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가시론] 김준기 전 동부그룹 회장의 잇단 성폭력 의혹과 '오너리스크'
[메가시론] 김준기 전 동부그룹 회장의 잇단 성폭력 의혹과 '오너리스크'
  • 류수근
  • 승인 2019.07.20 15: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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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들어 ‘자본’의 개념에는 전통적인 경제자본과 인적자본 외에 또 하나의 개념이 중시되고 있다. 바로 ‘사회자본’이다. 사회자본은 구직활동 같은 개인적 차원에서부터 기업조직의 효율성, 한 나라의 경제발전 과정에 이르기까지 두루 인용되는 사회학적 개념이다.

사회자본은 다양한 개념으로 해석되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협력과 사회적 거래를 촉진시키는 ‘신뢰’와 ‘규범’, ‘연결망’으로 이해되고 있다. 한마디로 ‘신뢰할 만하다’는 인식이 일상생활이나 경제적 효율성을 추구하는데 핵심적인 요소로 작용한다는 견해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국가든 ‘신뢰’라는 무형의 자산이 물질적인 자본이나 인적인 자본과 어우러질 때 최상의 효율성과 결실로 연결될 수 있다는 개념이다.

지난 한 주 국내 언론에는 국내 굴지의 그룹 창업자이자 전직 회장의 믿기 어려운 성폭력 의혹 정황이 공개되며 많은 이들의 분노를 샀다. 김준기 전 동부그룹(현 DB그룹) 회장의 가사도우미 성폭행 및 성추행 혐의 피소 소식이었다. 

 

김준기 전 DB그룹 회장이 여비서 성추행 혐의로 고소당한 데 이어 가사도우미 성폭행 및 성추행 혐의로 또다시 고소당한 사실이 밝혀졌다. [CG= 연합뉴스]

 

그 파문이 처음 알려진 것은 지난 15일 오후 JTBC ‘뉴스룸’에서였다. 이날 뉴스룸은 '김준기 전 회장, 가사도우미 성폭행 혐의 피소'라는 타이틀 아래 "옛 동부그룹의 창업주인 김준기 전 회장이 성폭행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는 사실을 JTBC 취재진이 확인했다"며 "집안일을 돕던 가사도우미에게 고소를 당했는데 미국에 머물면서 돌아오지 않고 있다. 김 전 회장은 2년전에 여비서를 성추행한 혐의로 고소를 당한 뒤에 회장직에서 물러난 상태다"라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2016년부터 1년 동안 김 전 회장의 경기 남양주 별장에서 일했던 A씨가 "김 전 회장이 주로 음란물을 본 뒤 성범죄를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김 전 회장의 여비서 성추행 사건이 보도된 걸 보고 용기를 내 고소했다고도 말했다"고 전했다.  

JTBC는 A씨가 김 전 회장을 고소했을 때 김 전 회장은 이미 자신의 여비서를 성추행한 혐의로 경찰의 수사를 받고 있었으며 미국에 머물던 김 전 회장은 신병치료를 이유로 귀국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A씨가 당시 김 전 회장으로부터 당한 피해상황을 녹음했다는 녹음파일을 공개했다.

녹음파일에는 "나 안 늙었지" "나이 먹었으면 부드럽게 굴 줄 알아야지"라는 김 전 회장의 발언과 이에 대해 '하지 마세요. 하시 마시라고요"라며 거부하는 A씨의 음성이 담겼다. 

 

JTBC '뉴스룸'이 보도한 피해여성 A씨의 피해상황 녹음파일(윈쪽)과 합의를 시도한 듯한 편지(아래) 내용의 일부분.  [출처= JTBC '뉴스룸' 방송화면 캡처]

 

JTBC는 현재 김 전 회장의 상황도 전했다. 경찰은 외교부와 공조해 김 전 회장의 여권을 무효화하고 인터폴 적색 수배를 내렸으며, 최근 김 전 회장의 거주지까지 파악했지만 김 전 회장이 치료를 이유로 6개월마다 체류 연장 신청을 갱신하며 미국에 있어 체포도 쉽지 않다는 상황이었다. 경찰은 가사도우미 성폭행 건과 여비서 성추행 건 모두 기소중지 의견으로 검찰에 보낸 상태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김 전 회장 측은 “서로 합의했고 돈도 건넸다”며 관련 의혹을 부인했다. 하지만 이튿날 JTBC '뉴스룸'은 추가 보도를 통해, 취재 결과 김 전 회장의 사촌동생 김모씨가 가사도우미에게 최근까지 여러 번 합의를 시도한 것으로 확인됐다며 김모씨가 A씨에게 보낸 편지 내용을 공개했다.   

