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MCA 54만 모은 데이미언 허스트…‘진짜 미학적 울림’은 부산 해운대에서 만난다

박성태 기자 / 기사승인 : 2026-07-11 11:5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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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국립현대미술관 관람객 54만 명 집결시킨 ‘허스트 열풍’ 성료…관람객 아쉬움 지속
해운대 엘시티 ‘지그재그 아트센터’, 대표작 '알약(Pills)'·'신의 사랑을 위하여' 특별전 개막
이브 클라인·세자르 등 ‘니스 화파’ 신사실주의 거장 200여 점과 연계해 현대미술의 맥락 제시
1958년 프랑스 니스처럼…지방에서 피어나는 새로운 문화 예술 운동과 지역 작가 생태계의 비전

[메가경제=박성태 기자] 2026년 상반기 대한민국 문화예술계를 뜨겁게 달궜던 영국 출신의 세계적 현대미술가 데이미언 허스트(Damien Hirst)의 국립현대미술관(MMCA) 서울관 개인전 ‘진실은 없어 그러나 모든 것은 가능하지’가 누적 관람객 54만 명이라는 대기록을 작성하며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지난 3월 20일 개막해 6월 28일까지 96일간 열린 이번 전시는 개막 이전부터 '올해 꼭 보아야 할 전시'로 손꼽히며 큰 관심을 모았다. 일평균 5645명의 관람객이 미술관을 찾았다.
 

특히 2030 세대가 전체 관람객의 62%를 차지하고 10대 관람 층이 12%를 기록하는 등 전 국민적인 문화적 상징 사건으로 자리매김했다. 작가 대담 프로그램 사전 예약이 1초 만에 매진되고 굿즈 구매 금액이 지난 전시 대비 3배 가까이 급증하는 등 대중적 반응도 열렬했다.
 

하지만 40년에 걸친 허스트의 거대한 예술 세계를 서울에서 직관할 수 있었던 기회가 종료되면서, 미처 전시장을 찾지 못했거나 그의 파격적인 작품이 주는 강렬한 인상을 다시금 체화하고자 하는 미술 팬들의 아쉬움이 깊어지고 있다.

 

 

▲ 지그재그아트센터 전시관 [사진=박성태 기자]

 

이러한 상황 속에서 미술계의 시선이 남쪽 바다를 품은 도시 부산으로 이동하고 있다. 서울에서의 열기가 식기도 전에, 부산 해운대 엘시티에 위치한 '지그재그 아트센터(JigZag Art Center)'가 데이미언 허스트의 대표작을 집중 조명하는 특별전을 기획해 관람객들의 발길을 이끌고 있다.
 

죽음과 소비사회의 교차점…부산에서 만나는 허스트의 핵심 정수
 

지그재그 아트센터에서 개최되는 이번 특별전은 센터가 자체 소장하고 있는 데이미언 허스트의 가장 대표적인 시그니처 연작인 ‘알약(Pills)’ 시리즈와 현대미술사상 가장 논쟁적인 명작으로 꼽히는 ‘신의 사랑을 위하여(For the Love of God)’ 에디션 프린트를 중심으로 구성된다.


1965년 영국 브리스톨에서 태어나 런던 골드스미스 대학 시절인 1988년 그룹전 ‘프리즈(Freeze)’를 기획하며 '영국의 젊은 예술가들(yBas)'을 이끌었던 허스트는 삶과 죽음, 의학과 신앙, 욕망과 자본이라는 인간 존재의 근본적 모순을 파격적인 소재로 다뤄왔다.
 

이번 부산 특별전에서 선보이는 ‘알약’ 시리즈는 팝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이 대중문화의 아이콘을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반복 재현했던 소비사회 고유의 문법을 현대적으로 차용한 작품이다.

 

 

 

▲ 지그재그아트센터 전시관 [사진=박성태 기자]

 

허스트는 현대인이 일상적으로 복용하는 약과 영양제를 화면에 격자형으로 반복 배치함으로써, 의학과 과학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동시에 건강마저 상품화하여 소비하는 동시대인의 물질주의적 신념 체계를 질문한다.
 

함께 전시되는 ‘신의 사랑을 위하여’는 18세기 인간의 실제 해골 위에 8601개의 화려한 다이아몬드를 밀집 세팅한 원작(2007년 작)의 미학을 담아낸 작품이다.
 

