적으로 할리우드를 정복했다(officially conquered Hollywood)."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올해 아카데미상에서 작품상을 수상한 것과 관련, 미국의 대표적인 언론 중 하나인 USA투데이의 엔터테인먼트 담당기자 브레인 트루이트의 해설기사 첫 머리다.

‘기생충’은 9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돌비극장에서 펼쳐진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고 영예인 최우수 작품상(Best Picture)를 비롯해 감독상(Directing), 각본상(Writing;Original Screenplay), 국제영화상(International Feature Film) 등 4관왕의 위업을 달성했다.

 

영화 '기생충'이 9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의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수상하자 봉준호 감독(오른쪽)이 배우 송강호와 포옹하고 있다. [사진= EPA/연합뉴스]
영화 '기생충'이 9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의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수상하자 봉준호 감독(오른쪽)이 배우 송강호와 포옹하고 있다. [사진= EPA/연합뉴스]

 

미술상, 편집상까지 모두 6개 부문 후보에 올랐던 ‘기생충’은 당초부터 수상이 유력시되던 국제영화상은 물론, 남·녀 주연상과 함께 아카데미상 ‘빅5’로 불리는 각본상, 감독상, 작품상 등 3개의 오스카 트로피를 품에 안는 신기원을 이뤘다. ‘기생충’의 아카데미상 수상은 101년 한국 영화 역사의 더없는 쾌거로 꼽힌다. 1962년 신상옥 감독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로 첫 출품 이후 57년만에 거둔 업적이다.

그동안 첫 출품 이후 꾸준히 오스카상의 문을 두드리긴 했지만 그 문은 너무 높고 멀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이날 ‘기생충’의 쾌거로 봉준호 감독이라는 이름은 물론, 한국영화는 단박에 변방에서 중심부에 진입할 수 있는 결정적인 이정표를 마련했다.

아카데미상은 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가 전년도에 발표된 미국 영화와 미국에서 상영된 외국 영화를 대상으로 우수한 작품과 그 업적에 대해 시상하는 상이다. 제1회 시상식은 1929년 5월 16일 할리우드 르즈벨트 호텔에서 열렸다.

한국 등 외국영화계에서 느끼는 아카데미의 가장 큰 장벽은 ‘국경’과 함께 바로 ‘언어’였다. 그간 보여줘온 아카데미상의 속성상 비영어권 영화가 도전할 수 있는 부문은 사실상 국제영화상(구 외국어영화상)이 거의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이번 봉 감독에 앞서 대만 출신 리안 감독이 아시아계 감독으로서 '브로크백 마운틴'(2006) '라이프 오브 파이'(2013)으로 두 차례 감독상을 받았지만 모두 영어를 사용하는 할리우드 영화였다. 아시아계 작가로서 각본상을 받은 것도 ‘기생청’이 최초다.

비영어권 영화에게 최우수작품상이 돌아간 것은 92년 오스카상 역사에서 맨 처음이다. 한마디로 ‘기생충’이 세계 영화사에 전무후무한 이정표를 남긴 것이다.

지난해 5월 14일 제72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차지하며 화려하게 국제무대에 데뷔한 ‘기생충’은 그후 국내외 수십 개의 영화상에서 수상 퍼레이드를 펼쳤다. 이어 지난해 12월부터는 미국 시장에서 주요 상을 잇따라 거머쥐며 최고 권위의 아카데미상에 도달했다.

그간 뉴욕·LA·필라델피아·워싱턴DC·시카고·전미 비평가협회에서 수상하며 미국 평단에서 인정을 받은 데 이어 지난달 5일에는 제77회 미국 골든글로브에서 최우수 외국어영화상을 차지하며 아카데미상 수상에 대한 희망을 부풀렸다.

앞서 ‘기생충’은 지난해 10월부터 북미에서도 개봉해 지금까지 3천5백만 달러 이상을 벌어들이는 등 작품성은 물론 흥행면에서도 한국 영화 최고의 수익을 올렸다.

‘공식적으로 할리우드를 정복했다’는 USA투데이 기자의 해설기사 서두에는 ‘기생충’이 새롭게 써온 이같은 여정이 함축됐다. 이미 비공식적으로는 정복했지만 이번 아카데미상 수상으로 ‘공식적’이 됐다는 것을 뜻한다.

2020 아카데미를 앞두고 후하게 예상했던 전문가들조차도 ‘기생충’의 최우수작품상을 예견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아카데미상의 역대 수상패턴으로 볼 때 어림없는 일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래픽=연합뉴스]
[그래픽=연합뉴스]

 

“왜 ‘기생충’은 첫 외국어(비영어) 최우수 작품상으로서 ‘노 브레이너(no-brainer)’이었나?”

