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12·12쿠데타 주도·87체제 첫 직선' 노태우 전 대통령 사망...국가장·국립묘지 안장 미정

류수근 기자 / 기사승인 : 2021-10-26 21:3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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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사 동기' 전두환 이은 '5공 2인자'...10·26 박정희 기일에 떠나
6·29 선언 후 3金 누르고 87년 직선 대통령 당선...‘3당 합당’ 중심에도
북방외교와 유엔 동시가입 탈냉전 외교 새 지평...토지공개념 도입
'12·12, 5·18 단죄·비자금 조성' 옥고... 2013년 9월 추징금 완납

군사정권에서 민주화 정부로 넘어가는 과도기인 제13대 대통령을 지낸 노태우 전 대통령이 26일 숙환으로 숨졌다. 향년 89세.

노 전 대통령은 지병으로 오랜 병상 생활을 해오다 최근 병세 악화로 서울대병원에 입원해 의료진의 집중 치료를 받았지만,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서울대병원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은 이날 낮 12시 45분께 서울대병원 응급실으로 내원한 후 의료진의 치료를 받았으나 상태가 악화해 오후 1시 46분 결국 숨졌다.
 

▲ 노태우 전 대통령이 1988년 제13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선서하는 노 태우 전 대통령 모습. [사진=연합뉴스]

고인은 우연의 일치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서거일(1979년 10월 26일)과 같은 날 세상을 떠나게 됐다.

노 전 대통령은 2002년 전립선암 수술을 받은 뒤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고 이후 서울 연희동 자택에서 요양해왔다. 지병으로 희귀병인 소뇌 위축증과 천식까지 더해져 투병 생활을 하면서 공개석상에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다.

김연수 서울대학교병원장은 이날 오후 서울대병원 의학연구혁신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노 전 대통령의 사인은 장기간 투병 중 여러 질병이 복합된 숙환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노 전 대통령은 다계통 위축증 등 장기간 투병으로 전신이 허약해진 상태에서 여러 질병이 복합적으로 발생해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

▲ 1988년 제24회 서울 올림픽 개회식에 부인 김옥숙 여사와 함께 참석한 노태우 전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노 전 대통령은 1932년 12월4일 경북 달성군 공산면 신용리(현 대구 동구 신용동)에서 면 서기였던 아버지 노병수와 어머니 김태향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경북고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으며 보안사령관, 체육부·내무부 장관, 12대 국회의원, 민주정의당 대표를 지냈다.

노 전 대통령은 12·12 군사쿠데타 주역, 6·29선언, 13대 대통령 당선과 6공화국 성립, 3당 합당, 구속 등 현대 정치사에 여러 쪽을 장식할 만큼 부침이 큰 장면을 보여줬다.

육군 9사단장이던 1979년 12월12일 육사 11기 동기생인 전두환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 ‘하나회’ 세력의 핵심으로서 군사쿠데타를 주도한 건 그 굴곡진 삶의 시작이었다.

▲ 노태우 전 대통령 주요 연보. [그래픽=연합뉴스]

쿠데타 성공으로 신군부의 2인자로 떠오른 노 전 대통령은 수도경비사령관, 보안사령관을 거친 뒤 대장으로 예편, 정무2장관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이어 초대 체육부 장관, 서울올림픽조직위원장, 민정당 대표를 거치면서 군인 이미지를 탈색하고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5공화국 말기 전두환 전 대통령을 이을 정권 후계자로 부상, 1987년 6월10일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치러진 민정당 전당대회에서 대통령후보로 지명됐다.

▲ 1987년 직선개헌을 포함한 '시국수습대책 8개항'을 담은 6.29 선언을 하고 있는 당시 민정당 노태우 대표위원. [사진=연합뉴스]

고인은 1987년 6월 민정당 대선후보 선출 이후 전두환 정권의 간선제 호헌 조치에 반발하는 시위가 '호헌철폐·독재타도' 구호 아래 들불처럼 확산하자 직선제 개헌을 약속하는 '6·29 선언'을 발표함으로써 이른바 '1987년 체제' 탄생을 가져왔다.

노 전 대통령이 들끓는 여론을 잠재우고자 1987년 6월 29일 발표한 6·29 선언은 ▲ 대통령 직선제 개헌 ▲ 김대중 사면 복권 및 시국 관련 사범 석방 ▲ 언론기본법 개폐 ▲ 인간존엄성 존중 및 기본인권 신장 등이 골자였다.

