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번가 "경영상 불가피한 구조조정... '정리해고' 최소화 방침"
[메가경제=주영래 기자] SK스퀘어의 자회사 11번가가 추석 명절을 앞두고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11번가가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정리해고 카드를 꺼낸 것은 창사 이래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11번가는 지속적인 영업손실로 재무구조 개선이 시급한 상황이라며 정리해고의 당위성을 강조했지만, 임직원들은 '기습적 처리'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1개월치 해고수당…5~10년차 대상 정리해고 나서
12일 메가경제 취재를 종합하면, 11번가는 최근 임직원들에게 정리해고 통지서를 전달했다. 해고 시기는 이달 30일이다. 11번가는 근로기준법 제24조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 조항을 정리해고 근거로 제시했다.
11번가의 이번 정리해고는 심각한 경영난이 배경으로 작용한다. 지난해 기준 누적결손금은 1633억원에 부채비율은 1261.7%며, 올해 2분기에도 102억원의 영업손실을 내 적자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올해 4월 신임 대표이사에 오른 박현수 최고사업책임자(CBO)는 취임 당시 "올해 수익성 개선을 가속해 전사 EBITDA(상각전영업이익) 흑자 달성으로 성공적인 턴어라운드의 발판을 마련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실적 개선은 요원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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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현수 11번가 대표가 명절을 앞두고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사진=11번가] |
11번가는 이번 정리해고 전까지 2023년 12월부터 2025년 8월까지 2년도 채 안 돼 총 5차례 구조조정을 단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회사는 특별휴직 도입과 사옥 이전, 복리후생 감축 등 경영 정상화를 위한 자구 노력에도 불가피하게 구조조정을 시행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업계 안팎에서는 경영상의 이유만으로 구조조정이 정당성을 보장받지 못한다는 시각이 짙다. 근로기준법상 정리해고를 단행하려면 해고 회피 노력이 반드시 선행돼야 해서다.
11번가 한 임직원은 "정리해고와 관련한 사전공지도 없이 추석을 앞둔 시점에 졸속으로 진행된 것"이라며 “해고 대상자들은 19일까지 인수인계를 완료하고 사원증과 법인카드, 노트북 등을 반납한 뒤 22일부터 30일까지 유급휴가를 받는다. 한 달도 안 돼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정리해고"라며 부당함을 주장했다.
특히 5~10년 차 직원들이 정리해고의 핵심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어 회사의 해고 회피 노력에 부합하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인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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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번가가 임직원에게 발송한 해고통지서. [사진=제보자] |
법원에서는 과도한 임원 보상이나 경영진 책임이 명확한 경우, 임원진 정리를 우선적으로 시도하지 않는다면 해고 회피 노력이 부족하다고 판단한다. 이번 11번가 정리해고 대상자들은 월급 1개월치 해고예고수당을 받는다.
11번가 임직원은 "정리해고는 모든 부서가 해당되고, 약 200명 정도를 감축할 것이란 소문이 돈다"며 "1차 대상자는 30명 정도로 예상된다"고 싸늘한 분위기를 전했다.
◆사측 "불가피한 구조조정, 최소 규모로 진행할 것“
다만, 회사 측은 이번 정리해고 대상자를 성과와 보상, 동료평가, 상벌이력, 근속기간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선정했다고 밝혔다. 근로자대표와의 협의를 거쳐 전사 인사위원회에서 최종결정한 사안이라며 졸속이 절대 아니라는 입장이다.
11번가 홍보팀 관계자는 "지속가능한 성장 기반을 확보하고자 장기간에 걸쳐 다양한 자구 노력을 해왔고, 보다 강도 높은 인력 효율화의 일환으로 9월 중 불가피하게 '최소한의 규모'로 구조조정을 시행하게 됐다"며 "11번가는 인위적인 인원 감축을 최소화하고 면담 절차를 성실히 이어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리해고 인원도 한자리 수 규모로 예상되며, 최소화 되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11번가 노조는 지난해 회사와 합의한 '2024년 단체협약서'를 비롯해 '고용안정 협약서'를 근거로 이번 정리해고의 부당성을 따질 계획이다.