그러나 트루이트 기자의 해설기사 제목을 보면 우리가 가진 선입견이 예상보다 컸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게 한다.

‘no-brainer’는 문자 그대로 ‘머리를 쓰지 않아도 되는 일’이라는 뜻에서 ‘쉽고 명백한 결정’ ‘매우 쉬운 결정’ 등을 가진 숙어다.

한마디로 ‘기생충’은 영어가 아닌 언어(한국어)로 제작됐지만 최우수작품상으로서 ‘매우 쉬운 결정’, 즉 당연한 결정이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트루이트 기자는 우선 ‘기생충’이 오스카상 역사상 가장 중요한 부문상을 수상한 최초의 외국어영화상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또한, 국제영화상 수상과 관련해서는 “아마도 올해 아카데미가 내린 가장 명백한 선택(most obvious choice)”일 것이라고 썼다.

그러면서 ‘기생충’이 1차 세계대전을 인상적으로 표현한 스릴러 ‘1917’과, 쿠엔틴 타란티노가 아끼는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Once Upon a Time in Hollywood)’, 그리고 논란이 되고 있는 블록버스터 '조커(Joker)‘를 끌어내렸다고 설명했다.

트루이트 기자는 “영화 ‘로마(Roma)’(알폰소 쿠아론 감독)가 외국어영화로서 최우수작품상에 대한 최고의 희망을 걸었던 게 1년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그 보다 훨씬 더 좋은 영화를 만나는데 1년 밖에 기다리지 않았다는 사실이 재밌다(funny)”며, “기생충은 봉준호 커리어의 하이라이트이며, 모든 영화산업의 구석구석에 활력을 불어넣는 놀라운 예술작품(a splendid work of art)”이라고 극찬했다.

트루이트 기자는 ‘기생충’이 ‘가난하고 실직한, 꽤 단순한 가족’이 ‘유복하고 잘 속는 가족’에 환심을 사면서 시작하지만, ‘지하로의 한 번의 여행’을 통해 영화 전체를 뒤집어 계급 풍자의 매혹적인 조각이 되고 사회적 불평등이라는 보편적인 코드를 강타하는 인간드라마가 된다'며 영화의 매력을 정리했다.

이어 고도의 콘셉트를 지닌 영화 ‘괴물’과 ‘설국열차’, 넷플릭스 어드벤처 ‘옥자’를 통해 미국에서 명성을 쌓아왔다며 봉준호 감독의 그간 성과를 언급한 뒤, ‘기생충’은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미국 내 흥행 등 최대의 성과를 거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9일(현지시간)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감독·각본·국제영화상 등 4관왕을 차지한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과 배우들이 미국 LA 더 런던 웨스트 할리우드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파이팅을 외치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송강호, 이선균, 최우식, 장혜진, 봉준호 감독, 박소담, 박명훈, 조여정. [사진= 연합뉴스]
9일(현지시간)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감독·각본·국제영화상 등 4관왕을 차지한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과 배우들이 미국 LA 더 런던 웨스트 할리우드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파이팅을 외치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송강호, 이선균, 최우식, 장혜진, 봉준호 감독, 박소담, 박명훈, 조여정. [사진= 연합뉴스]

 

"자막의 1인치 장벽을 뛰어넘으면 더 놀라운 영화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트루이트 기자는 봉준호 감독이 지난달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최우수외국어영화상 수상 당시 밝힌 이 소감을 되새겼다.

‘기생충’이 아카데미상에서 작품상을 수상했다는 사실은, 바로 봉준호 감독이 말한 바로 그 ‘자막 장벽 1인치’를 극복한 결실이라고 풀이한 것이다.

그러면서 트루이트 기자는 “이 영화(기생충)의 오스카상 최우수작품상 수상은 봉준호 감독과 그의 이전 작품들을 좀 더 많은 미국인들의 눈에 소개할 것이며, 좀 더 그런 장벽을 무너뜨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역사는 언젠가 오스카의 최고 수상자를 놓고 다른 모든 경쟁자들을 후원하는 국제적인 프로젝트로 만들어져야 했고, 고맙게도 그것은 이렇게 '신랄하고, 생각을 불러일으키고, 혼이 담긴 (biting, thought-provoking and soulful) 어떤 것'을 위한 것이었다.”

트루이트 기자는 그동안 국제적인 변화를 모색해온 오스카상에 최적의 조건을 갖춘 ‘기생충’이 나타나 그 변화를 실현시켰다고 본 것이다.

이렇게 ‘기생충’의 아카데미상 위업은 한국영화사와 오스카상 역사는 물론 미국 영화계에도 큰 울림을 주고 있다. 그렇게 봉준호 감독이 일궜고 또 만들어갈 영화세계는 세계 영화계의 변화를 이끄는 상징이자 나침반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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