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급성심근경색증 쓰러진 후 6년5개월간 병상에서 지내
이재용, 두 자녀와 말없이 빈소 도착…정몽윤·CJ 이재현도 조문외신들 "글로벌 기업 일궜다" vs "미심쩍은 재산 이전"
박병석·이낙연 조화 보내…문재인 대통령도 조화 예정 [메가경제= 류수근 기자] 삼성전자를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시킨 한국 재계의 거목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심근경색증으로 쓰러진지 6년 5개월만에 세상을 떠났다.
이 회장은 25일 새벽 4시 서울 강남구 일원동 서울삼성병원에서 향년 78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고인은 선친인 호암(湖巖) 이병철 삼성 창업주 별세 이후 1987년 삼성그룹 2대 회장에 오른 뒤 그동안 삼성그룹을 이끌었다.
그러나 2014년 5월 10일 밤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자택에서 급성 심근경색을 일으켜 병원에서 심폐소생술(CPR)까지 받고 소생해 치료를 이어왔다. 이후 자가호흡을 하며 재활치료를 받아왔으나 끝내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유명을 달리했다.
이 회장은 자가호흡이 돌아온 뒤부터 최근까지 산소호흡기 등 기계장치 없이 지내왔다는 게 삼성의 전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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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재계를 대표하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5일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78세. 사진은 2010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부진 호텔 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과 CES2010에 참석한 이건희 회장. [사진= 삼성제공/연합뉴스] |
빈소는 삼성서울병원에 차려졌으며 28일 오전 발인한다. 장지는 부친인 이병철 회장과 모친 박두을 여사가 묻혀 있는 용인 선영으로 알려졌다. 유언장을 남겼는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 관장,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사위 김재열 삼성경제연구소 사장이 있다.
부인 홍라희 여사와 이재용 부회장 등 가족들은 전날 이건희 회장이 위중하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을 찾았으며 함께 고인의 임종을 지켜본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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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7년 회장 취임식에서 취임사하는 이건희 회장. [사진= 삼성 제공/연합뉴스] |
삼성은 이날 이건희 회장의 별세 소식을 알리며 이 회장의 장례를 '가족장'으로 간소하게 치르겠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장례는 고인과 유가족의 뜻에 따라 간소하게 가족장으로 치르기로 했다"며 "조화와 조문은 정중히 사양하오니 양해해주시기 바란다"고 알렸다.
장례식장 관계자는 취재진이 몰리자 출입문에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장례식장에) 실내 50인 이상 모이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빈소가 마련된 지하 2층에 기자들의 출입이 제한된다'는 내용의 안내문을 부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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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5일 오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이날 오후 4시 57분께 이건희 회장의 빈소가 차려지는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 두 자녀와 함께 도착했다.
두 자녀와 함께 흰색 마스크를 쓰고 검정 정장을 입은 이 부회장은 굳은 표정을 한 채로 아무 말 없이 취재진 앞을 지났고, 장례식장 로비에서 전자출입명부를 작성한 뒤 빈소가 차려질 예정인 장례식장 지하로 향했다.
정재계의 조문과 조화도 이어졌다. 이재현 CJ 회장은 가족과 함께 조문했다. 이 회장은 "국가 경제에 큰 업적을 남기신 위대한 분"이라면서 이재용 부회장 등 유족을 위로했다.
정몽윤 현대해상화재보험 회장은 빈소를 방문해 취재진에게 이 회장은 "큰 거목이셨다"고 말했고, 정몽규 HDC그룹 회장도 함께 방문해 애도의 뜻을 표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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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별세한 25일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 박병석 국회의장이 보낸 근조화환이 빈소로 옮겨지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
박병석 국회의장과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 한화 김승연 회장 등 정재계 인사들이 보낸 조화도 속속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빈소에 조화를 보내고,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을 보내 유족들에게 이 회장 별세에 대한 구두 메시지를 전달할 예정이다.
◆ 재계 일제히 애도 "한국 산업 고도화 업적…도전·혁신 계승"
이 회장의 별세 소식에 경제단체들은 일제히 애도를 표하며 고인을 추모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이 회장은 파격의 혁신 경영을 통해 새로운 산업인 반도체와 모바일 등 첨단 분야에 도전함으로써 삼성을 글로벌 초우량 기업으로 키워냈다"며 "삼성의 변신과 성공을 주도하며 우리도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줬다"고 밝혔다.
