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제마진 뛰는데 운임도 사상 최고”…정유업계, ‘호황 속 비용 압박’ 이중고

주영래 기자 / 기사승인 : 2026-09-23 10:54:02
디젤 크랙마진 사상 최고권…제품 공급 부족에 정제마진 확대
VLCC 운임 배럴당 30달러 돌파…원유값 내려도 도입비 부담 지속

[메가경제=주영래 기자] 국제유가가 고점에서 조정을 받고 있지만 국내 정유업계의 원가 부담은 쉽게 낮아지지 않을 전망이다. 석유제품 공급 부족으로 정제마진은 크게 뛰고 있는 반면, 중동발 물류 차질로 초대형 유조선(VLCC) 운임까지 사상 최고 수준으로 치솟으면서 정유사들의 실제 수익성은 ‘제품가격 상승폭과 운송비 부담의 싸움’에 달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유진투자증권의 정유·화학 주간 보고서에 따르면 사우디아라비아의 원유 수출은 최근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 사우디 아람코는 9~10월 라스타누라에서 출하하는 원유 약 6000만배럴을 오만 인근에서 선박 간 환적(STS) 방식으로 공급할 계획이며, 한국과 중국 정유사들이 주요 구매자로 거론되고 있다.
 

▲ 정유업계, ‘호황 속 비용 압박’ 이중고. [사진=AI]

사우디 원유 수출은 지난 8월 하루 240만배럴까지 줄었다가 9월 들어 400만배럴 이상으로 회복했다.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수출도 8월 하루 70만배럴 수준에서 최근 6일 평균 290만배럴까지 늘어난 것으로 분석됐다. 공급 차질 우려가 일부 완화되면서 국제유가 역시 고점에서 내려오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문제는 원유 공급 회복과 물류 정상화가 별개라는 점이다.

호르무즈 해협의 통항 제한이 이어지는 가운데 오만 인근에서의 선박 간 환적이 늘어나면서 VLCC 부족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걸프 지역에서 아시아로 향하는 VLCC 스팟 운임은 배럴당 30달러를 넘어 사상 최고 수준까지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원유 가격이 하락하더라도 정유사가 실제 부담하는 원유 도입 비용이 크게 낮아지기 어려운 이유다.

대체 원유를 확보하기 위한 경쟁도 원가 부담을 키우고 있다. 중동산 원유 공급 차질에 대응해 정유사들이 다른 지역 원유 확보에 나서면서 러시아산 ESPO 가격도 배럴당 120달러를 넘어 브렌트유 대비 20달러 이상 프리미엄이 붙은 것으로 분석됐다.

반면 석유제품 시장은 원유 시장보다 더 타이트한 상황이다.

러시아와 걸프 지역의 디젤 순수출은 지난 2월 대비 하루 160만배럴 감소했다. 이에 유럽 디젤 선물 가격은 최근 배럴당 210달러까지 상승했고, 아시아 디젤 크랙마진도 한때 배럴당 87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원유 가격은 조정을 받고 있지만 정제제품 가격은 오히려 오르는 이례적인 흐름이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실제 주요 석유제품 가격도 일제히 강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 일주일 사이 WTI 가격은 5.7% 상승했고 휘발유는 7.1%, 등유 8.6%, 경유는 11.0% 올랐다. 고유황중유 가격도 8.3% 상승했다.

특히 경유 가격 상승세가 두드러졌다. 보고서에 따르면 경유 가격은 배럴당 166.8달러에서 185.3달러로 일주일 새 11.0% 뛰었다. 같은 기간 휘발유는 133.6달러에서 143.1달러, 등유는 167.4달러에서 181.8달러로 올랐다.

정유사 입장에서는 제품가격 상승이 정제마진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지만, 원유 운송비 급등이 수익성의 변수로 떠오른다.

유진투자증권은 현재 정유시장을 ‘높은 정제마진과 높은 운임이 동시에 나타나는 이례적인 구간’으로 평가했다. 디젤 공급 부족으로 명목 정제마진은 크게 확대됐지만 VLCC 부족과 우회 운송 탓에 스팟 원유 도입 비용도 함께 급등했기 때문이다.

황성현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정유사의 실제 수익성은 디젤 크랙마진 자체보다 석유제품 가격 상승폭이 원유 운송비 상승폭을 얼마나 웃도느냐가 중요하다고 분석했다.

현재까지는 제품 공급 부족에 따른 가격 상승 효과가 더 큰 것으로 평가된다. 다만 고운임이 내년까지 이어질 경우 정유사들이 평균 약 70%의 장기 운송계약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실제 마진 개선폭은 시장 기대보다 작아질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석유화학 제품 가격도 전반적으로 오름세를 나타냈다.

자일렌 가격은 일주일 새 5.1% 상승했고 프로필렌 4.8%, PX 4.7%, PS 4.3%, 톨루엔 3.5% 각각 올랐다. 반면 태양광 관련 제품은 메탈실리콘이 0.9% 하락했고 모듈 가격은 사실상 보합세를 나타냈다.

결국 정유업계는 당분간 ‘정제마진 호황과 물류비 급등’이라는 상반된 변수를 동시에 마주할 전망이다. 제품 공급 부족이 이어질 경우 정제마진 개선 효과가 실적을 끌어올릴 수 있지만, VLCC 운임과 대체 원유 조달 비용이 장기화할 경우 수익성 개선 폭을 상당 부분 깎아낼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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