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송 기간 한 달 반에서 1~2주로 단축…물류비 절감분은 마케팅에 재투자
일본산과 동일한 품질 구현이 관건…캔맥주 우선 생산 후 확대 검토
[메가경제=심영범 기자]“아시아 최초로 한국에서 기린 이치방 시보리의 라이선스 생산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장인섭 하이트진로 대표는 8일 오후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하이트진로 통합연구에서 열린 기린 이치방 시보리 국내 생산 개시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일본에서 완제품을 들여와 국내에 판매하던 기린 이치방 시보리가 이제 한국 생산라인에서 만들어진다. 20년 넘게 이어온 양사의 협력이 수입·유통을 넘어 생산과 기술 공유 단계로 확대되는 순간이다.
하이트진로가 내세운 변화는 명확하다. 일본에서 한국까지 제품을 운송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줄이고, 국내 소비자에게 보다 신선한 맥주를 공급하겠다는 것이다. 일본 맥주 수요가 빠르게 늘어나는 상황에서 공급 안정성을 높이고 시장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겠다는 전략도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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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도 용인시 하이트진로 연구소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하이트진로 관계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하이트진로 김동우 전주공장장, 장인섭 대표이사, 전장우 연구소장, 권광조 프리미엄권역장). [사진=심영범 기자] |
장 대표는 “국내 생산을 통해 보다 안정적인 공급 체계를 구축하고 더욱 신선한 품질의 제품을 선보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이번 기술 협정은 단순한 생산 현장의 이전이 아닌 한층 더 발전된 기술과 품질을 만들어가는 전략적 파트너십의 시작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국내 생산의 중심에는 전북 전주공장이 있다. 하이트진로는 이곳에서 기린 이치방 시보리의 라이선스 생산을 시작했다. 초도 생산 물량은 150만ℓ다. 500㎖ 캔으로 환산하면 약 300만개 규모다. 우선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는 캔 제품부터 생산하고, 내년에는 국내 판매량의 약 75%를 국내 생산으로 충당한다는 목표다.
◆ 일본서 오던 맥주, 국내 생산으로 공급 기간 단축
현장에서 강조된 국내 생산의 첫 번째 효과는 물류 기간 단축이다. 기존에는 일본에서 생산한 맥주를 국내로 들여와 유통하는 데 평균 한 달 반가량이 걸렸다. 국내 생산이 본격화하면 이 기간을 1~2주 수준으로 줄일 수 있을 것으로 하이트진로는 기대하고 있다.
제품이 생산된 뒤 소비자에게 전달되기까지의 시간이 짧아지는 만큼 신선도 관리에도 유리하다. 국제 물류 상황이나 관세 변동, 천재지변 등 외부 변수에 따른 공급 차질 위험을 줄일 수 있다는 점도 국내 생산의 이점으로 꼽힌다.
권광조 하이트진로 프리미엄권역 권역장은 이날 간담회에서 국내 생산 추진 배경에 대해 운송 기간 단축과 안정적인 공급, 일본 현지와 동일한 품질 구현을 핵심으로 제시했다. 일본 맥주를 찾는 소비자가 늘어나는 만큼 수입에만 의존하던 공급 구조를 바꿔 시장 수요에 안정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설명이다.
생산능력도 초도 물량을 소화하기에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김동우 전주공장장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기존 생산설비로 초도 물량을 대응할 수 있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그는 “캔 생산라인 하나만 가동해도 하루 약 5만~6만 케이스를 생산할 수 있다”라고 밝혔다.
맥주는 계절에 따른 수요 편차가 큰 제품이다. 전주공장은 5월부터 9월까지를 성수기로 보고 있으며, 이 기간에는 출고량이 늘어난다. 하이트진로는 기존 설비를 활용해 우선 생산을 안정화하고, 판매 추이에 따라 생산량을 조정할 계획이다. 현재 별도의 설비 투자 계획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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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도 용인시 하이트진로 연구소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하이트진로 장인섭 대표이사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심영범 기자] |
◆ “일본산과 맛 같아야”…기린 제조법·효모까지 적용
국내 생산에서 가장 민감한 대목은 품질이다. 생산지가 일본에서 한국으로 바뀌더라도 소비자가 기존 제품과 다른 맛을 느껴서는 안 된다는 게 양사의 공통된 과제다. 물류 기간을 줄이고 공급량을 늘리더라도 제품 고유의 맛과 향을 유지하지 못하면 브랜드 경쟁력을 지키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이트진로는 이를 위해 기린의 제조 기술과 원재료 규격, 양조 공정, 품질관리 기준을 전주공장에 적용했다. 양사 기술진은 1년 이상 기술 협의와 교류를 진행했으며, 기린 기술진도 국내 생산 현장에 참여해 공정과 품질관리 기준을 점검했다.
