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고 줄이고 합치고 키운다…신동빈, 롯데 ‘판갈이’ 잰걸음

심영범 기자 / 기사승인 : 2026-09-02 11:05:35
비핵심 사업·유휴자산 매각 속도…올해 1.7조원 이상 확보
롯데쇼핑·롯데웰푸드 등 상반기 수익성 개선…화학·건설도 반등
AX·바이오에 투자 집중…송도 1공장 내년 상업 생산 ‘초읽기’

[메가경제=심영범 기자]롯데그룹이 비핵심 사업과 유휴자산을 잇달아 매각하며 재무구조 개선과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에 속도를 내고 있다. 여기에 주요 계열사의 수익성 개선과 인공지능 전환(AX), 바이오 등 미래 성장동력에 대한 투자를 병행하면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강조해온 ‘선택과 집중’ 전략이 구체적인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는 평가다.

 

롯데는 지난 1일 호텔롯데와 부산롯데호텔이 보유한 롯데렌탈 지분 매각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결합 승인을 받았다고 밝혔다. 롯데는 주주총회 등 후속 절차를 거쳐 오는 10월 거래를 최종 종결할 예정이다.

 

앞서 롯데는 지난달 11일 글로벌 투자회사 TPG와 롯데렌탈 경영권 지분 61.2%를 매각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매각 대상은 호텔롯데 보유 지분 38.1%와 부산롯데호텔 보유 지분 23.0%다. 매매가격은 주당 5만9000원으로 총 거래금액은 1조3105억원이다.

 

▲ 신동빈 롯데 회장. [사진=롯데]

 

롯데는 기업가치와 인수구조, 고용보장, 거래 종결 속도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TPG를 인수자로 선정했다. 계약 체결 이후 기업결합 심사를 진행했고 이번에 공정위 승인을 받으면서 거래 종결을 위한 주요 절차를 마무리했다.

 

롯데는 롯데렌탈 매각으로 유입되는 자금을 호텔롯데와 부산롯데호텔의 재무건전성 개선과 사업 경쟁력 강화에 투입할 방침이다.

 

특히 호텔롯데의 경우 실적 개선세가 뚜렷하다. 호텔롯데는 올해 상반기 연결 기준 매출 2조6560억원, 영업이익 1356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지난해 상반기 443억원에서 약 3배 수준으로 증가했다. 외국인 관광객 증가에 따른 호텔·면세 사업 개선 등이 실적을 뒷받침했다.

 

롯데렌탈 매각으로 계열사 지원에 따른 차입 부담이 완화되면 조달 비용을 낮추고 신규 투자 여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게 롯데 측 설명이다. 롯데는 확보한 재원을 국내 주요 호텔의 리뉴얼과 프리미엄 브랜드 운영 역량 강화 등에 활용해 호텔사업의 수익구조를 개선할 계획이다.

 

롯데의 자산 효율화 행보는 롯데렌탈 매각에 그치지 않는다. 롯데는 올해 비주력 사업과 유휴자산 매각 등을 통해 약 1조7000억원을 확보했다.

 

비주력 사업 매각의 경우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가 지난 5월 자회사 롯데에코월 지분 90%를 1708억원에 매각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유휴자산 매각도 이어졌다. 롯데쇼핑과 롯데웰푸드는 분당물류센터를 매각했으며, 롯데마트는 킨텍스점을 820억원에, 롯데네슬레코리아는 청주공장 및 부지를 347억원에 매각했다.

 

올해 진행된 관련 거래 규모는 1조7300억원을 넘어선다. 사업과 자산을 무조건 확대하기보다 수익성이 낮거나 그룹의 중장기 전략과 맞지 않는 자산을 정리해 핵심 사업에 자원을 재배분하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실적 개선에 구조조정까지…롯데 ‘수익성 중심’ 전환

 

주요 계열사의 실적 개선도 가시화되고 있다. 롯데쇼핑은 올해 상반기 매출 7조666억원, 영업이익 3428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3.8%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81.5% 급증했다.

