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기아 신차는 도로보다 먼저 '가상세계'를 달린다…남양연구소 가보니

박제성 기자 / 기사승인 : 2026-07-02 13: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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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뮬레이터·3D프린팅·와이어카로 SDV 시대 개발 공식 바꿨다
시작차 줄이고 데이터로 품질 검증…"눈에 안 보이는 오류까지 양산 전 잡는다"

[메가경제=박제성 기자] 자동차 개발 방식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 과거에는 신차 개발 과정에서 수많은 시작차를 만들고 실제 도로에서 반복 시험하는 방식이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가상공간과 데이터, 소프트웨어 검증이 실차 개발의 앞단을 차지하고 있다. 

 

전동화와 자율주행, 커넥티드 기술이 고도화되고 SDV(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 전환이 본격화되면서 차량 개발의 복잡도와 검증 기준이 크게 높아졌기 때문이다.

 

▲ 드라이빙 시뮬레이터의 외관[사진=현대자동차]

 

2일 현대자동차·기아에 따르면 이러한 변화 중심에는 핵심 연구개발 거점인 남양기술연구소가 있다고 설명한다.

 

남양연구소는 드라이빙 시뮬레이터, 디지털 측정 센터, 적층 제조 솔루션 센터, 노바 랩 등을 통해 차량을 만들기 전 성능과 품질을 먼저 검증하는 디지털 기반 R&D 체계를 강화하고 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곳은 드라이빙 시뮬레이터다. 연구원이 운전석에 앉아 가상 도로를 달리면 장비가 가속, 감속, 코너링, 노면 진동 등을 실제 주행처럼 구현한다. 

 

6자유도 모션 시스템을 통해 차량의 앞뒤·좌우·상하 움직임과 롤, 피치, 요 회전까지 재현한다. 270도 곡면 스크린에는 고해상도·고주사율 영상이 구현돼 실제 도로를 달리는 듯한 몰입감을 제공한다.

 

현대차·기아는 남양연구소 주행시험장을 1㎜ 단위로 정밀 스캔해 가상 도로로 옮겼다. 

 

▲ 포터블 3D 스캐너로 형상을 측정하는 연구원 모습[사진=현대자동차]

 

노면의 경사와 요철, 과속방지턱, 아스팔트 질감까지 데이터화한 것이다. 

 

초대용량 도로 데이터를 한 번에 불러오는 대신 차량 주변 데이터만 실시간으로 처리하는 지형 서버 방식을 적용해 지연 없는 주행 평가가 가능하도록 했다. 이를 통해 시작차 제작 전 단계에서도 주행 성능과 부품 특성을 빠르게 검증할 수 있다.

 

차량의 치수 품질을 관리하는 디지털 측정 센터도 핵심 시설이다. 차량의 틈새나 단차, 조립 오차는 외관 품질뿐 아니라 소음, 누수, 기능 불량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곳에는 차체와 도어, 후드, 테일게이트 등 주요 부품을 3차원 측정장비와 광학식 3D 스캐너로 분석한다. 차 한 대당 약 1000개 측정 포인트를 확인하고, 약 600개 평가 항목을 통해 품질 기준을 세운다. 이 기준은 양산 공장에도 공유돼 동일한 품질 관리 체계로 이어진다.

 

디지털 측정 센터의 강점은 문제 발생 지점을 데이터로 역추적할 수 있다는 점이다. 

 

완성차에서 단차나 조립 문제가 발견되더라도 차체, 무빙 부품, 장착 부품 등 단계별 측정 데이터가 축적돼 있어 원인을 빠르게 찾을 수 있다. 도어와 테일게이트 같은 무빙 부품은 초고속 카메라와 센서를 활용해 닫히는 순간의 변형까지 측정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품질까지 데이터로 관리하는 셈이다.

 

▲ WAAM 장비가 금속을 적층하는 모습[사진=현대자동차]

 

적층 제조 솔루션 센터는 부품 제조 방식의 변화를 보여준다. 흔히 3D 프린팅으로 알려진 적층 제조는 금형 없이 설계 데이터만으로 재료를 한 층씩 쌓아 부품을 만드는 기술이다. 액상 레진을 자외선으로 굳히는 방식, 금속 와이어를 녹여 쌓는 WAAM 방식, 금속·플라스틱 분말을 레이저로 녹여 성형하는 방식 등이 활용된다.

 

이 기술은 개발 속도를 높이는 동시에 기존 제조 방식으로는 만들기 어려운 복잡한 형상의 부품 제작을 가능하게 한다. 

 

헤리티지 차량 복원, 모터스포츠용 경량 부품, 단종 모델의 AS 부품 제작 등 활용 범위도 넓다. 특히 경량화와 강성이 동시에 중요한 고성능차·레이스카 부품 개발에서 적층 제조의 효용이 커지고 있다.

 

SDV(소프트웨어정의 차량) 시대를 겨냥한 전장 검증은 노바 랩이 맡고 있다. 

 

▲ 와이어카를 활용해 차량 기능과 제어기 검증을 하는 연구원의 모습[사진=현대자동차]

 

이곳에는 완성차 대신 수백 개의 제어기와 배선, 전장 부품을 연결한 와이어카가 배치돼 있다. 와이어카는 실제 차량의 전기·전자 시스템을 실물 하드웨어로 구현한 검증 플랫폼이다. 대형 차종의 경우 제어기와 전장 부품이 300~500개, 와이어링 커넥터가 약 500개에 달하는 만큼 실차 제작 전 오류를 찾는 과정이 중요하다.

 

노바 랩에서는 회로, 통신, 기능, 진단 항목을 자동으로 검증한다. 공조, 램프, 시트 등 기본 기능은 물론 저전압·과전압 같은 가혹 조건까지 시험한다. 

 

소형 다이나모미터와 차량 구동 부하 장치를 활용해 주행 조건을 모사하고, 레이더·카메라 기반 ADAS(첨단주행보조시스템) 기능도 검증한다.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 후측방 충돌 경고, 차로 유지 보조, 전방 충돌 방지 보조 등 주요 기능을 실차 전 단계에서 확인하는 구조다.

 

현대차·기아는 신차 한 대를 개발하는 동안 와이어카 단계에서만 평균 150~200건의 문제를 찾아낸다고 설명했다. 

 

SDV 전환으로 제어기는 고성능 컴퓨터 기반의 통합 구조로 바뀌고, 통신은 CAN에서 고속 이더넷으로, 전원 체계는 12V에서 48V로 확장되고 있다. 기존 방식만으로는 복잡해진 차량 시스템을 충분히 검증하기 어려워진 만큼 노바 랩의 역할도 커지는 모습이다.

 

남양기술연구소의 R&D 현장은 하나의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차량을 실제로 만들기 전에 가상공간과 데이터로 먼저 검증하고, 소프트웨어와 전장 시스템의 오류를 사전에 걸러내며, 제조 방식까지 디지털화하는 것이다. 현대차·기아는 이를 통해 개발 기간을 줄이고 품질 완성도를 높여 미래 모빌리티 경쟁력을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자동차가 더 이상 하드웨어만으로 평가받는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로 진화하고, 전장 시스템으로 움직이며, 데이터로 품질을 관리하는 시대다. 남양기술연구소는 현대차·기아가 SDV 시대의 개발 주도권을 잡기 위해 실차보다 먼저 데이터를 달리게 하는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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