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공식 입장 아님" 명시..."미·일과 공동추진" 내용도
문대통령, 야당에 "유물정치" 맹공...논란 조기진화 나서 [메가경제= 류수근 기자] 산업통상자원부가 '북한 원전 건설 추진 논란'과 관련해 1일 '북한 원전 건설 문건' 관련 자료를 공개했다.
전격 공개된 '북한지역 원전 건설 추진 방안' 보고서에는 '내부 검토 자료이자 정부의 공식입장이 아니며 현 시점에서 구체적인 추진방안 도출에는 한계가 있는 내용'임을 명시하고 있다.
산업부는 31일 오후 보도자료를 통해 “산업통상자원부의 입장 표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논란이 지속되고 있어 이 사안이 현재 재판중인 사안임에도 불필요한 논란의 종식이라는 공익적 가치를 감안해 정보공개심의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쳐 자료 원문을 공개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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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업통상자원부가 1일 '북한 원전 건설 문건' 관련 자료를 공개했다. . 사진은 이날 산업부가 공개한 6쪽짜리 문건의 앞부분. |
산업부는 이어 “이 문서는 2018년 4월 27일 제1차 남북정상회담 이후 향후 남북 경협이 활성화될 경우를 대비하여 아이디어 차원에서 검토한 자료”라며 “추가적인 검토나 외부에 공개된 적이 없이 그대로 종결됐다”고 설명했다.
산업부는 “따라서 이 사안은 정부 정책으로 추진된 바 없으며, 북한에 원전 건설을 극비리에 추진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자료로 인해 불필요한 논란이 확산된 것에 대하여 유감으로 생각한다”며 “이에 해당 자료의 원문을 공개하는 바, 논란이 종식될 수 있도록 협조를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산업부는 일부 보도에서 공개한 삭제 파일 목록 현황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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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개된 삭제 목록 중 북한 원전 관련 자료 17개 목록. [출처= 산업통상자원부] |
530개 삭제 파일 목록을 확인한 결과, 이전 정부에서 작성된 자료가 174개, 현 정부에서 작성된 자료가 272개로 파악되며, 그 외 작성 시기 구분이 어려운 문서가 21개, 문서가 아닌 자료(jpg 등)가 63개로 파악된다고 설명했다.
산업부는 또 “북한 원전 관련 자료로 예시된 17개 파일의 경우 산업부가 작성한 자료는 ‘북한 지역 원전건설 추진방안’, ‘에너지분야 남북경협 전문가’ 2개로 파악되며 나머지 자료들은 ‘95년부터 추진된 KEDO 관련 공개 자료와 전문가 명단으로 파악된다“고 덧붙였다.
공개된 자료는 '북한지역 원전 건설 추진 방안'이라는 제목의 6쪽짜리 문건(본문 4쪽, 참고자료 2쪽)이며, 삭제된 문건과 동일한 자료로, 산업부 내부 컴퓨터에 남아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보고서는 첫머리에서 "동 보고서는 향후 북한 지역에 원전 건설을 추진할 경우 가능한 대안에 대한 내부 검토 자료이며, 정부의 공식 입장이 아님"이라고 명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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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업통상자원부가 1일 '북한 원전 건설 문건' 관련 자료를 공개했다. . 사진은 이날 산업부가 공개한 6쪽짜리 문건 중 원전 건설 3가지 추진방안 및 장단점과 검토의견. 검토의견에는 |
본문에는 3가지 북한 원전 건설 추진 시나리오와 시나리오별 장·단점, 사업추진 체계 등의 내용이 담겼다.
1안은 과거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부지인 함경남도 금호지구에 원전 2기와 사용후핵연료 저장고를 건설하고 방폐장 구축도 단계적으로 추진하는 것이다.
2안은 DMZ에 수출형 신규노형을 건설하는 내용이며, 3안은 백지화한 신한울 3·4호기를 건설한 후 동해안 지역에서 북한과 전력망을 연결해 송전하는 방안이다.
보고서는 말미의 ‘검토의견’에서 "북한내 사용후핵연료 처분이 전제될 경우 1안이 소요시간과 사업비, 남한 내 에너지전환 정책의 일관성 측면에서 설득력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 "다만 현재 북미간 비핵화 조치의 내용, 수준 등에 따라 불확실성이 매우 높아 현 시점에서 구체적 추진방안 도출에는 한계가 있다"고 적었다.