대한상의는 이어 "이 회장은 끊임없이 미래 산업을 개척하고 적극적인 투자를 추진해 한국 산업구조를 고부가가치 첨단 산업으로 고도화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며 "경제계는 고인의 도전·혁신 정신을 계승·발전시켜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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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9년 3월 11일 당시 전경련 신임회장단 취임인사회에서 참석자들과 대화하는 이건희 회장. 왼쪽부터 이건희 삼성 회장, 김우중 대우회장, 김종필 국무총리, 정몽구 현대차 회장. [사진= 연합뉴스] |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도 "이 회장은 삼성을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시켰을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경제를 선진국 반열에 올려놓은 재계 최고의 리더였다"며 깊은 애도를 표했다.
전경련은 특히 "'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꾸자'는 고인의 혁신 정신은 우리 기업인의 가슴 속에 영원토록 남아 있을 것"이라며 "고인의 정신을 이어받아 우리 경제가 처한 위기를 경제 재도약의 발판으로 삼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허창수 전경련 회장은 별도 명의의 추도사를 내고 "병상에서 일어나 건강한 모습으로 뵙기만을 기다렸는데, 이렇게 황망히 떠나시니 슬픔과 충격을 주체할 길이 없다"며 "2등 정신을 버리라는 고인의 큰 뜻을 저희 후배들이 소중히 이어받아 1등의 길을 걸어가겠다"고 말했다.
한국경영자총연합회(경총)도 공식 논평을 내고 "경영계는 불굴의 도전 정신과 강한 리더십으로 우리나라 산업 발전을 견인했던 재계의 큰 별,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별세 소식에 존경심을 담아 깊은 애도를 표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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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년 5월 12일 청와대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과 악수하는 이건희 회장. [사진= 연합뉴스] |
경총은 "경영계는 반세기를 지나 100년 기업을 향해 도약하는 삼성에 '끊임없는' 발전이 있기를 기원하는 한편, 위기마다 도전정신과 강한 리더십으로 한국 경제의 지향점을 제시해줬던 고인의 기업가 정신을 이어받아 지금의 경제 위기 극복과 경제 활력 회복에 최선의 노력을 다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무역협회는 "한국경제계에 큰 획을 그은 이건희 회장의 별세에 무역업계는 깊은 애도를 표한다"면서 "이 회장은 삼성그룹을 세계 최고 기업으로 성장시키고 우리나라가 무역 강국이자 경제선진국이 될 수 있도록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 주요 외신들 고인의 명암 상세히 조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별세 소식에 주요 외신들은 고인이 남긴 빛과 그림자를 상세히 조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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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별세한 25일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이건희 회장 별세 관련 속보를 지켜보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
미국의 유력지인 뉴욕타임스(NYT)는 이날 이 회장이 "삼성을 스마트폰, 텔레비전, 컴퓨터 칩의 글로벌 거인으로 만들었다"고 평가하면서도 "이른바 '재벌'이라고 불리는 한국의 가족 기업 왕국이 그들의 영향력을 지키는 미심쩍은 방식들"을 보여주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NYT는 특히 이 회장이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보다는 제품의 품질 향상에 주력해온 점도 자세히 전해 눈길을 끌었다.
미국 경제 신문인 월스트리트저널(WSJ)도 이 회장이 "30여년 삼성을 이끌면서 이 회사를 한국을 넘어서는 글로벌 브랜드로 변모시켰다"고 평가했다.
이와 함께 이 신문은 이 회장의 별세로 삼성 승계에 새로운 의문이 제기될 것으로 진단했다.
신문은 또 "이 회장은 회사의 최대 개인 주주"라면서 "이를 아들이나 두 딸에게 이전하는 데는 한국의 상당한 상속세 때문에 시험대에 오를 것"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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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삼성전자 서초사옥. [사진= 연합뉴스] |
영국 로이터 통신은 "글로벌 기술 대기업을 일군 오점의 거인(tainted titan)'이라는 제목으로 이 회장 이 회장의 부고 기사를 타전했다.