죽음이라는 회피할 수 없는 인류 보편의 도래 앞에 부와 아름다움을 끝없이 추구하는 인간의 헛된 욕망(바니타스)을 대치시킴으로써, 자본주의 사회 속 예술의 가치와 물질문명의 허무함을 극명하게 대조시킨다.
 

서울 국립현대미술관의 회고전이 작가의 40년 여정을 늘어놓은 대규모 블록버스터였다면, 부산 지그재그 아트센터의 특별전은 허스트 예술관의 핵심 줄기인 '소비사회와 죽음'이라는 주제를 핀셋처럼 집어내 밀도 높게 관조할 수 있는 독보적인 기회를 제공한다.
 

사실주의에서 신사실주의, 그리고 허스트로 이어지는 현대미술의 맥락
 

부산 지그재그 아트센터 관람이 국립현대미술관의 전시보다 한층 더 입체적이고 인문학적인 깊이를 제공하는 이유는 센터가 구축해 온 '1958-2025 지그재그 컬렉션'과의 미학적 융합에 있다.


1992년 설립된 지그재그 아트센터는 프랑스 남부 니스(Nice)를 중심으로 자생한 '니스 화파(École de Nice)'와 신사실주의 경향의 평면, 입체, 디지털 작품 200여 점을 망라해 소장 및 전시하고 있다.
 

현대미술의 흐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19세기 사실주의와 20세기 신사실주의의 비평적 전환을 파악해야 한다. 19세기 구스타브 쿠르베와 장 프랑수아 밀레의 사실주의가 산업혁명기 도시화 속에서 민중과 노동자의 일상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데 집중했다면, 20세기 중반 추상주의의 내면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등장한 신사실주의는 전후 대량생산 및 소비사회의 기성품과 사물(오브제) 그 자체를 작품 재료로 삼아 '현실을 예술로 전환'했다.

 

 

▲ 지그재그아트센터 전시관 [사진=박성태 기자]

 

특히 1960년 평론가 피에르 레스타니와 젊은 예술가들이 파리의 고전적 미술 권력에서 1000km 떨어진 남부 도시 니스에서 결성한 신사실주의는 미국 팝아트와 뚜렷한 대비를 이룬다.
 

미국 팝아트가 대중문화의 이미지를 수용하고 긍정적으로 재현했다면, 신사실주의는 물질문명의 폐품과 사물을 통해 소비사회의 모순을 비판적으로 고발했다. 데이미언 허스트 역시 실제 동물 표본이나 의료기구, 약을 작품에 끌어옴으로써 신사실주의가 개척한 '현실 사물의 예술화'를 21세기적 맥락으로 확장한 작가다.
 

소비사회를 해부한 거장들… 니스 화파 컬렉션이 증명하는 조형적 울림
 

지그재그 아트센터의 전시장에서는 데이미언 허스트의 작품과 함께, 신사실주의와 니스 화파의 역사적 뼈대를 이룬 거장들의 다채로운 예술 세계가 입체적인 연대기로 펼쳐진다.


우선 프랑스 영화상 '세자르상' 트로피와 서울 올림픽공원의 대형 '엄지손가락' 조각으로 국내 관람객에게도 친숙한 세자르 발다치니(César Baldaccini)는 폐자동차와 폐금속을 대형 압축기로 짓눌러버리는 물리적 행위를 통해 산업사회가 가하는 생산과 폐기의 압박 구조를 조형적으로 풍자했다.
 

니스 출신의 이브 클라인(Yves Klein)은 자신만의 고유한 청색인 '인터내셔널 클라인 블루(IKB)' 단색화와 여성의 몸을 도구로 사용한 '인체측정' 퍼포먼스, 나아가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를 사고파는 '무형의 회화적 감각' 시리즈를 선보이며 물질 중심의 전통 미술을 넘어 개념미술의 지평을 결정적으로 넓혔다.
 

소비사회의 불합리를 고발한 아르망 페르낭데스(Arman Fernandez)는 바이올린이나 시계 등 동일한 사물을 대량으로 쌓아 올리거나 해체하는 '집적(Accumulation)' 기법을 도입해 끊임없이 생산되고 버려지는 물건들의 허무함을 시각화했다.
 