편지에서는 "회장님 변호사들이 공탁금을 걸고 무고와 손해배상으로 고소하면 아줌마는 돈 주고 변호사를 써야 한다" "만약 회장님이 유죄가 된다고 해도 아줌마 수입이 얼마 안 되기 때문에 손해배상액은 1000만 원 내외가 될 것"이라고도 했다.

편지에는 A씨가 3억 원을 요구했다는 내용도 있는데 A씨는 그런 사실이 없다고 반박했다. 이에 김 전 회장 측은 “A씨가 추가로 돈을 요구했기 때문”이라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지만 성폭행을 부인하면서 굳이 왜 합의를 시도하려 했는지 의문을 남겼다.

이 사건과 관련해 A씨의 자녀라고 밝힌 인물은 16일 "**그룹 전 회장 김**의 성범죄 피해자 가족입니다. 제발 그를 법정에 세워주세요"라며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 그간의 경과를 자세히 담은 게시글을 올렸다.

 

지난 16일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는 피해여성 A씨의 자녀라고 밝힌 인물이 그간의 경과 과정을 상세히 알리며 김 전 회장의 신속한 수사를 호소하는 내용의 게시글이 올라왔다. [출처=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캡처] 

 

A씨의 자녀는 “고발 이후 긴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요지부동인 가해자와 수사기관의 미적지근한 대응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언론보도와 함께 이렇게 청원을 올리게되었다”며 그간의 자초지종과 모친이 겪은 고통을 설명했다.

이 자녀는, 김 전 회장은 음란물 비디오를 보며 사회지도층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여성관을 담은 말들을 했고 “결국 추행과 함께 수위를 더해 거듭하다 차마 제 손으로는 적을 수 없는 그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김**(김준기 전 회장)의 범행은 그 후로도 수 회에 거듭해 일어났고 어머니는 그 환경에서 자포자기의 상태가 되었다”며 더 이상 당하고만 있을 수 없다는 생각에 김 전 회장의 언행들을 녹음하기 시작했다고도 전했다.

자녀는 마지막으로 “저희 가족이 바라는 것은 단 한가지입니다. 저희 가족의 일상을 파괴한 김**이 본인 말대로 그렇게 떳떳하다면 합의하자는 말 하지 말고, 핑계대지 말고 즉시 귀국하여 수사 받고 법정에 서는 일입니다. 그렇게 할 수 없다면 대한민국의 수사기관이 나서서 적극적으로 김**를 체포해 주셨으면 합니다. 제발 저희를 도와주세요”라고 호소했다.

김 전 회장의 가사도우미 성폭행 의혹은 17일 오전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를 통해 피해여성 A씨가 증언을 하면서 더욱 더 공분을 샀다.

2016년에 사건이 벌어졌고 2018년에 고소했는데 1년이 지나서 언론에 제보를 하게 된 이유에 대해, A씨는 “고소를 해도 아무런 진전도 없는 것 같고 부끄럽지만 알려야만 어떤 방법이 나오지 않을까 싶어서 그래서 하게 됐다”고 밝혔다.

A씨는 김 전 회장이 거실에서 음란물을 보며 억지로 앉도록 하고 왜 보는지 설명을 하다 못해 성폭행까지 했다며 당시를 증언했다. A씨는 “일어나려고 하는데 또 앉히고, 앉히고. 그러다가 이제 성폭행까지”라고 말할 때는 고통스러운 상황이 떠오르는지 감정이 복받치는 듯했다.

