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돌아온다' 관극평] 선욱현 극작가, 인간 회귀본능에서 '용서와 소통의 세계'를 읽다

박정인 해인예술법연구소장 / 기사승인 : 2020-06-22 12:2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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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가경제= 박정인 해인예술법연구소장] 연극은 가을이 왔나 돌아보면 떠나는 바람과 같이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눈이 막 흩뿌리는 스산한 시골의 한 식당 ‘돌아온다’를 무대로 펼쳐진다.


“여기서 막걸리를 마시면 그리운 사람이 돌아온다” 라는 글귀에서 말해주듯이 이 식당에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그들은 우리네 일반 이웃과 다를 바 없이 욕을 하고 노트북을 하며 전화를 하고 휴대폰 카메라로 인증샷을 찍고 맛있는 음식을 시켜먹고 화장실에도 다녀온다.


그러나 그들을 가만히 들여다 보다 보면 그들은 결코 흔한 우리네 이웃이라고 보기는 어렵고 도시의 바쁜 삶 속에서는 쉽게 보기 어려운 과거에 사로잡혀 지금 시간을 허송세월 보내고 있는 군상들이다.



연극 '돌아온다' 포스터.
연극 '돌아온다' 포스터.


작가는 잊혀져 가는 현대의 가치를 세 가지로 설계한 것으로 추정된다.


첫 번째 가치, ‘기다림’.


그들은 기다린다. 현대의 인간관계는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가벼운 관계들로 가득하다. 그러나 그들은 상대방이 그들을 어떻게 해도 그저 기다린다. 너와 나는 같은 시간에 마음의 문이 열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 문이 동시에 열리기를 기대하고 고대하며 자신이 열려 있음을 알리는 행위로 그들은 이 식당에서 막걸리를 마시는 것이다.


두 번째 가치, '과거'.


그들은 과거에 살고 있다. 몸은 현재에 있고 때로는 막걸리를 혼자서 상 앞에서 먹기도 하고 여럿이고 하나의 막걸리를 나누어 마시는 것으로도 보이지만 그렇게 같은 것 같지만 다른 것이 인간이라는 오묘한 생명체이다.


그리하여 현재의 표현은 ‘식당에서의 기다림’ 이라는 외부적으로 같은 표현으로 나타나지만 그들은 온통 과거에 사로잡혀 있을 뿐이다.


치매 걸린 아버지를 버렸기 때문에 귀신이 나오는 식당에서 음식을 팔고 있는 사내는 어쩐지 처연하고, 아내를 때렸기 때문에 자신의 목을 매달고 실패하는 사내는 그 못난 모습에서 내 모습을 보기도 하고, 아들을 기다리기 때문에 간암 말기에도 병원을 가지 못하는 할머니와 퇴근만 하면 SNS를 하는 일본여인은, 모두 다른 이유로 모두 다른 사람을 기다리며 식당을 배회한다.


세 번째 가치, '용서'.


“고기의 살과 피를 썰은 칼로 두부도 호박도 썰지 말아주세요.” 새로 온 주지스님은 된장찌개 한 그릇 시키면서 칼을 쓰지 말아달라고 주인에게 말한다.


이 기묘한 대사에서 나는 “옳거니!” 하고 무릎을 내리쳤다. 연극 ‘돌아온다’는 자신이 과거에 했던 행위가 누군가에게는 칼이 되었던 것이 아닐까 반추하는 여정이다.


그 여정에서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들, 자신이 잃어버린 사람과 그들에게 했던 칼을 뱃속에 기억하고 끊임없이 그 뱃속의 칼이 자기를 겨누어 아프고 아픈 사람들을 하나하나씩 창호지 문에 종이 덧대나가듯이 그들의 부분적인 유사함을 모아 진짜 돌아와야 할 사람들은, 기다리는 누군가가 아니라 현실 속에 있지만 과거에 있으며 자기 자신의 참인생을 기다리는 그들 자신임을 작가는 영리하게 숨은그림 찾기처럼 숨겨두었다.


