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경제위기 극복해야 할 때 물류 중단하고 산업기반 흔들어"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화물연대) 총파업이 엿새째를 맞은 29일, 정부가 시멘트 분야의 운송 거부자에 대한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했다. 화물연대에 업무개시명령이 발동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부는 총파업 이후 시멘트 출고량이 평소보다 90∼95% 감소해 전국 곳곳 건설 현장에서 공사가 중단될 것으로 보고 시멘트업을 업무개시명령 대상으로 정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오전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정부는 오늘 우리 민생과 국가 경제에 초래될 더 심각한 위기를 막기 위해 부득이 시멘트 분야의 운송 거부자에 대해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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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석열 대통령이 화물연대 집단운송거부 사태 관련 업무개시명령을 심의하기 위해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
윤 대통령은 “경제는 한 번 멈추면 돌이키기 어렵고 다시 궤도에 올리는 데는 많은 희생과 비용이 따른다”며 이같이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했다.
이어 “시멘트, 철강 등 물류가 중단돼서 전국의 건설과 생산 현장이 멈췄고, 우리 산업 기반이 초토화될 수 있는 상황”이라며 “국민의 일상생활까지 위협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국민의 삶과 국가 경제를 볼모로 삼는 것은 어떠한 명분도 정당성도 없다”며 “특히 다른 운송 차량의 진·출입을 막고 운송 거부에 동참하지 않는 동료에게 쇠구슬을 쏴서 공격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범죄 행위”라고 지적했다.
윤 대통령은 "경제 위기 앞에 정부와 국민 노사의 마음이 다를 수 없다"며 "화물연대 여러분, 더 늦기 전에 각자의 위치로 복귀해 주십시오"라고 호소했다.
업무개시명령은 운송 사업자나 운수종사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화물운송을 집단으로 거부해 국가 경제에 매우 심각한 위기를 초래하거나,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 국토교통부 장관이 내리도록 했다.
운송 사업자·운수 종사자에게 적용하는 업무개시명령은 2004년 화물차운수사업법을 개정해 처음 도입됐다.업무개시명령을 송달받은 시멘트 분야 운송사업자 및 운수종사자는 송달받은 다음 날 밤 12시까지 운송업무에 복귀해야 한다.업무개시명령을 내리려면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야 하며, 명령을 내리는 구체적 이유와 대책을 국회 상임위원회에 보고해야 한다.
업무개시명령에 정당한 사유 없이 복귀하지 않으면 운행정지·자격정지 등 행정처분뿐만 아니라 3년 이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 벌금 등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정부는 화물기사에게 업무개시명령서를 직접 전달하거나 우편·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전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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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9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조승환 해양수산부 장관, 방문규 국무조정실장, 윤희근 경찰청장 등이 배석한 가운데 열린 '화물연대 집단운송거부' 관련 관계부처 합동 브리핑에서 정부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
정부는 이날 국무회의 직후 화물연대 집단운송거부 관련 부처 합동 브리핑을 열고 “시멘트 분야 운송 거부자들이 복귀하지 않을 경우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 대응할 것”라고 밝혔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오늘 국무회의에서 국가 경제에 초래될 심각한 위기를 막고 불법 집단행동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 시멘트 분야 운송 거부자에 대한 업무개시명령을 심의·의결했다”고 말했다.
이어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힘을 모아야 할 때 화물연대는 자신들의 명분 없는 요구 관철을 위해 민생과 국민경제를 볼모로 잡아 물류를 중단시키고 산업기반을 흔들고 있다”면서 “불법 집단행동에 대해 엄정히 대응하지 않고 민생, 물류, 산업의 어려움을 방치한다면 경제위기 극복이 불가능하고 대한민국의 미래도 없다”고 말했다.
추 부총리는 “업무개시명령 발동에 따라 시멘트 분야 운송사업자 및 운수종사자는 운송 거부를 철회하고 운송 업무에 즉시 복귀해야 한다”면서 “복귀 의무를 불이행하는 경우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히 대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추 부총리는 "화물연대의 다른 불법행위에 대해서도 법과 원칙에 따라 단호히 대응할 것"이라면서 "불법적 운송거부와 운송방해 행위에 대해서는 일절 관용 없이 엄정히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온 국민이 함께 힘을 모아야 하는 엄중한 상황을 감안할 때 화물연대는 즉시 집단운송거부를 철회하고 현장에 복귀할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화물연대의 총파업 닷새만인 28일 화물연대와 정부 측인 국토교통부 간 첫 대화의 자리가 마련됐으나 서로의 입장차만 확인하고 빈손으로 돌아섰다. 첫 면담에서 노조는 안전운임제 대상 품목 확대를 요구했고, 정부는 수용 불가 입장을 재천명했다. 정부와 화물연대가 30일 다시 한번 대화에 나설 예정이지만 합의에 도달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안전운임제는 도로 안전을 위협하는 과로·과속을 막기 위해 화물 운전기사에게 최소한의 운송료를 보장하는 일종의 최저임금제로, 현재 수출입 컨테이너와 시멘트 등 2개 품목에 적용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대선공약으로 내건 제도로, 2020년부터 올해 말까지 한시적으로 적용하는 일몰제로 시행됐다. 화물연대의 일몰제 폐지 압박에 정부는 일몰을 3년 연장하되 품목 확대는 불가하다는 타협안을 냈으나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다 결국 파업에 이르게 됐다.
정부는 화물연대의 집단운송거부가 지속되면서 피해 상황이 점차 심각해지고 있다며, 육상화물운송분야 위기경보단계를 ‘경계’에서 ‘심각’으로 28일 올렸다.
정부는 위기 발생 때 '관심'→'주의'→'경계'→'심각' 4단계로 이뤄진 위기경보체계를 발동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29일 화물연대 총파업과 관련해 첫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하면서 “제 임기 중에 노사 법치주의를 확고하게 세울 것이며, 불법과는 절대 타협하지 않을 것”이라며 “불법행위 책임은 끝까지 엄정하게 물을 것”이라고도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지하철과 철도 부문의 연대 파업 예고에 대해서도 “연대 파업을 예고한 민노총 산하 철도·지하철 노조들은 산업현장의 진정한 약자들, 절대다수의 임금 근로자들에 비하면 더 높은 소득과 더 나은 근로 여건을 가지고 있다”며 “민노총의 파업은 정당성이 없으며 법과 원칙에 따라 단호하게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정부는 조직화 되지 못한 산업현장의 진정한 약자들을 더욱 잘 챙길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개선해 나갈 것”이라며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노동 개혁에 더욱 힘쓰겠다”고 말했다.
화물연대 파업으로 물류 운송 차질이 이어지는 가운데 서울교통공사 노조는 30일 사측이 제시한 대규모 인력감축안 철회를 요구하며 총파업에 나서기로 했고, 다음달 2일에는 전국철도노조가 인력 충원과 민영화 중단을 촉구하며 총파업을 예고한 상태다.
[메가경제=류수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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