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찰제도 혁신 ③] "계량기 아닌 품목도 등록 제조사만"…가스공사, 입찰 규정 '모순' 분리발주에 닫혀

박제성 기자 / 기사승인 : 2026-10-06 09:46:31
공사 측 '책임소재' 논리 주장 vs 업계 "정작 경쟁사 제품 구매하는 '교차공급' 문제
업계 "소수 업체로 좁혀지는 구조…담합이 자라기 좋은 토양 만든다"

[메가경제=박제성 기자] 한국가스공사(이하 공사)가 초음파 계량시스템 관련 입찰에서 참가 자격을 등록 계량기 제조사 중심으로 제한해 온 것을 두고 제도적 모순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사는 계량기가 시스템의 핵심 장비인 만큼 고장이 발생했을 때 원인과 책임을 명확히 가리기 위해 제조사 중심으로 입찰 자격을 제한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사진=챗GPT4]

 

하지만 실제 입찰을 보면 계량기 자체가 포함되지 않은 계량컴퓨터나 가스분석기 등 부대설비 교체 사업에서도 같은 자격 제한이 적용되고 있다는 점이 모순이 있다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

 

계량기가 없는 사업인데도 계량기 제조사만 입찰할 수 있는 구조여서 공사 측이 내세운 제한 근거와 실제 운영 방식이 맞지 않는다는 논리이다. 

 

더욱이 등록 제조사끼리는 경쟁사 제품을 구매해 하나의 시스템으로 구성하는 '교차공급'이 허용되고 있다. 

 

제조사가 다른 제품을 조합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국내 시스템통합(SI‧System Integration) 기업의 직접 입찰은 막혀 있는 구조인 것이다.

 

현행 기준이 품질·안전 확보를 위한 장치인지 기존 사업자 중심의 진입장벽인지 따져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 계량기 없는 입찰 '국내 SI 기업 진입' 사실상 닫혀…가스공사 조달 경쟁 제한 논란

 

6일 업계에 따르면 공사의 초음파 계량시스템 조달 문제는 특정 업체의 입찰 자격을 넓히는 문제 뿐만 아니라 계량기 성능을 검증하는 기준과 시스템 구축 능력을 평가하는 기준을 하나로 묶어 운용해 온 기존 조달 방식이 입찰 경쟁을 과도하게 제한하고 있는지가 핵심 쟁점이다.

 

공사는 그동안 초음파 계량기 제조사를 중심으로 입찰 자격을 운영해 왔다. 계량기가 유량 측정의 핵심 장비인 데다 내부 설계 정보를 가진 제조사가 고장 원인을 보다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고, 시스템 전체를 한 업체에 맡겨야 하자 발생 시 책임도 명확하게 물을 수 있다는 이유다.

 

하지만 실제 발주 내역을 보면 이 논리가 모든 입찰에 일관되게 적용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계량기 없이 계량컴퓨터나 가스분석기 등 주변 장비만 교체하는 사업에서도 입찰 참가자는 기존 등록 제조사나 대리점 중심으로 제한돼 왔기 때문이다.

 

최근 계량컴퓨터·가스분석기 단독 교체 입찰 7건에서도 한국에머슨, 크로네코리아, 한국엔드레스하우저, RMG 대리점인 제이비에너텍 등 기존 사업자들이 주로 참여했다. 독립적인 국내 SI 기업이 직접 경쟁에 뛰어든 사례는 확인하기 어려웠다.


◆ 경쟁사 제품까지 '교차공급'…계량기 제조사 제한 논리 '모순'

 

업계에서는 바로 이 부분을 현행 제도의 가장 큰 모순으로 지목한다. 계량기가 없는 사업까지 계량기 제조사만 수행해야 한다면 '계량기가 핵심 설비이기 때문'이라는 설명만으로는 참가 자격 제한을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등록 제조사 사이에 이미 허용되고 있는 교차공급도 논란을 키우는 대목이다. 

 

가스공사 규정상 유량계는 등록 제조사가 직접 제작해야 하지만 계량컴퓨터와 가스분석기 등 주변 설비는 구매사양을 충족하고 제조사 확인 및 공사 측 승인을 받으면 다른 업체 제품을 사용할 수 있다.

 

결국 A사의 계량기에 B사의 계량컴퓨터를 연결하는 식의 시스템 구성도 가능하다는 얘기다. 