그리하여 무대 한 편에 누군가를 잃어버린 사람들이 사연을 써 붙인 게시판을 소품으로 등장시키고 이 소품을 알뜰하게 사용하여 기다림을 연결시키는 작가의 원숙한 터치는, 삼라만상의 모호성으로 덧없는 인생사에 있어 인생을 허비하지 않는 진정한 용서는 온전히 자신의 내면에 있다는 것과 그 칼을 버리듯 없애는 그것만이 세상으로 나아가는 발걸음, 보편적인 큰 세계로 이해하고 다시 재연결하며 확장시킬 수 있는 것임을 말하는 듯하다.


회귀적 본능, 윤회...


수레바퀴가 끊임없이 돌아가는 것을 보면 분명 함께 가고 있는 바퀴이건만 그들 사이에 교감이 있는 것은 아니고 운명처럼 말이나 마부에게 끌려가는 형국이다. 그리하여 인간은 잠깐의 함께함을 영원이길 바라는 바람을 간직한 개개의 외로운 존재일 수밖에 없다.


양 귀신들의 독백에서 집 나간 아내에게 돌아와 달라는 남편의 구슬픈 독백을 듣지 못한 채 “여보 나 여깄는데 좀 데리러 와달라”는 아내의 구천을 떠도는 대답없는 독백은 같이 있어도 같이 있을 수 없었던 수레바퀴와 같은 고통이다.


그러나 그 고통은 그들의 존재 이유이고 한 해의 추수를 마치고 겨울밤으로 들어가는 차갑고 시린 인간이 버릴 수 없는 심연의 고독과 존재 본연의 외로움과 맞닿아 있다.


작가는 이 식당을 지키고 있는 음식을 만드는 사내가 많은 사람들의 처지를 지탱해주고 잘되기를 바라는 디딤돌처럼 보여주다가, 결국에는 그가 기다린 사람이 돈 때문에 자꾸만 돌아오는 아들에게 뿌린 대로 거두는 법이라는 말로 작별을 통보받고 거울 앞에서 오열하면서 그곳에 있었던 자신의 숙명을 깨닫게 하는 모습에서, 모든 인간이 겨울날 언땅에 안 넘어지려고 버티고 미끄러져도 일어나며 평형을 유지하려고 했던 자신을 겨냥해 온 원죄의 속박에서 풀어나게 해준다.


코로나와 대학로...


코로나19로 대학로가 움츠러 들까 걱정하며 오지랖 넓은 나는 자주 혜화동 점검에 나서지만 여가가 늘어나서인지 선욱현 작가의 고품격 서민연극의 파워가 강한 것인지, 유명 배우들의 콜라보가 좋았던 것인지...객석은 만석이었다.


인간 누구에게나 회귀본능이 있다. 돌아보면 예전에 즐겨했던 일, 사람, 관계를 다시 찾아 매달리며 자기 인생을 붙들어 놓고 거기에서 의미를 찾고 있다. 그것은 인간이기에 동상이몽이라고들 하지만 결국 인간으로 완성되고 싶어하고 인간으로 이해와 용서를 받고 싶어하는 본능에 충실한 것이다. 벌레가 아니니까.


작가는 굳이 식당에서 파는 제1품목을 마구 걸러지는 술인 ‘막걸리’로 정했고, 배우는 막걸리를 마시면서 창가의 눈을 바라보며 눈이 쌀알처럼 생겨서 ‘싸릿눈’이라고 말한다. 또한 밥을 낱낱이 먹지 않고 된장찌개 전체에 말아먹는 모습에서 쌀을 형상화하는 ‘흰색’의 깨끗해지는 주문을 거는 듯하다.


우리네 특별할 것 없는 삶의 사연들이 몽환적 세계 속 소복 입은 부부의 슬픔으로 치환되지만 , 거울 앞에서 눈물 흘리는 사내의 정화과정을 통해 결국 스스로 용서하기 위해 우리는 오늘 하루 열심히 살고 용서와 소통의 세계에 연결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닐까.


여러 가지 업무로 머리가 지끈지끈하고 내가 했던 과거의 행동으로 현재에서 온전히 벗어나지 못해 생각이 많아지고 있다면, 연극 ‘돌아온다’를 보고 녹빛잎사귀가 성숙한 여인처럼 짙어지는 여름이 있는 대학로를 한번 둘러보자.


어차피 우리는 돌아올 거 아니겠는가? 터미네이터의 아놀드 슈왈츠네거가 말했듯이!! I'll be b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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