고인은 이같은 내용을 담은 6·29 선언을 통해 신군부의 공포 이미지를 희석하고 '민주주의를 수용한 온건 군부' 이미지를 구축, 위기에 처했던 군사정권을 안정시키고 대선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확보했다.

▲ 노태우 전 대통령이 사망한 26일은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서거일(1979년 10월 26일)이기도 하다. 사진은 지난 1994년 10월 26일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에서 열린 박정희 전 대통령 15주기 추모식에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왼쪽부터)이 참석한 모습. [사진=연합뉴스]

한국 대통령중심제의 근본을 뒤집어놓은 6·29 선언으로 그해 10월 '대통령 직선·5년 단임'의 개헌안이 국회를 통과하고 국민투표를 통해 공포되어 5공화국이 역사 무대에서 퇴장하기에 이르렀다.

노 전 대통령은 6월 민주화 항쟁의 성과물로 대통령 직선제 개헌이 이뤄진 뒤 야권 후보 분열에 따른 '1노(盧)3김(金)' 구도의 반사 이익을 보면서 같은 해 연말 대선에서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후보를 누르고 제13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보통사람 노태우'를 슬로건으로 내건 노 전 대통령은 직선 대통령에 선출된 뒤 1988년 제6공화국으로 불리는 민정당 노태우정권을 출범시켰다. 재임 당시 민주주의 정착과 외교적 지위 향상, 토지공개념 도입 등 경제 발전에 이바지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은 또한 탈냉전시대에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 88 서울올림픽 개최, 옛 소련·중국과의 공식 수교 등 북방외교와 남북관계의 물꼬를 트는 등 외교의 새로운 지평을 넓혔다는 평가도 받는다.

▲ 1990년 1월 22일 노태우 전 대통령이 김영삼 민주당 총재(왼쪽), 김종필 공화당 총재(오른쪽)와 청와대에서 긴급 3자회동을 갖고 3당 합당을 발표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그러나 노 전 대통령 중심의 민정당은 13대 총선(1988년 4월 26일) 결과 이뤄진 여소야대 정국을 타개하기 위해, 야당이던 김영삼 중심의 통일민주당, 김종필 중심의 신민주공화당 등 3개 정당이 이른바 '3당 합당'을 통해 민주자유당(민자당)을 출범시키면서 ‘괴물 여당’을 출범시키기도 했다.

이후 3당 합당은 지역주의를 심화하고 호남을 정치적으로 고립시키는 부작용을 가져왔다는 비판을 받았다.

고인은 퇴임 후 12·12 주도, 5·18 광주 민주화운동 무력 진압, 수천억 원 규모의 비자금 조성 등의 혐의로 전두환 전 대통령과 함께 수감됐고 법원에서 징역 17년형과 추징금 2천600억여 원을 선고받으며 영어의 몸이 됐다.

1997년 12월 퇴임을 앞둔 김영삼 대통령의 특별사면 조치로 석방됐지만, 오랫동안 추징금 미납 논란 후 2013년 9월에야 뒤늦게 완납했다.

▲ 1996년 12.12 및 5.18사건 항소심 선고공판에 출석한 노태우·전두환 전 대통령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질 예정이다. 그러나 전직 대통령으로서 국가장(國家葬)이나 현충원 안장 같은 예우를 받을지 여부는 미정이다. 고인은 내란죄를 선고받고 복역했다가 사면됐기 때문이다.

행정안전부, 보훈처 등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의 장례가 국가장으로 치러질지 여부는 조만간 열리는 임시 국무회의 심의와 대통령 결정을 통해 가려질 전망이다.

국가장법은 2조에서 전·현직 대통령이나 대통령 당선인이 사망시 국가장을 치르도록 하고 있다. 중대 범죄를 저질렀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 법은 국가장의 대상자로 '국가·사회에 현저한 공훈', '국민의 추앙을 받는 사람'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유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은 이날 국회 운영위 국감에서 “국가장으로 장례를 치르는 것이 가능하다”며 “다만 절차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가장법에 명시된 절차에는 “유족 등의 의견을 고려해 행정안전부 장관의 제청으로 국무회의의 심의를 마친 후 대통령이 결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결국 문재인 대통령이 이와 관련해 어떤 판단을 내릴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옥숙 여사와 딸 소영, 아들 재헌이 있다. 소영 씨와 이혼 소송 중인 최태원 SK 그룹 회장이 사위이다.

 

[메가경제=류수근 기자·연합뉴스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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