텍스트 회화의 선구자인 벤 보띠에(Ben Vautier)는 직설적이고 파격적인 문구를 화폭에 새겨 넣고 플럭서스 운동에 참여하며 일상적 언어가 지닌 사회적 힘을 시각적 기호로 변환해냈다.
 

조각과 건축의 경계를 허문 사샤 소스노(Sacha Sosno)는 고전 조각이나 구조물의 일부분을 의도적으로 비워내는 '은폐의 개념'을 적용해 차별화된 긴장감을 연출했으며, 니스 시내에 설치된 26m 높이의 거대 조각 '테트 카레'로 대표된다.
 

미술학교 모델 출신의 파트릭 모야(Patrick Moya)는 렘브란트의 명화를 재해석한 ‘모야의 해부학 강의’처럼 자신의 유머러스한 캐릭터 '작은 모야'를 작품에 투영하고, 3D 가상공간인 '모야랜드'를 구축하며 전통 회화에서 디지털 가상현실로 영역을 확장했다.
 

이와 함께 보르도 출신의 조르주 부아공띠에(Georges Boisgontier)는 인도를 여행하며 얻은 통찰을 바탕으로 고대 신화적 형상을 절제된 현대 조각으로 재해석했다. 파리 몽마르트르 출신의 알랭 본느포아(Alain Bonnefoit)는 여성 누드 조각에 일본 수묵화 전통을 접목해 동서양의 조화를 이끌어냈다.
 

니스파의 주요 인물인 장 마스(Jean Mas)는 와인 마개 오브제인 '카쥬 아 무슈'를 활용해 조형 실험과 연극적 퍼포먼스를 아우르는 독창적 작업 세계를 선보였다.
 

나아가 사샤 소스노와의 협업을 계기로 니스파에 합류한 42(Ralph Hutchings)는 사진과 오브제를 결합한 '어소시에이션' 개념을 발전시켜 패션, 디자인, 건축의 경계를 단숨에 허물었다.
 

뉴욕 출신의 벤 슬롯(Ben Sloat) 역시 다인종적 정체성과 문화적 언어를 탐구하며 현대 글로벌 미술계의 중요한 담론을 형성하고 있다. 이들 11인 거장들의 작품은 데이미언 허스트의 연작과 호흡하며 현대미술이 동시대의 사물과 사회를 바라보는 다각적인 시선을 제시한다.

 

 

▲ 지그재그아트센터 전시관 [사진=박성태 기자]


일상을 예술로 바꾸는 복합문화공간…"지방에서 피어나는 새로운 예술 운동"
 

지그재그 아트센터가 제시하는 진짜 가치는 단순한 명작 수입을 넘어선 공간의 철학에 있다. 1992년 설립 당시부터 센터는 1958년 이후 신사실주의 경향의 관람을 제공하는 동시에, 관람객이 감상자에 머물지 않고 참여자이자 체험자가 되는 참여형 교육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운영해 왔다.


학생에게는 창의성과 진로 탐색을, 교사에게는 현장 창의 교육을, 기업체 직원과 경영자에게는 직무역량과 창조적 경영의 인문학적 소양을 제공하는 복합문화공간으로서의 소명을 다하고 있다.
 

특히 프랑스 니스의 청년 예술가들이 파리의 권위에 굴하지 않고 지역에서 출발해 세계적인 미술사 사조를 만들어냈듯, 지그재그 아트센터는 대한민국의 지방 도시 역시 새로운 문화 예술 운동의 거점이 될 수 있다는 신념을 실천하고 있다.
 

지그재그 아트센터는 지역 시민과 관광객에게 미술을 일상 속 친숙한 언어로 다가가게 함과 동시에, 지역 청년 작가들을 발굴하고 육성하는 지속적인 연구와 기반 마련에 집중하고 있다.
 

서울 국립현대미술관의 데이미언 허스트 전시는 막을 내렸다. 하지만 현대미술의 거대한 전환점이었던 신사실주의와 데이미언 허스트의 연작을 교차시키는 이번 기획은, 관람객으로 하여금 일상의 사물이 어떻게 예술적 성찰로 승화되는지 직접 확인하는 계기를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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