 

이 과정에서는 설계 검토와 인터페이스 연결, 프로그램 개발, 시운전 등이 필요해 사실상 SI 업무라고 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 

 

실제 등록 제조사들도 판넬 제작과 프로그램 개발, HMI(사람이 설비 상태 확인·제어) 구성, 현장 시공, 검사와 유지보수 가운데 상당 부분을 국내 협력업체에 맡겨온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2025년 일부 입찰에서 나타난 경쟁업체 간 제품 공급 사례는 현행 구조에 대한 의문을 더 키우고 있다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

 

2025년 5월 한 입찰에서는 앞선 2월 입찰에서 경쟁했던 한국에머슨과 RMG 측이 다시 맞붙어 RMG가 낙찰받았다. 그런데 낙찰 이후 RMG는 자체 계량컴퓨터 제품이 있음에도 한국에머슨 제품을 조달해 납품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대해 공사 측은 “RMG 측이 제품을 직접 선정해 승인을 요청했고, 정해진 절차에 따라 승인했다”고 설명했다. 해당 제품 선택 역시 개별 기업의 경영 판단이라는 게 공사 측 설명이다.

 

다만 업계에서는 자사 제품을 보유한 업체가 입찰 경쟁 상대의 제품을 다시 구매해 납품한 배경은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다.

 

일부 관련 입찰 낙찰률이 75.316%로 비교적 높았다는 점까지 겹치면서 경쟁사 간 거래가 단순한 제품 선택이었는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물론 이러한 정황만으로 업체 간 담합이나 사전 조율을 단정할 수는 없다. 실제 담합 여부는 통신기록과 거래내역, 가격 결정 과정 등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 등 관계기관의 조사를 통해 판단해야 할 사안이다.

 

◆ 소수업체 경쟁 땐 낙찰률 70%대…'닫힌 시장' 가격경쟁 약화 우려

 

문제는 개별 거래보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시장 구조에 있다는 지적이 강하게 나온다. 

 

공사 측이 요구하는 국제 인증을 충족한 초음파 계량기 제조업체 자체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납기 지연이나 품질 문제 등에 따른 입찰 제한까지 겹치면 실제 경쟁 업체가 2개사 수준까지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경쟁자가 줄어들수록 가격 경쟁도 약해질 가능성이 있다. 실제 4개사 이상이 참여한 일부 입찰에서는 낙찰률이 예정가격의 50%대 초중반에 형성된 반면 2025년 2개사 경쟁이 이뤄진 일부 입찰에서는 70%대 중반까지 높아진 사례도 나타났다.

 

이와 관련해 공사 측은 참가업체 수와 낙찰률 사이에 뚜렷한 상관관계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소수 업체만 반복적으로 경쟁하고 서로의 제품까지 공급할 수 있는 구조 자체가 가격·물량 조율 가능성을 키울 수 있는 만큼 제도적 안전장치가 필요하다고 본다.


◆ 제품 인증·시스템 구축 자격 분리론 부상…"30년 조달 관행 재검토해야"

 

업계에서는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으로 '제품 인증'과 '시스템 구축 자격'을 분리하는 방안을 거론한다.

 

초음파 계량기 자체는 ISO 17089, AGA Report No.9, OIML R137 등 기존 국제 기준을 통해 성능과 품질을 검증하되, 시스템 전체를 구축하는 사업자는 설계·시공 능력과 기술인력, 재무건전성, 유지보수 역량 등을 별도로 심사하자는 것이다.

 

이 경우 계량기 품질 기준은 유지하면서도 국내 SI 기업이 독립적으로 경쟁할 수 있는 통로를 합리적으로 만들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제조사가 아닌 SI 업체가 사업을 맡더라도 계약 단계에서 시스템 전체에 대한 책임을 명확히 부과하고, 계량기 제조사의 공급확약과 기술지원 의무를 함께 요구하면 책임소재 문제도 상당 부분 보완할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결국 쟁점은 안전 기준을 낮추자는 것이 아니다. 계량기의 성능을 검증하는 자격과 여러 장비를 조합해 시스템을 구축하는 능력이 반드시 같은 회사에 있어야 하느냐는 문제로 요약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공사 측이 이미 제조사 간 부품 교차공급을 허용하고 계량기가 없는 부대설비 입찰까지 진행하고 있는 만큼 현행 참가 자격을 30년 가까이 유지해야 할 합리적 근거가 여전히 충분한지 재검토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장기간 굳어진 조달 관행이 경쟁과 가격 형성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까지 국회와 감독기관 차원의 점검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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