통신은 장문의 기사에서 이 회장의 발자취를 상세히 소개했다. 특히 그가 경영진에게 "끊임없는 위기의식(a constant sense of crisis)"을 심어줘 "변화를 주도하고 자기만족을 배격하도록(to drive change and fight complacency)" 했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이 통신은 이 회장과 삼성이 "비판 세력 및 행동주의 주주들로부터 경제적 영향력 행사(economic clout), 위계적이고 불투명한 지배구조(hierarchical and opaque governance), 가족 재산의 미심쩍은 이전(dubious transfers of the family wealth) 등으로 비난받았다"고 전했다.
◆ 故 이건희 회장은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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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주요 연보. [그래픽= 연합뉴스] |
이건희 회장은 1942년 1월 9일 대구에서 이병철 회장과 박두을 여사의 3남 5녀 중 일곱번째이자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이후 경남 의령 친가로 보내져 할머니 손에서 자라다 1947년 상경해 학교를 다녔고 1953년 선진국을 배우라는 부친의 엄명으로 일본 유학을 떠났다. 유학생활을 마치고 서울사대부고 재학시절에는 레슬링부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어린 시절에는 영화 감상과 애완견 기르기 등에 심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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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3년 신경영 선언하는 이건희 회장. 2020.10.25 [사진= 삼성 제공/연합뉴스] |
일본 와세다대학 상학부와 미국 조지워싱턴대학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뒤 1966년 서울대 응용미술과에 재학 중이던 홍라희 여사와 만나 이듬해 결혼했다.
이 회장은 1970년대 미국 실리콘밸리를 누비며 하이테크 산업 진출을 모색했고 1978년 삼성물산 부회장으로 승진하면서 삼성그룹 후계자로서 경영수업을 시작했다.
삼성의 해외사업추진위원장을 맡아 유공 인수전에 뛰어들었으나 쓰라린 실패를 맛본 이 회장은 삼성 경영권을 승계하기까지 20여년간 우여곡절을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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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8년 정계최고 경영자 전지 세미나 참석한 이건희 회장. [사진= 삼성 제공/연합뉴스] |
애초 그룹 경영권을 물려받은 형인 고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이 한국비료 사카린 밀수사건으로 호암의 눈밖에 나면서 이 회장이 후계자로 낙점됐다.
1982년에는 양재대로에서 덤프트럭과 교통사고가 나 아찔한 순간을 넘기기도 했다.
1987년 이병철 창업주 별세 이후 그룹회장에 취임한 고인은 1993년 '신경영 선언'을 통해 초일류 삼성의 기틀을 닦았다.
삼성가 분할이 거의 완료된 뒤에는 삼성전자 임원들을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소집해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유명한 발언을 남기며 제2의 창업을 선언했다.
이후 삼성전자는 품질경영, 질경영, 디자인경영 등으로 대도약하며 지금의 일류 기업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87년 1조원이던 시가총액은 2012년 390조원대로 40배나 성장했고 총자산 500조원의 외형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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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16라인 반도체 기공식에 참석한 이건희 회장. [사진= 삼성 제공/연합뉴스] |
2006년 글로벌 TV시장에서 일본 소니를 제치고 세계 1위를 차지했고, 애플을 따라잡으며 스마트폰시장 1위도 달성했다. 메모리 반도체를 포함해 20여개 품목의 글로벌 1위를 일궈냈다.
이 회장은 이처럼 한국에서 가장 성공한 기업인으로 우뚝 섰지만 각종 비자금 사건과 배임 혐의에 연류되는 등 오점도 남겼다.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로 시작된 삼성비자금 사건으로 특검 조사를 받았고, 특검팀에 의해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되자 2008년 퇴진과 전략기획실 해체 등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선대 회장부터 이어진 삼성의 '무노조 경영' 철칙을 계속 고집하면서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한 재계·체육계 건의로 단독사면된 이 회장은 2010년 경영일선에 복귀했고 조직 재정비와 삼성의 새로운 도약을 위해 헌신했다.
삼성전자가 카피캣의 오명을 씌운 애플을 추월하는 데도 고인의 집념이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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