또 "향후 비핵화 조치가 구체화되고 원전 건설이 가시화되는 시점에서 추진체계, 세부적인 추진방안에 대한 추가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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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븍힌 원전 건설 문건' 논란 주요 일지. [그래픽= 연합뉴스] |
보고서는 사업추진 체계와 관련, 의사결정 기구를 미국, 일본 등 외국과 공동으로 구성하고 사업추진 조직은 남한의 관련 부처가 참여하는 TF로 구성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미국 등 주요국의 참여 여부, 재원 조달 방식, 원전과 비핵화 조치와의 연계 여부 등에 따라 상이한 추진체계 검토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정부가 단독으로 북한 원전 건설을 추진하지 않는다는 점을 밝힌 셈이다.
보고서에는 KEDO 노형인 OPR1000, 최신 노형인 APR1400, 실제 건설경험이 없는 신규 노형인 APR+, SMART 등 노형별 건설 기간과 재원, 수출과 연계 가능성을 검토한 대목도 있다.
사용후핵연료와 관련해선 국제원자력기구(IAEA) 감시 아래 북한 내 처분, 남한 내 처분(필요시 해외위탁 재처리후), 제3국 반출 등의 안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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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대통령이 1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서울= 연합뉴스] |
이날 산업부의 문건 전격 공개는 이날 오후 문재인 대통령이 야당의 주장을 '구시대의 유물정치'로 규정하며 이례적인 맹공을 편 데 이어 이루어진 것이어서 그 배경이 주목된다.
문 대통령은 이날 야당을 향해 "가뜩이나 민생이 어려운 상황에서 대립을 부추기며 정치를 후퇴시켜서는 안된다"고 비판했다.
문 대통령은 2019년 국회의 패스트트랙 충돌 당시 "국민의 혐오를 부추기며 극단적으로 분열시키는 정치" 등의 비판을 내놓았지만, 코로나19 사태가 터진 지난해부터는 정치권에 대한 직접적 질타는 삼가 왔다.
그만큼 문 대통령의 이날 발언에는 '야당의 주장에 강경하게 대응할 타이밍'이라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4월 보궐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휘발성이 강한 이슈에 불이 붙을 경우 그 파장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와 여권이 이번 논란에 대해 '실무차원에서 검토됐을 뿐이며, 문제 될 게 없다'고 판단하고 있는 점도 이런 과감하고 신속한 대응의 배경으로 보인다.
더불어민주당도 이날 국민의힘이 제기한 '북한 원전 건설 추진 의혹'을 "망국적 매카시즘"으로 규정하며 총력 반격에 나섰다.
김태년 원내대표는 이날 최고위 회의에서 "선거때만 되면 북풍공작을 기획하는 보수 야당의 고질병이 도졌다"며 이같이 말했다.
최인호 수석대변인은 최고위 회의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역대 북풍 공작 중에서도 최고 악질"이라고 말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을 고소·고발할 것이냐는 질문에는 "물론이다. 논의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같은 신속하고도 강력한 대응은 당시 상황을 투명하게 공개해 '야당의 주장은 근거 없다', '색깔론에 불과하다'는 점을 입증할 경우 오히려 여당이 공세적인 위치를 점할 수 있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국민의힘은 이날 북한 원전 건설 의혹 제기와 관련, 문재인 대통령이 '구시대의 유물 같은 정치'로 규정하자 "어디선가 많이 들은 레퍼토리"라고 받아쳤다.
김은혜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거짓으로 불리한 여론을 덮는 구시대의 잔재를 극복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라며 "있는 그대로 남한 원전 파괴, 북한 원전 건설의 진실을 밝혀달라"고 촉구했다.
주호영 원내대표도 의원총회에서 "불법 탈원전 정책을 몰아붙이는 한편에서 핵무기를 손에 든 김정은에게 원전을 지어주려고 했다는 것은 대한민국 안보를 위협하는 이적행위"라며 국정조사를 요구했다.
앞서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지난달 29일,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조작 의혹 사건으로 기소된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들의 공소장과 그들이 삭제한 파일 목록을 검토한 후 언론에 입장문을 배포했다.
김 위원장은 당시 입장문에서 문재인 정부가 국내 원전을 폐쇄하면서 북한에는 원전을 지어주려 했다며 "충격과 경악을 금치 못할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대한민국 원전을 폐쇄하고 북한에 극비리에 원전을 지어주려 한 것은 원전 게이트를 넘어 정권의 운명을 흔들 수 있는 충격적인 이적행위"라며 검찰의 추가 수사를 촉구했다.
이어 "탈원전 반대 시민단체 등을 불법 사찰했다는 명확한 증거도 나왔다"며 "문 정부의 민간인 사찰 DNA가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위원장은 "정권 윗선의 지시가 없고서는 이렇게 공문서를 대거 무단 파기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당 진상규명조사위원회를 구성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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