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보자들' 경산 코발트 광산, 괴담 속에 묻힌 70년 전 아픈 과거사...국민보도연맹 학살사건 피해자는 누구였나

류수근 기자 / 기사승인 : 2020-07-22 20:5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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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가경제신문= 류수근 기자]경북 경산 코발트광산의 역사는 일제강점기 시절로 거슬러올라간다. 당시 이곳은 다이아몬드 다음으로 단단한 광물질인 코발트를 채굴했던 곳이다. 1941년, 당시 일제는 전쟁 무기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재료인 코발트 매장량이 풍부했던 이 광산을 개척해 운영했다. 당시 우리 선조들이 강제징용돼 채굴과정에서 얼마나 고생했을지는 미루어 짐작할 만하다.


그런데 이곳은 그후 더 비극적인 일이 벌어졌다. 6·25전쟁 기간 중에 벌어진 국민보도연맹 가입자에 대한 무차별 학살사건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흉가, ‘경산 코발트 광산을 아십니까?”


KBS 2TV '제보자들‘은 22일 방송에서 두 번째 이야기로 ’경산 코발트 광산 괴담 속에 묻힌 70년의 진실‘을 방송한다.



경산 코발트 광산에 묻힌 70년의 진실. [사진= KBS 2TV '제보자들' 제공]
70년 전 경산 코발트 광산에는 무슨 일이 있었나? [사진= KBS 2TV '제보자들' 제공]


흉가는 영적인 존재가 많다고 해 공포체험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성지 같은 곳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경산 코발트 광산은 사람들의 오금을 저리게 하는 것은 물론, 무당들도 가기 꺼릴 정도로 영적인 기운이 강힌 곳이라고 한다.


수십 년 전부터 이 광산을 둘러싼 수많은 괴담이 떠돌면서 언제부턴가 입소문을 타고 공포 체험을 즐기는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꼭 가봐야 하는 대표적 장소가 됐다는 것이다.


떠도는 소문에 의하면, 과거 광산 옆에는 섬유공장이 있었는데 원인 모를 화재가 계속 발생하면서 이를 견디지 못한 공장 사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후 들어선 안경공장, 구두공장 역시 인명피해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제보자들’은 이런 사건 사고의 원인이 모두 코발트 광산 때문이라는 소문에 주목한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이야기에 집중한다. 이 경산 코발트 광산에서는 단순히 귀신을 보는 정도가 아니라 현재까지도 사람의 뼈가 발견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경산 코발트 광산에는 과연 무슨 사연이 있었던 것일까? 알고 보면, 이 광산에는 우리가 역사 속에서 잊지 말아야 할 아프고 슬픈 진실이 여전히 진행형으로 남아 있는 곳이다. 바로 한국전쟁 당시 벌어졌던 학살사건 현장이기 때문이다.


경산 코발트 광산은 일제에 의해 1941년부터 운영된지 약 4년 후 폐광된 뒤 방치상태였다. 그런데 이곳에서 한국 전쟁 당시 전국적으로 국민보도연맹에 가입되어 있는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하기 사작했고, 이 폐광산이 학살지로 이용됐던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을 끌고 와 밧줄로 이어 묶고 일부 인원에게만 총을 겨눠 밧줄로 연결된 사람들을 광산 수직 갱도에 떨어트렸다. 학살 대상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으며 이 사건으로 인해 경산에서만 약 3천 5백여 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경산 코발트 광산에 묻힌 70년의 진실. [사진= KBS 2TV '제보자들' 제공]
경산 코발트 광산 괴담 속에 묻힌 70년의 진실. [사진= KBS 2TV '제보자들' 제공]


경산 코발트 광산에는 수직 갱도가 있는데 이곳에서 학살이 이루어졌다. 주민 증언에 따르면 학살은 1950년 7월 20일경부터 9월 20일경까지 이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당초 1949년 탄생한 국민보도연맹은 남로당과 공산당에 있었던 사람들을 교화시켜서 자유대한민국의 국민으로 만든다는 취지로 생겨났다. 하지만 이 단체에 소속된 사람 중에는 취지를 알고 가입한 사람도 있었지만, 민간인들도 상당수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무고한 사람들이 재판도 없이 무자비하게 공권력에 의해 희생당한 것이다.


할당제가 있었던 탓에 단체의 인원수를 채워야 했고 당시 주변 마을 사람들에게 음식을 주며 가입을 요구했다고 한다. 충격적이고 비극적인 역사적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사건 이후 50년이 지난 2000년대에 들어서야 전국 민간인 학살 희생자들의 유해 발굴이 진행됐다. 유족들에 의해 조금씩 유해를 수습하다가 2005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가 설립되면서 국가 차원의 발굴이 2007년부터 약 3년 동안 이뤄졌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면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는 2010년 해산됐고 더 이상 발굴은 진행되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다. 지금까지 발굴된 유해가 총 560여 구로 현재 세종시에서 보관 중이라고 한다. 아직 발굴되지 않은 유해가 상당수가 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처럼 아직도 수많은 유해가 묻혀있는 광산 주변에는 요양 병원과 골프장이 들어섰다.


이날 ‘제보자들’이 두 번째 이야기로 찾아나선 ‘경산 코발트 광산 괴담 속에 묻힌 70면의 진실’은 여전히 청산하지 못한 비극적인 역사를 되새기며 그 진실 규명과 유해 발굴에 대한 당위성을 되새기게 하는 시간이 될 전망이다. 스토리 헌터로는 강지원 변호사가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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