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r View] 공정위 제재, 유통업계 '갑질 근절' 계기 돼야
[Our View] 공정위 제재, 유통업계 '갑질 근절' 계기 돼야
  • 류수근
  • 승인 2019.06.07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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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장은 맘대로 변경하고 판촉비·시설비는 떠넘기고"
대규모유통법 위반 5월 공정위 제재 사례 보니 '목불인견'
'을'이 눈물 닦아주고 건강한 산업생태계 위해 뿌리 뽑아야

유통산업은 대규모유통업체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갑질'이 관행처럼 이어져온 대표적인 영역이다. 유통시장의 독과점화를 규제하는 ‘대규모유통업법’이 제정돼 시행되고 있는 배경이다.

지난해 9월 자유한국당 김성원 의원실이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로부터 받은 ‘2014~2018년 대규모유통업법 위반 현황’을 보면, 2014년부터 지난해 6월까지 대규모유통업법을 위반해 경고나 시정명령, 과태료, 과징금을 부과받은 사례는 총 48건이었다. 이 가운데 62.5%인 30건은 대기업집단 소속 대규모 유통업체가 저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정식 명칭이 '대규모 유통업에서의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인 '대규모유통업법'은 우월적 지위를 남용해 상품판매 대금을 주지 않거나 판매촉진 비용을 떠넘기는 행위, 부당 반품, 파견 종업원 인건비 떼어먹기 등을 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여전히 소규모 유통업자들을 울리는 갑질이 끊이지 않고 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 [사진= 연합뉴스]

 

현장에서는 납품업자나 매장 임차인 등 약자의 눈물을 짜내는 것을 관행처럼 여기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다. 지난 5월 공정위(위원장 김상조)의 제재 내용만 봐도 그 갑질 현실을 실감할 수 있다. 

'홈플러스(주)와 (주)이랜드리테일.' 공정위는 지난달 이 두 곳의 대규모유통업체에 제재를 가했다.

홈플러스에 대해서는 계약 기간이 남았는데도 매장 변경으로 임차인에게 불이익을 안긴 행위와 관련해 통지명령을 포함한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4500만 원의 부과를 결정했고, 이랜드리테일에 대해서는 납품업체에 판촉비와 시설비를 떠넘긴 행위와 관련해 향후 재발방지 명령과 통지명령을 포함한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2억1300만원을 각각 부과하기로 했다.

2012년 1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대규모유통업법은 연 매출액 1천억 원 혹은 매장면적 3천㎡ 이상인 대규모 유통업자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납품업자나 매장임차인 등 소규모 사업자에게 벌이는 갑질을 금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백화점, 대형마트, 편의점, 사업형슈퍼마켓(SSM), TV홈쇼핑 등에 적용된다.

 

[사진= 메가경제DB]
[사진= 메가경제DB]

 

홈플러스와 이랜드리테일에 대한 공정위 제재 이유를 보면 그간 유통업계에 관행처럼 여겨져온 '갑질'의 교과서 같다.

이마트·롯데마트와 함께 국내 대형마트 3사를 이루고 있는 홈플러스(주)는 2015년 5~6월 구미점의 임대 매장을 전면적으로 개편하면서 27개 매장의 위치를 변경했다. 이 과정에서 4개 매장에 갑질이 행해졌다. 충분한 사전 협의나 적절한 보상없이 계약 기간이 남아있는 임차 매장을 22~34% 줄어든 곳으로 이동시켰다.

갑질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매장 크기가 3분의 1가량이나 줄어들게 한 것도 모자라 매장 변경에 따른 추가 인테리어 비용 8733만원 전부를 부담하게 했다.

이같은 홈플러스의 행위는 계약 기간 중에 정당한 사유없이 매장 임차인에게 매장 위치·면적·시설을 변경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는 대규모유통업법 제17조(불이익 제공 행위의 금지) 제8호를 위반한 행위다.

매장을 변경하려면 납품업자나 임차인과 미리 충분히 협의한 뒤 자발적인 동의로 이루어져야 하며, 변경 이유와 변경에 따른 이익과 손실, 필요한 보상 등 객관적 변경 기준이 제시되어야 하는 게 상식이다. 하지만 이같은 상식이 깡그리 무시됐다. 

공정위는 “이번 조치가 대형마트 등이 자신의 편의에 의해 매장을 개편하면서 임의로 매장의 이동과 면적을 결정하고 인테리어 비용을 임차인에게 전가해 온 불공정 관행이 근절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기대했다.

이랜드리테일 CI

 

(주)이랜드리테일의 갑질은 더 폭넓고 독하게 자행됐다.

이랜드리테일은 전국에 여러 아울렛 점포를 운영하고 있는 유통업체로, 소매 업종 연매출액이 1천억 원 이상이어서 ‘대규모유통업자’로 분류된다. 2018년 7월 기준 2001아울렛 8개, 뉴코아아울렛 28개, NC백화점 7개, 동아백화점5개 등 모두 48개 점포를 거느리고 있다.

