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임 우선심사' 조항 삭제…행동주의 펀드 공세 의식했나
[메가경제=김형규 기자] KT&G가 차기 사장 선임 절차에 착수한 가운데 '최장수 CEO'인 백복인 사장의 4연임 도전 여부에 관심이 모아진다.
특히 KT&G는 2004년 이후 20년 만에 외부 인사를 후보군에 넣는 '개방형 공모제'를 채택하고, 현직 사장이 원할 경우 우선해 심사할 수 있는 '연임 우선심사' 조항을 없애는 등 그간 지적받은 방식을 개선했다. 하지만 이로 인해 백 사장의 재집권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시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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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복인 KT&G 사장 [사진=KT&G] |
KT&G는 지난 28일 차기 사장 후보 공개 모집에 나섰다.
KT&G가 밝힌 사장 후보 공개 모집 지원 자격은 담배 또는 소비재 산업(소비재 제조 및 유통업)에서 종사한 경험이 있거나, 기업의 대표 또는 이에 준하는 사업부의 손익 관리에 종사한 사람이다.
KT&G는 이번 차기 사장 선임 과정에서 공정성과 투명성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이번 사장 선임 절차는 관련 법령과 정관 등에 따라 약 3개월에 걸쳐 '지배구조위원회-사장후보추천위원회-이사회 보고 및 주총 승인'의 3단계 과정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KT&G 관계자는 "이번 지배구조위원회는 전원 사외이사로 구성돼 있다"며 "이사회에는 독립적인 의사결정을 위해 사외이사만 참석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세 번의 연임으로 9년간 KT&G를 이끈 백 사장은 내년 3월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다. 다만 추가 연임과 관련해서는 말을 아끼고 있는 모습이다. 이에 업계 일각에서는 대내외적으로 백 사장의 추가 집권을 반기지 않는 분위기를 의식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현 정부는 소유분산 기업(지분 분산으로 지배주주가 없는 이른 바 주인 없는 기업)의 '셀프 연임' 관행에 비판적인 기조를 드러내 왔다.
윤석열 대통령은 올해 초 금융위원회 업무 보고에서 소유분산 기업들의 지배구조 선진화를 강조한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 윤 대통령의 해당 발언 이후 구현모 전 KT 대표, 손태승 전 우리금융그룹 회장 등 소유분산 기업 CEO들의 연임 포기가 잇따르기도 했다.
또한 KT&G를 향한 행동주의 펀드의 공세 역시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플래시라이트 캐피탈 파트너스(FCP)는 백 사장 연임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힌 싱가포르계 행동주의 펀드다. FCP는 KT&G의 경영성과와 사장 선임 절차의 공정성 문제를 지적했다.
KT&G 매출은 지난 2016년부터 6년간 매출 증가를 기록하면서도 영업이익이 1조4701억원에서 1조2678억원으로 줄었다. 덩치만 키우고 수익성은 오히려 악화했다는 게 FCP의 주장이다.
특히 FCP는 KT&G의 사장 선임 절차 투명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KT&G 이사회는 지난 2018년 백 사장 연임 당시 후보 자격을 '전현직 전무 및 계열사 사장 이상'으로 한정해 논란을 겪은 바 있다. FCP는 사장이 연임을 바라고 있는 상황에서 같은 회사 임원이 후보로 선뜻 나서긴 어려울 것이라고 해석했다.
지난 2021년 세 번째 연임 당시에는 백 사장의 단독 입후보로 사장 선임 절차가 진행됐다. 이로 인해 당시 이사회에서 그를 최종 선임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11영업일에 불과했다.
FCP는 심지어 신입사원 채용 기간도 55일이 걸린다며 겨우 11일 만에 백 사장을 단독후보로 추대한 사실을 상식에 어긋난다고 꼬집었다.
아울러 지난 1일 FCP는 KT&G 이사회에 사장 후보 선임 절차를 개선해달라는 서한을 발송했다.
이에 업계 일각에서는 공정성을 강조한 KT&G 이사회의 이번 사장 선임 절차 개선이 FCP의 요구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유선규 FCP 상무는 이와 관련해 "서한의 요청 사항이 영향을 준 결과라고 생각하지만, 사측의 입장과 달라 단정 짓기 어렵다"며 "다만 주주제안이 반영되지 않은 점이 아쉽다"고 말했다.
FCP는 현재 ▲지난해 4분기 컨설팅 비용 260억원의 사용처 공개 ▲필립모리스인터내셔널(PMI)와의 전자담배 수출 계약서 조회 요구 ▲해외 사업의 매출, 영업이익(손실) 공개 등 주주제안과 관련해 KT&G와 법정 다툼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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