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재 정선부터 김환기, 모네까지...동서양 막론 최고 작품 소장
이건희 삼성 회장이 평생 수집한 세계적인 예술품들이 베일을 벗고 국민 곁으로 다가오면서 소장품의 가치와 이 회장의 안목이 회자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장관 황희, 이하 문체부)는 28일 고 이건희 회장 유족들이 소장품 1만 1023건 약 2만 3000여 점을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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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왕제색도, 국보 제216호 [문화체육관광부 제공] |
‘세기의 기증’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최고의 가치로 평가받는 예술품들이 국민 품에 안기게 되면서 문화예술계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평소 이 회장이 문화예술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얼마나 깊었는지, 또 안목과 취향의 수준이 높고 넓었는지 이번 계기로 엿볼 수 있었다.
국립중앙박물관(관장 민병찬)은 총 9797건, 2만 1600여 점의 이 회장 소장품을 기증받는다.
이번 기증품 중에는 겸재 정선(1676~1759)의 ‘정선필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 국보 제216호)’, 현존하는 고려 유일의 ‘고려천수관음보살도(千手觀音菩薩圖, 보물 제2015호)’, 단원 김홍도(1757~1806?)의 마지막 그림인 ‘김홍도필 추성부도(秋聲賦圖, 보물 제1393호)’ 등 우리 문화의 진수를 보여주는 작품 등 국가지정문화재 60건(국보 14건, 보물 46건)이 포함돼 있다.
이외에도 통일신라 인화문토기, 청자, 분청사기, 백자 등 도자류와 서화, 전적, 불교미술, 금속공예, 석조물 등 한국 고고·미술사를 망라한 예술품들이 기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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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 천수관음보살도, 보물 제2015호 [문화체육관광부 제공] |
국립중앙박물관은 1946년 개관 이래 기증받은 예술품은 모두 5만여 점으로 이번 2만 점 이상 기증은 전체 기증 문화재의 약 43%에 달한다.
국립현대미술관(관장 윤범모)은 미술품 약 1226건(1400여 점)을 기증받는다. 김환기, 나혜석, 박수근 등 한국 대표 근대미술품 460여 점과 함께 모네, 고갱, 르누아르, 피사로, 샤갈, 달리 등 세계적인 거장들의 대표작들도 포함돼 해외에서도 화제다.
특히, 이중섭의 <황소>, 박수근의 <절구질하는 여인>, 김환기의 <여인들과 항아리>, 장욱진의 <소녀/나룻배> 등 최고 국내 작가 작품과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 호안 미로의 <구성>, 살바도르 달리의 <켄타우로스 가족> 등 세계 최고 작가의 회화가 대다수를 이뤘다. 또한 회화 이외에도 판화, 소묘, 공예, 조각 등 다양하게 구성돼 근현대미술사를 망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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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중섭 <황소> 1950년대 [문화체육관광부 제공] |
국립현대미술관은 1969년 개관 이래 이번 기증품을 포함해 현재까지 총 1만 200여 점의 작품을 수집했으며, 기증품은 5400여 점으로 이번 1400여 점 기증은 역대 최대 규모다.
문체부 측은 이번 이 회장 기증으로 우리 박물관‧미술관의 문화적 자산이 풍성해졌으며, 해외 유명 박물관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다고 평가했다.
미술관의 경우에는 그동안 희소가치가 높고 수집조차 어려웠던 근대미술작품을 보강하는 계기가 됐으며, 한국 근대미술사 전시와 연구에도 큰 역할을 할 것으로 정부 측은 기대했다.
또한 발굴 매장문화재가 대부분이었던 박물관 역시 우리 역사 전 시대를 망라한 미술, 역사, 공예 등 다양한 문화재들이 골고루 기증받아 고고·미술사·역사 분야 전반에 걸쳐 전시에 활용할 수 있게 됐다.
문체부 관계자는 “전국 13개 소속박물관 전시실을 비롯해 공립박물관·미술관의 순회전 등을 통해 국민들의 문화 자긍심을 높이고 문화 향유 기회 확대에 기여하며, 우수한 우리 문화를 해외에 알릴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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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끌로드 모네 <수련이있는 연못 Le Bassin Aux Nympheas>, 1919-1920 [문화체육관광부 제공] |
국민들은 상반기 안에 ‘이건희 컬렉션’을 만나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올 6월부터 대표 기증품을 선별해 ‘고 이건희 회장 소장 문화재 특별공개전(가제)’을 시작으로 유물을 공개할 계획이다.
또 내년 10월에는 기증품 중 대표 명품을 선별 공개하는 ‘고 이건희 회장 소장 문화재 명품전(가제)’을 개최한다. 13개 지방소속박물관 전시와 국외 주요 박물관 한국실 전시, 우리 문화재 국외전시 등에도 적극적으로 활용해 지역문화를 활성화하는 것은 물론 문화 강국의 이미지를 국외에 확산한다는 방침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오는 8월 서울관에서 ‘고 이건희 회장 소장 명품전(가제)’ 개최를 시작으로, 9월에 과천, 내년 청주 등에서 특별 전시 및 상설 전시를 통해 작품을 공개한다. 더욱 많은 국민들이 미술자산을 관람할 수 있도록 지역 공립미술관과 연계한 특별 순회전도 개최하고, 해외 주요 미술관 순회전도 진행해 한국 미술에 대한 국제적 위상을 높일 전망이다.
두 기관은 기증품의 이미지를 디지털화해 박물관과 미술관 누리집에 공개하고, 디지털 이미지를 활용한 주요 대표작 등을 국외 박물관과 미술관에 알릴 계획이다. ‘이건희 기증품’의 역사적·예술적·미술사적 가치를 조망하기 위한 관련 학술대회 등도 진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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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책 읽는 여인 La Lecture>, 1890년대 [문화체육관광부 제공] |
황희 문체부 장관은 “한국 문화예술계 발전을 위해 평생 수집한 문화재와 미술품을 기증해주신 고 이건희 회장의 유족분들께 감사하다”며 “국가지정문화재 및 예술성·사료적 가치가 높은 주요 미술품을 대규모로 국가에 기증한 것은 사실상 국내 최초이며, 이는 해외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의 대규모 기증 사례로 기록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서 “이번 기증은 국내 문화자산의 안정적인 보존과 국민들의 문화 향유권 제고, 지역의 박물관·미술관 활성화에 기여하는 것은 물론 정부의 다양한 문화 관련 사업의 기획과 추진에 있어 상승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메가경제=이석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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