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차 통상임금, 노조 4223억 승소...마냥 웃을 수 없는 이유는?

조승연 / 기사승인 : 2017-08-31 15: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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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가경제 조승연 기자]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이다.
그런 만큼 밀린 임금에 정기상여금을 포함시켜 지급해야 한다.
노사 합의나 신뢰관계에 바탕을 둔 ‘신의칙’, 즉 신의성실의 원칙은 인정하지 않았다.
대법원 판례 취지에 따라 회사에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이 생긴다면 ‘신의칙’에 따라 노조가 밀린 임금을 청구할 수 없다는 회사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회사는 근로 노동으로 이미 이득을 봤기에 노조의 청구는 정의와 형평 관념에 위배되지 않다고 봤다.
다만 노조 측의 손을 들어주면서도 절충점을 찾았다.
통상임금을 산정하면서 노조 측의 요구액의 38.7%만 인정했다.
회사 측에 심각한 타격을 줄 정도는 아닌 임금 지급 수준이라는 것이다.


산업계가 노동계가 주목한 기아자동차 노조 통상임금 청구 소송 1심에서 법원이 이같은 판결로 노동자의 손을 절반은 들어줬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1부(부장판사 권혁중)는 31일 기아차 노동자 2만7424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1조926억원의 통상임금 청구 소송에서 "원금 3126억원과 지연이자 1097억을 합한 4223억원을 지급하라"고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이를 산술 평균하면 소송 참가자 1인당 평균 1543만원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기아차 노동자들이 2011년 10월 7일 소송을 낸 지 5년 11개월여 만의 1심 판결이다.


재판부는 노조 측이 요구한 정기상여금과 중식비, 일비 가운데 정기상여금과 중식비는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이를 근거로 노조 측의 청구액의 38.7%인 4223억 원을 인정한 것이다.


재판부는 “상여금과 중식대는 근로에 대한 대가로 지급되는 정기적·일률적·고정적인 임금으로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며 “노동자들에게 상여금과 중식대를 포함해 재산정한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 및 연차휴가수당의 미지급분을 지급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일비는 영업활동 수행이라는 추가적인 조건이 성취돼야 지급되는 임금으로 고정성이 없다”며 “수당 계산에서 근로시간 수 등 노동자들의 주장이 인정되지 않은 부분이 있고 휴일 근로에 대한 연장근로가산 수당 및 특근수당 추가 청구는 인정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번 기아차 노조 통상임금 소송에서 핵심 쟁점이 됐던 신의칙은 적용되지 않았다. 신의칙은 '권리의 행사와 의무의 이행은 신의에 좇아 성실히 해야 한다'고 민법에 규정돼 있다. 대법원은 2013년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해당된다”면서도 “회사의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을 발생시킬 경우 신의칙에 따라 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날 1심 재판부는 기아차 측이 주장한 경영상의 어려움은 인정할 근거가 없다고 판단, 신의칙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재판부는 “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에 의해 인정된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고 회사는 과거 근로로 생산한 이득을 이미 얻었다”며 “이번 청구가 정의와 형평 관념에 위배된다고 볼 수 없다. 노동자들이 마땅히 받았어야 할 임금을 후에 추가 지급돼야 한다는 점에만 주목해 '기업 존립'에 위협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못박았다.


이어 "회사가 인건비 절감을 위해 생산시설 해외 이전을 할 경우 국내 경제에 큰 위협이 될 수 있으나 가정적 결과를 미리 예측해 노동자들의 권리를 제한하는 것은 타당하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한 "노동자들이 경영상 어려움을 방관하지 않고 향후 노사협의를 통해 분할 상환 등 발전적 해결방안을 찾을 수 있어 기업 존립을 위태롭게 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도 강조했다.


당초 이번 1심에서 패소할 경우 3조원의 타격을 우려했던 기아차 측은 이날 입장 자료를 내고 “법원의 결정을 납득하기 어렵다. 청구금액 대비 부담액이 일부 감액되긴 했지만 현 경영상황은 판결 금액 자체도 감내하기 어려운 형편”이라며 “특히 신의성실의 원칙이 인정되지 않은 점은 매우 유감이며, 회사 경영상황에 대한 판단도 이해하기 어렵다. 즉시 항소해 법리적 판단을 다시 구하겠다"고 항소 입장을 밝혔다. 기아차 측은 1심 판결 결과에 따라 실제 부담할 잠정액을 1조원 내외로 예상했다.


이번 판결에 대해 노동계는 환영했지만, 재계는 법원이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하면서도 신의칙을 인정하지 않아 자동차 업계는 물론 산업계에 큰 타격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와 함께 유감을 표했다.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한 대법원 판례가 재확인된 판결임에도 ‘신의칙 인정’ 논쟁은 항소심에서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사건에 따라 심급에 따라 신의칙 해석과 적용이 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8일 고용노동부가 하태경 바른정당 의원에게 제출한 '통상임금 소송현황'에 따르면, 2013년 이후 4년간 전국 100인 이상 사업장 1만여곳 중 192곳에 대한 통상임금 소송이 진행되고 있다. 대법원에 계류 중인 사건만도 20건에 이른다.


대부분의 통상임금 하급심 소송에서 신의칙 적용 여부가 핵심 쟁점이 되고 있는데 대법원에 계류 중인 주요 통상임금 소송 사건만 봐도 엇갈린 판결이 드러난다. 아시아나항공, 현대중공업, 현대미포조선의 경우 1심에서 인정받지 못한 신의칙이 2심에선 적용돼 회사가 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 대법원의 최종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반면 한진중공업, 시영운수는 1,2심 모두 신의칙을 적용받았지만, 남부발전의 경우 1,2심 모두 신의칙이 부정됐다.


현대위아, 삼성중공업, 현대비앤지스틸, 현대다이모스 등은 1심에서 신의칙을 인정받지 못한 채로 항소심이 진행되고 있어, 기아차도 이와 같은 길을 걷게 됐다. 기아차 노조가 통상임금 소송에서 일부 승소한 1심 선고를 놓고도 마냥 웃을 수 없다. 이런 신의칙 적용의 불확실성 때문이다.


통상임금 소송에서 노측은 ‘노동으로 인해 회사가 누린 이득의 정당한 요구’라는 주장하고, 사측은 '경영상 어려움'이나 '기업 존립 위태' 등을 호소해야 하는 혼란 상황은 노동계나 산업계나 모두 소모전이 될 수밖에 없다.


노동, 산업계에서 초미의 관심을 모았던 기아차 노조 통상임금 소송을 계기로 신의칙 인정 여부에 대한 확고한 기준이 절실한다는 점이 재확인된 만큼 법리적, 사회적 합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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