지난해 3월 11번가 노조는 기자회견을 통해 "희망퇴직 시행 때 두 각자대표는 '추가 구조조정은 없다'는 입장이었지만, 팀은 해체되고 기존 인력은 분산 배치됐다"며 "팀이 해체된 인원은 갑작스럽게 물류센터로 발령됐다"며 회사 조치에 항의했다.
그러면서 "11번가는 애초부터 경영정상화에 관심이 없고, 진작부터 인위적인 인력 감축을 계획했던 것"이라며 "회사가 거짓말을 하면서 구조조정 단계를 밟아가고 있으니, 이를 저지하기 위한 투쟁에 임할 수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IPO 실패 후폭풍…매각돼도 7000억 상환부담
11번가가 대규모 정리해고를 급박하게 벌이는 이유는 IPO(기업공개) 무산의 거센 후폭풍이라는 분석이다. 11번가는 2018년 국민연금, 새마을금고, 사모펀드 H&Q코리아 등에서 5000억원의 투자를 유치하며 IPO를 추진했다.
당시 양측은 5년 내 IPO가 무산되면 최대주주인 SK스퀘어가 FI(재무적 투자자) 보유 지분을 되사오는 콜옵션을 행사하기로 약속했다. 또한 SK스퀘어가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으면 FI가 SK스퀘어 보유 지분까지 포함해 11번가 전체를 매각할 수 있는 '드래그얼롱(동반매도청구권)' 조항도 포함됐다.
하지만 SK스퀘어는 11번가의 수익성 악화에 지난해 9월이었던 IPO 기한을 지키지 못했다. 한때 SK스퀘어가 큐텐에게 11번가 지분을 교환하는 방안으로 매각이 검토됐지만, 양측이 합의점을 찾지 못하면서 없던 일이 됐다.
사정이 갈수록 안 좋아지자 지난해 말 SK스퀘어는 11번가의 콜옵션을 포기했다. 이후 FI인 H&Q코리아가 11번가 매각을 추진 중이다. 대주주가 경영권을 자진 포기한 사례로 투자자가 경영권 매각을 주도하고 있다. 결국 SK스퀘어 입장에서는 매각 주도권을 FI에게 넘겨준 상황이기에 11번가의 적자 폭을 줄이는 방안에만 골몰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설령 11번가가 매각되더라도 SK스퀘어가 부담할 금액은 천문학적 수준이다. SK스퀘어는 11번가 상장 실패로 약 2800억 원 규모의 드래그얼롱 손실이 추산된다. SK스퀘어가 기존에 FI에 줄 내부수익률(IRR)은 3.5% 수준(875억원)이지만, IPO 불발 조건인 8%(2000억원) 가산이 붙고 매수 가능한 콜옵션 행사를 거절하게 되면 상환부담은 총 700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11번가의 경영난이 실질적으로 모회사 SK스퀘어의 의사결정에 있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SK스퀘어는 지난 4월 아마존과의 제휴 조건 변경을 이유로 월 5000원 이하 'T우주 구독상품' 신규가입을 전면 중단했다.
이로 인해 11번가가 추진해온 우주패스 도입 계획에 차질이 빚어져 예상치 못한 피해가 발생했다.
하지만 11번가 측은 "우주패스 사업은 SK텔레콤이 주도하는 사업이며, 해당사업에 투입된 자금도 미미한 수준이라 경영난과는 거리가 있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본사 차원의 단기 수익성을 고려한 결정이지만, 자회사 입장에서는 예상치 못한 전략 수정에 큰 부담을 떠안게 됐다"며 "그룹 내 의사결정 과정에서 계열사 간 이해관계 조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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