기린 이치방 시보리의 핵심은 ‘이치방 시보리 제법’이다. 일반적인 맥주가 맥아를 짜낸 첫 번째와 두 번째 맥즙을 혼합해 만드는 것과 달리, 이 제품은 첫 번째로 짜낸 맥즙만 사용한다. 맥아 본연의 풍미를 살리는 데 초점을 맞춘 제조 방식이다.
효모도 별도로 관리한다. 하이트진로는 기린으로부터 효모를 공급받아 국내에서 배양해 사용한다. 원재료 규격은 물론 양조 온도와 시간, 원료 배합 비율, 최종 제품 기준 등을 수치화해 생산 과정에 적용했다.
생산에 앞서 품질 검증도 진행했다. 하이트진로는 시생산과 평가를 반복하고 기린의 품질 기준을 세 차례 이상 통과한 뒤 생산 승인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국내 생산 이후에도 제품을 일본으로 보내 수치 분석과 관능 검사를 진행하는 등 일본산 제품과의 차이를 지속적으로 점검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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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도 용인시 하이트진로 연구소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하이트진로 권광조 프리미엄권역장이 발표하고 있다. [사진=심영범 기자] |
◆ 물류비 줄어도 가격 인하 대신 마케팅…테라·켈리와 차별화
국내 생산에 따른 비용 절감 효과를 소비자가격에 반영할지도 관심사다. 일본에서 완제품을 수입하는 방식보다 물류 효율을 높일 수 있는 만큼 가격 경쟁력 강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이트진로는 당장 가격 인하에 나서기보다 마케팅과 프로모션에 투자해 소비자 혜택을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권 권역장은 물류비 절감분을 가격 인하보다는 마케팅 활동에 투입하는 방향을 제시했다.
구체적인 매출 목표와 라이선스 비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양사 간 비밀유지 협약에 따른 것이라는 설명이다. 국내 생산에 따른 원가 절감 규모와 수익성 개선 효과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국산 맥주 테라·켈리와의 자기잠식 우려도 질문으로 나왔다. 같은 회사가 국산 맥주와 수입 맥주를 함께 판매하는 만큼 기린 이치방 시보리의 성장으로 기존 브랜드 판매가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권 권역장은 국산 맥주와 수입 맥주 사업은 구분해서 봐야 한다고 답했다. 그는 “하이트진로 전체 판매에서 수입 맥주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8%”라며 “기린 이치방 시보리의 판매 확대는 수입 주류 부문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이트진로가 국내 생산에 나선 배경에는 일본 맥주의 성장세도 있다. 사측 자료에 따르면 2020~2025년 국내 수입 맥주 시장은 연평균 3% 감소했지만 일본 수입 맥주 시장은 같은 기간 연평균 72% 성장했다. 일본 맥주를 제외한 수입 맥주 시장의 연평균 감소율은 12%로 집계됐다.
기린 이치방 시보리도 2025년 역대 최대 판매량을 기록했다.
하이트진로가 제시한 2020~2026년 제품 유형별 연평균 성장률 전망치는 캔 97%, 생맥주 64%, 병 제품 41%다. 브랜드 전체 성장률 전망치는 82.4%다.
하이트진로는 우선 캔 제품의 국내 생산과 판매 안정화에 집중할 계획이다. 이후 시장 반응과 판매 추이를 살펴 병맥주와 생맥주로 생산을 확대할지 검토한다. 해외 수출 가능성도 향후 협력 범위와 시장 상황을 고려해 논의할 예정이다.
하이트진로 장인섭 대표는 “당사의 대표적인 수입맥주 브랜드 ‘기린 이치방 시보리’의 국내 생산은 지난 20년 동안 기린社와의 상호 신뢰 관계를 바탕으로 이끌어온 성공적인 비즈니스 모델이 결실을 맺게 되는 순간이라고 생각한다”며 “이번 기술협정 체결을 계기로 양사의 협업은 단순한 유통 파트너십을 넘어 기술과 품질을 함께 만들가는 미래 전략적 관계로 발전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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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심영범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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