A씨는 피해를 당한 뒤에도 좋지 않은 형편 때문에 참으며 계속 일할 수밖에 없었는데 김 전 회장이 그같은 행동을 계속했다고 말했다. 또 A씨는 “그러다가 또 갑자기 그러고 나서 아무 말을 안 해요, 그런 일이 있고 나서. 아무 말도 안 하고 그때부터는 정말 완전히 신사가 된 거예요”라며 김 전 회장의 이중성을 고발하기도 했다.

피해여성 A씨는 이번에 공개한 녹음 내용과 관련해 “거기서 벌어진 일의 진짜 1만 분의 1도 녹음이 안 된 거예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출처= JTBC '뉴스룸' 방송화면 캡처]

 

A씨는 김 전 회장의 가사도우미를 그만두던 과정도 설명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나가겠다고 했더니 “돈을 1000만원을 줄 테니까 조용히 나가라고 했다”고 말했다. 합의금은 나 온 뒤 2,3일 있다가 "2200만원을 받았다"고 밝혔다. 

1년 뒤에 고소를 결심한 이유도 얘기했다. 듣고 본 것에 대해 함구한다는 조건으로 합의금을 받았지만 김준기 전 회장의 여비서가 성추행으로 고소하는 걸 보면서 용기를 내서 다시 고소를 하게 됐다는 것이었다. A씨는 김 전 회장 측이 합의를 하자고 변호사를 통해서 계속 연락이 와 “나는 무조건 구속이다. 돈도 필요 없다. 합의라는 건 없다”고 했다는 입장도 밝혔다.  

김 전 회장 측에서 계속 합의 하에 성관계였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대해서도 “전혀 아니에요. 그건 제가 목숨을 걸고 저는 또 그건 아니에요, 정말”이라며 강하게 부정했다.

이 사건은 김준기 전 회장이 질병 치료를 이유로 미국에서 체류 기간을 계속 연장하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반응은 더 냉소적으로 바뀌었다. 

연합뉴스는 17일 경찰의 입장을 전했다. 경찰 관계자는 "김 전 회장은 미국에서 이민변호사를 고용해 질병 치료를 이유로 체류 자격 연장을 신청하고 있다"며 "6개월마다 합법적인 체류 기간을 연장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김 전 회장의 여권은 무효화 처리됐으나 미국에서는 인터폴 적색수배만으로 검거·송환이 불가능하다"며 "법무부가 미국에 범죄인인도 청구를 하도록 요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김 전 회장의 여권이 무효화 된 사실을 미국 인터폴과 국토안보부에 재통보해 상기시키고, 외교부를 통해 미국 사법당국에도 통보 조치했다고 설명했다.  

피해여성 A씨의 증언과 자녀의 국민청원 이후 여론을 의식한 탓일까? 김준기 전 DB그룹(옛 동부그룹) 회장은 18일 변호인을 통해 "주치의의 허락을 받는 대로 귀국해 성실하게 조사받을 예정"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김 전 회장은 A씨와 합의하에 성관계했다는 입장이다. 김 전 회장 측은 "'2017년 1월 해고를 당한 후 해고에 따른 생활비를 받았을 뿐 합의금을 받은 적이 없으며 추가로 거액을 요구한 적이 없다'는 고소인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아울러 A씨가 이와 관련한 각서도 썼다고 주장했다.

여비서 성추행에 이어 가사도우미 성폭행과 성추행 혐의로 고소당한 김준기 전 회장은 누구인가?

그는 고려대 경제학과 4년 때인 1960년대 말 자본금 2400만원으로 직원 2명과 함께 미륭건설(현 동부건설)을 설립했다. ‘미륭’은 ‘아름답게 솟아오른다’는 뜻이었다고 한다. 이후 1970년대 중반 중동에 첫 진출해 큰 돈을 번 것을 성장기반으로 해 빠르게 사세를 확장했고, 이를 바탕으로 제조, 서비스, 금융의 3대 분야 사업다각화에 성공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유동성 위기로 휘청하면서 동부그룹 전체의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이를 통해 부실한 제조계열사들을 정리하고 금융계열사 중심의 현재 그룹으로 재편했다. 이 과정에서 성공신화를 쓴 기업인에서 부실경영으로 실패한 오너라는 오명을 안기도 했다.

김 전 회장은 2017년 9월 여비서 상습 성추행 논란으로 회장직에서 불명예 퇴진했다. 이후 동부그룹은 2017년 11월 DB그룹으로 46년만에 사명을 바꿨다.