 

핵심 점포 경쟁력 강화와 저효율 점포 재편, 판관비 효율화 등이 실적 개선에 영향을 미쳤다. 백화점 사업에서는 본점과 잠실점을 중심으로 핵심 점포를 상권 전체를 아우르는 거점으로 육성하는 ‘타운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외국인 고객 공략도 강화하고 있다. 백화점 사업부는 외국인 전용 멤버십 등을 통해 올해 상반기 외국인 매출 6400억원을 기록했다. 해외에서는 베트남 롯데몰 웨스트레이크 하노이가 6분기 연속 분기 최대 영업이익을 경신하며 글로벌 사업의 수익성 개선을 뒷받침하고 있다.

 

롯데웰푸드도 상반기 매출 2조1831억원, 영업이익 1005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98.1% 증가했다. 인도 푸네 빙과 신공장의 가동률 상승과 카자흐스탄 사업 확대 등에 힘입어 글로벌 사업 매출도 22.8% 증가했다.

 

다만 롯데웰푸드는 투자 집행 시점을 조정하며 자금 효율화에도 나서고 있다. 평택공장과 중앙물류센터 증설 완료 시점을 당초 올해 6월에서 2028년 3월로 21개월 연기했다. 총 투자금액은 기존 2205억원에서 2376억원으로 171억원 늘었다.

 

투자 자체를 축소하기보다는 집행 시기를 분산해 단기간에 집중되는 자금 부담을 낮추는 데 초점을 맞춘 것으로 분석된다. 올해 6월 말 기준 유형자산 취득을 위해 계약한 약정액도 약 2433억원에 달하는 만큼 향후 투자 규모와 시기를 조절하는 작업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롯데웰푸드는 자산 매각과 해외사업 재편도 병행하고 있다. 지난 5월 경기 성남 분당물류센터를 위본건설에 429억원에 매각했다. 중국에서는 칭다오 법인 지분 90% 매각을 추진하고 있으며, 싱가포르에서는 기존 법인 지분 49%를 일본 롯데제과에 넘겨 합작법인 체제로 전환했다.

 

반면 인도에서는 롯데인디아가 하브모어를 흡수합병한 이후 비지배지분을 정리해 지분율을 98.9%에서 100%로 끌어올렸다. 시장별 성장 가능성과 사업 전략에 따라 선택적으로 자원을 재배치하는 모습이다.

 

건설과 화학 부문도 수익성 개선에 힘을 보탰다. 롯데건설은 선별 수주와 원가 관리 등을 통해 상반기 영업이익 1728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배 이상 증가한 수준이다. 프로젝트파이낸싱(PF) 우발채무도 본PF 전환 등을 통해 지난해 말 대비 7276억원 줄였다.

 

장기 부진을 겪었던 화학 부문 역시 사업구조 재편에 속도를 내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범용 석유화학 제품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생산 운영을 최적화하는 방식으로 수익성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롯데정밀화학은 식·의약용 셀룰로스와 반도체 현상액 원료 TMAC 판매 증가에 힘입어 2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6배 이상 증가했다.

 

롯데케미칼 사업재편…‘몸집’보다 경쟁력에 초점

 

롯데케미칼은 대산과 여수공장을 중심으로 사업구조 개편을 진행하고 있다.

 

대산공장은 지난 6월 분할 절차를 완료한 뒤 9월1일 HD현대케미칼과 합병한 ‘H&L어드밴스드’라는 이름의 통합법인으로 출범했다. 석유화학 업계와 정부가 추진해온 사업재편이 실제 기업 통합으로 이어진 첫 사례다.

 

앞서 롯데케미칼과 HD현대오일뱅크, HD현대케미칼 등 3사는 지난해 11월 최종 계획안을 제출했고, 올해 2월 정부 승인을 받았다. 이어 8월 공정위가 조건부 기업결합을 승인하면서 통합 절차가 진행됐다.

 

여수공장도 지난 7월 사업재편계획 승인을 받은 이후 관계사들과 통합 운영체계 구축을 위한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생산 효율성을 높이고 원가 경쟁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석유화학 시장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사업구조를 구축한다는 전략이다.