이랜드리테일은 서면으로 약정하지 않은 판촉행사 비용을 납품업자에 떠넘기고 계약 기간 중 충분한 협의 없이 매장 위치 등을 변경하여 납품업체에 손해를 초래했다고 공정위는 판단했다. 게다가 계약 서면도 계약 체결 즉시 납품업자에게 교부하지 않았다.

이랜드리테일은 2017년 1월부터 12월 기간 동안 자신이 운영하는 17개 아울렛 점포의 이벤트 홀 등에서 314개 납품업자와 5077건의 판매 촉진 행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판촉행사 약정서’에 없던 매대, 행거 등 집기 대여 비용 총 2억1500만 원을 납품업자에게 부담시켰다. 대규모유통업법 제11조 ‘판매 촉진 비용의 부담전가 금지’ 조항을 위반한 행위다.

이랜드리테일의 갑질은 점입가경이다. 2017년 8월부터 11월 기간 중 뉴코아아울렛 평촌점의 154개 납품업자의 점포에 대한 대규모 매장 개편을 했고, 이 과정에서 충분한 사전 상의없이 계약 중이던 6개 납품업자의 매장 면적을 21~60% 줄이고 신규 매장의 인테리어 비용마저 떠넘겼다. 대규모유통업법 제17조 ‘불이익 제공 행위의 금지’ 조항을 위반한 행위다.

공정위가 지목한 불공정 행위에는 계약 서면 지연 교부도 포함됐다. 이랜드리테일은 2017년 1월부터 2018년 6월까지의 기간 중 181개 납품업자와 190건의 상품 공급 계약을 하면서, 거래 형태, 거래 품목 및 기간 등의 계약사항이 명시되고 양 당사자가 서명 또는 기명 날인한 계약 서면을 즉시 교부하지 않은 채 거래를 개시했다.

더욱이 최소 1일에서 최대 137일이 지난 뒤에서야 비로소 계약 서면을 교부했다. 대규모유통업법 제6조 ‘서면의 교부 및 서류의 보존 등’ 조항을 위반한 행위다.

이랜드리테일에 대한 이번 공정위의 제재조치는 대규모 아울렛에서 수시로 실시되는 판촉행사에 소요되는 비용과 관련, 대규모유통업자가 사전에 서면으로 약정하지 않은 비용을 추가로 납품업자에게 떠넘기는 관행에 제동을 걸었다는데 의의가 있다.

대규모유통업자가 납품업자와 공동으로 판촉행사를 실시하고자 하는 경우, 반드시 납품업자와 사전에 참여 여부 및 행사 내용, 소요 비용 분담 등을 서면으로 약정하고 이를 준수하여 납품업자가 예측하지 못한 피해를 입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건 누구나 알 수 있는 상식이다. 하나 이랜드리테일에는 그 상식이 없었다.  

공정위는 “판매 촉진 비용의 분담 비율은 대규모유통업자와 납품업자가 각각 해당 판매 촉진 행사를 통하여 직접적으로 얻을 것으로 예상되는 경제적 이익의 비율에 따라 정하되, 납품업자의 분담 비율이 50%를 초과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공정거래위원회 심판정 [사진= 연합뉴스]

 

유통업계에 대한 공정위의 서슬이 시퍼렇다. 그렇지 않아도 하루하루 버티기 힘겨운 소규모 유통업자들의 눈물을 짜내는 이런 갑질을 되풀이 한다면 대규모유통업체들은 앞으로 칼날 위에 서 있는 형국이 될 전망이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 4월 서울 고려대경영관에서 열린 유통학회 춘계학술대회 기조강연에서 백화점·마트·인터넷쇼핑몰 등 대규모 유통업체가 중소 납품업체에 판매촉진비를 떠넘기는 '갑질' 행위에 대해 “예의 주시하겠다”고 경고한 바 있다.

당시 김 위원장은 '유통산업'이 한국 제조업에 올바른 길을 제시하고 혁신 동기를 부여하는 '내비게이터’ 역할을 한다며 그 중요성과 책임을 역설했다. 이랜드리테일에 대한 공정위의 제재결정은 이후 나온 것이어서 더욱 주목된다.

어떤 산업이든 유통을 통해야 소비자와 연결된다. 소규모 유통업자인 '을'의 눈물은 그 단계에서 끝나지 않고 생산자나 소비자를 포함한 건강한 산업 생태계 형성을 궁극적으로 멍들게 하고 병들게 만든다. 대규모유통업체들의 갑질 행위를 뿌리뽑아야 하는 이유다. 

5월 홈플러스와 이랜드리테일에 대한 공정위의 조치가 또 다른 대규모유통업체들의 불공정한 매장변경, 판촉비 떠넘기기 등 갑질에 대한 전방위 조사와 제재의 신호탄일지 주목된다. 

 

대표필자 편집인 류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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