김 전 회장의 추가 성폭행 의혹에 DB그룹 측은 언론에 "김 전 회장이 이미 물러난 상황에서 그룹 차원에서는 드릴 말씀이 없다"거나 "김 전 회장 귀국하면 재판 과정 지켜보겠다"고 밝혔다. 어쩌면 DB그룹으로서는 최선의 답변일 터다. 

하지만 창업자이자 전 회장이 잇따라 성폭력 혐의에 휩싸이면서 세간에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DB그룹으로서는 큰 부담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각종 언론과 포털사이트, SNS 등에 끊임없이 김 전 회장의 이름이 거론되면서 자연스럽게 그룹 명이 오르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그룹 창업자=오너'로 통하는 우리나라 기업 환경에서, 그룹 회장직에서 물러났다고 해서 김준기 전 회장을 DB그룹과 별개로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한 회사를 대표하는 ‘오너’가 주는 신뢰성은 기업의 성장과 안정에 더없이 중요한 ‘사회자본’이다. 오너에게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강조되는 이유다. 

오너의 행동거지 하나하나는 사원 개개인이 미치는 영향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그 기업의 ‘평판’과 직결된다. 오너리스크에 따른 기업가치 훼손을 방지하기 위하여 보다 적극적인 사회적 책임활동(CSR)이 요구되는 이유다.

김 전 회장은 과거 굴지의 그룹을 키워낸 성공신화의 주인공이었다. 1999년 한 신문의 기사에도 형식을 배격하고 실질 위주로 내실을 다지는 기업관의 소유자로 소개하고 있다.

이 기사에는 김 전 회장이 당시 사업에 열중하기 위해 술과 담배를 끊을 정도로 일에 전념하는 스타일이었고, 해박한 지시에 모두가 혀를 내두를 정도로 끊임없이 연구하는 회장이었다. 수행비서도 따로 두지 않고 해외출장 때도 혼자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고 적고 있다. 이같은 과거의 대외이미지는 허상이었을까? 

만약 가사도우미 A씨의 증언이 사실이라면 더 늦기 전에 피해자에게 진정으로 사죄하고 용서를 빌고 상응하는 벌을 받아야 한다. 설사 김 전 회장 측이 주장하는 대로 혐의내용이 사실과 다르다고 하더라도 사법당국에 당당히 출두해 자신의 무죄를 밝히면 되는 일이다.

향후 김 전 회장의 유무죄는 사법당국에서 가려지겠지만 미국에서 치료 명목으로 체류를 연장하며 벌어진 일련의 상황만으로도 김 전 회장의 신뢰성은 떨어질 대로 떨어져 있다. 어떤 경우든 하루빨리 경찰에 출두해 성실히 조사를 받아야 한다. 주치의의 허락을 받는 대로 귀국해 성실하게 조사받을 예정이라는 말을 믿고 싶다.

'진정성 있는 자세'. 그것이 그간 '김준기'라는 이름 석자를 믿고 따랐던 사람들을 더이상 실망시키지 않고, 또 그동안 스스로 일궈온 동부그룹의 성공신화에 더 이상 흠집을 키우지 않는 길일 것이다.  

DB그룹(동부그룹)의 홈페이지에는 ‘DB 김준기 문화재단’을 알리는 페이지가 있다. "'좋은기업'을 경영의 제일 신조로 삼고 있는 DB의 사회공헌기관"이라고 재단을 소개하고 있다.

홈페이지를 열면 ‘꿈과 이상을 가지고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과 함께 그 기회를 열어가는데 앞장서겠다’는 이근영 이사장의 인사말 제목이 단박에 눈에 들어온다.

재단이 "비전과 기회가 있는 밝은 사회를 열어가는 길"을 위해 김 전 회장이 우선 해야할 일은 무엇일까? 불명예로 떠난 '회장님'이지만 더 늦기 전에 진솔하고 당당한 모습, 염치를 아는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그것이 동부그룹(DB그룹)의 창업자이자 전 회장으로서 임직원에 대한 최소한의 의무이자 도리이기도 할 것이다.

편집인 류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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