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가경제=김민준 기자] 국내 제약·바이오기업 14곳이 올해 반기보고서에서 의견거절을 받으며 상장폐지 위험에 놓였다. 완전자본잠식, 회계자료 신뢰성 부족, 자금거래 불투명성, 계속기업 불확실성, 경영권 분쟁 등 사유도 다양하다.
겉으로 보면 개별 기업의 문제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몇몇 회사의 경영 실패로만 볼 수 있을까. 왜 이런 기업들이 만들어졌고, 왜 위험 신호가 오랫동안 시장에서 제대로 걸러지지 않았는지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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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재천 가톨릭대학교 의생명과학과 교수 |
신약개발 기업과 좋은 회사는 다르다. 제약·바이오기업의 가치는 흔히 파이프라인 수, 임상시험 건수, 기술이전 규모, 플랫폼 기술 보유 여부 등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신약개발은 임상 진입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임상을 통과하고 허가를 받아야 하며 생산과 품질관리, 공급망까지 갖춰야 한다. 더 나아가 보험급여를 통해 실제 처방과 환자 투여로 이어져야 비로소 신약의 산업적 가치가 완성된다.
임상단계 파이프라인의 잠재가치와 기업의 지속 가능한 사업가치는 같은 말이 아니다. 신약개발에는 실패가 따른다. 개발기간은 길고 자금도 많이 든다. 수년간 적자를 낼 수도 있다. 그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과학적 실패와 경영·재무 실패를 구분하는 것이다.
후보물질이 임상에서 실패하는 것은 연구개발 과정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자금조달만 반복되고 사업모델 검증은 부족하며 회계정보의 신뢰성까지 흔들린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제약·바이오기업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문제를 신약개발의 특수성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과학에는 실패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자본시장에는 투명성과 설명책임이 필요하다. 이번 14개 기업의 사례에서 더 무겁게 봐야 할 것도 이 지점이다. 완전자본잠식보다 무서운 것은 ‘신뢰의 잠식’이다.
무엇을 연구하는지도 중요하지만 실제 어디까지 왔는지가 더 중요하다. 얼마를 조달했는지보다 그 돈이 어디에 쓰였고 어떤 연구성과로 이어졌는지를 봐야 한다. 매출이 발생했다면 그 실질은 무엇인지, 대여금은 회수 가능한지, 거래와 재무제표를 제대로 검증할 수 있는지도 따져야 한다.
결국 자본시장에서 기업이 잃어서는 안 되는 것은 돈만이 아니다. 신뢰다. 자본은 다시 조달할 수 있다. 그러나 신뢰가 무너지면 투자와 연구개발의 선순환도 멈춘다. 신약개발 실패는 다시 도전할 수 있지만, 시장의 신뢰까지 무너지면 기업은 다음 기회를 얻기 어렵다.
이번 상장폐지 위기에서 먼저 돌아봐야 할 것도 바로 이것이다. 신약개발의 실패 자체보다 그 실패를 감당할 수 있는 기업이었는지, 과정은 투명하게 설명됐는지, 투자자가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정보가 충분했는지가 더 중요하다.
신약개발 기업과 좋은 회사는 다르다. K-제약·바이오가 다시 신뢰를 얻으려면 이 차이부터 분명히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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