 

신동빈 회장은 지난 7월15일 열린 하반기 VCM(Value Creation Meeting)에서 외형 확대보다 본업 경쟁력과 수익성에 집중해야 한다는 경영 방향을 제시했다.

 

신 회장은 지난 10년간 그룹의 사업 경쟁력이 정체됐다고 진단하고 ▲선택과 집중 ▲끊임없는 개선과 혁신 ▲경영 기본에 충실 등을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 그룹 전략과 맞지 않는 비핵심 사업은 효율화하고 핵심 브랜드를 중심으로 글로벌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주문이다.

 

투자 역시 타당성과 수익성을 철저히 검증하고 재무건전성을 고려한 범위에서 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AX·바이오에 투자 집중…미래 성장동력 확보

 

재무구조와 본업 경쟁력을 다진 롯데는 인공지능 전환과 바이오를 새로운 성장축으로 삼고 있다.

 

특히 신 회장이 강조해온 AX는 단순한 업무 자동화를 넘어 계열사의 실제 사업 현장으로 확대되고 있다. 지난 7월 하반기 VCM에서는 음성과 모션 인식 기반 AI 비서를 비롯해 가격 모니터링, 수요예측, 글로벌 시장 전망 분석 등에 활용할 수 있는 AI 에이전트 10여개가 공개됐다.

 

롯데칠성음료는 생성형 AI 에이전트를 글로벌 신규 바이어 발굴 업무에 적용했다. 국가별 시장과 규제, 잠재 거래처 및 담당자 정보를 조사하는 데 기존 50시간 이상 걸리던 업무를 약 3시간으로 줄였다.

 

롯데백화점은 약 4000개 브랜드 데이터를 분석해 상품기획자의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브랜드 AI’를 구축했고, 롯데마트는 과일의 당도와 중량, 수분 함량 등을 측정하는 AI 선별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롯데면세점 역시 생성형 AI를 활용한 상품 검색 및 특가 정보 확인 서비스를 선보였다.

 

롯데바이오로직스 역시 그룹의 미래 성장동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롯데바이오로직스는 지난 18일 송도 바이오 캠퍼스로 전 임직원의 입주를 완료하며 본격적인 ‘송도 시대’를 열었다.

 

본사 기능과 생산 인프라가 송도 바이오 캠퍼스에 통합되면서 생산·품질·엔지니어링·사업개발 등 주요 조직 간 협업도 강화될 전망이다. 미국 시러큐스 바이오 캠퍼스와 송도 생산시설 간 실시간 정보 공유를 통해 글로벌 고객 대응력도 높인다는 계획이다.

 

신동빈 회장은 지난 7월 송도 1공장을 직접 방문해 생산시설과 연구시설을 점검하고 글로벌 고객사 수주 대응 현황을 확인했다.

 

송도 1공장은 1만5000ℓ 규모 배양기 8기를 갖춘 총 12만ℓ 규모 항체의약품 생산시설이다. 자동화 제조관리시스템과 디지털 트윈, 전산유체역학 시뮬레이션 등 데이터 기반 기술을 적용해 생산 효율과 품질 안정성을 높였다.

 

롯데바이오로직스는 내년 송도 1공장의 상업 생산 개시를 목표로 현재 설비와 유틸리티 전반에 대한 적격성 평가를 진행하고 있다. 올해 하반기 시운전과 제조·품질 시스템 검증을 거쳐 GMP 생산체계를 갖출 계획이다.

 

롯데는 2030년까지 약 4조6000억원을 투입해 글로벌 톱10 수준의 바이오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 경쟁력을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신 회장의 장남인 신유열 롯데바이오로직스 대표가 바이오 사업을 이끌고 있는 가운데, 비핵심 사업 매각으로 확보한 재원을 바이오 등 미래 성장동력에 집중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롯데 관계자는 “주요 계열사의 상반기 실적 개선과 함께 이번 롯데렌탈 매각 승인으로 그룹의 수익성과 재무건전성이 크게 높아질 것으로 기대한다”며 “남은 하반기에도 비주력사업 및 유휴자산 매각 등을 통해 구조조정에 속도를 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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