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때 월남…가수로 시작해 방송계 진출...12개 음반도 발매
올 들어 입퇴원 반복…건강 부담에 최근 프로그램 하차 고민
장례는 대한민국방송코미디언협회장으로...발인은 10일
현역 세계 최고령 음악 경연 프로그램 MC인 방송인 송해가 향년 95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경찰과 의료계에 따르면 송해(본명 송복희)는 이날 오전 서울 강남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송해 측은 “식사를 하러 오실 시간이 지나서 인근에 사는 딸이 자택에 가보니 쓰러져 계셨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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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역 최고령 '전국노래자랑' MC인 방송인 송해가 8일 별세했다. 향년 95세. 경찰과 의료계에 따르면 송씨는 이날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 [KBS 제공] |
원조 ‘국민MC’로 온국민에게 흥을 불러온 송해는 최근에는 건강상 이유로 ‘전국노래자랑’ 하차를 고민하기도 했지만, 제작진과 스튜디오 녹화로 방송에 계속 참여하는 방안 등을 논의해왔다.
올해 들어 1월과 지난달 건강 이상으로 병원에 입원했던 고인은 지난 3월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확진되기도 했다.
송해는 1988년 5월부터 KBS 1TV ‘전국노래자랑’ MC를 맡아 35년간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대체불가’ 국민MC로서 매주 일요일 전국민들을 웃고 울게 만들었다. 가는 곳마다 젊은 오빠로 통했던 고인은 자신을 수식하는 수많은 말 중에 ‘오빠’가 가장 좋다고 했다.
고령으로 방송이 힘에 부칠 만도 했지만 한결같이 ‘전국노래자랑’ 무대를 지켰다. 1994년 4월부터 7개월 간 잠시 하차했던 것을 제외하고는 매주 전국 곳곳의 관객과 시청자들을 만났다. 특히 지난 4월에는 95세 현역 MC로 ‘최고령 TV 음악 경연 프로그램 진행자’(Oldest TV music talent show host)로 기네스 세계기록에 등재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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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는 '전국노래자랑' MC로 활약해온 송해가 '최고령 TV 음악 경연 프로그램 진행자'(Oldest TV music talent show host)로 기네스 세계기록에 등재됐다고 지난달 5월 23일 밝혔다. 사진은 인증서 들고 기념 촬영하는 송해. [KBS 제공] |
코로나19로 인해 ‘전국노래자랑’ 현장 녹화가 중단된 2020년 3월 이후로는 스튜디오 촬영으로 스페셜 방송을 진행하며 시청자들을 계속 만나왔다.
코로나19 확산이 완화됐지만 현장 녹화에는 영영 다시 서지 못했다. 지난 5일 2년여 만에 전라남도 영광군 법성포에서 현장 녹화가 재개됐지만 장시간 이동이 부담스러워 참석하지 못했다. 그러나 다음 녹화는 체력 상태를 봐가면서 진행할 예정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황해도 재령군 출신인 송해는는 ‘전국노래자랑’ 진행을 맡기에 앞서 가수이자 희극인으로서 활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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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09년 10월 25일 성남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제1회 대한민국 희극인의 날' 행사에서 핸드프린팅을 들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
한국전쟁 때 월남한 뒤 해주예술전문학교에서 성악을 공부한 경험을 살려 가수 활동을 하다 방송에 진출했다. 예명 송해는 실향민으로서 바닷길을 건넌 기억으로 ‘바다 해’자를 썼다고 한다.
1955년 유랑극단 ‘창공악극단’에서 가수 활동을 시작했고, MBC ‘웃으면 복이와요’에서 여성 코미디언 1인자 이순주와 콤비로 활약하며 이름을 알렸다. 코미디언 배삼룡, 구봉서 등과도 함께 무대에 서며 인기를 모았다.
송해는 또 특유의 구수한 입담으로 TBC(동양방송) 라디오 방송 ‘가로수를 누비며’를 17년간 진행했다.
송해는 한국 대중가요사에도 빠질 수 없는 큰 어른이었다. 생전에 가요 모음집을 비롯해 12장의 앨범을 냈을 정도로 출중한 노래 실력을 자랑했다.
1967년 가수 김상희, 배호 등과 함께 첫 가요 음반을 발매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음반에서 는 ‘노총각 맘보’, ‘피양체네’(‘평양처녀’의 평안도 사투리) 두 곡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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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15년 11월 22일 서울 중구 장충동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90세 헌정공연에서 가수 하춘화와 노래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
1980년에 발표한 ‘송해의 가요 산책’ 음반은 ‘짝사랑’, ‘울고 넘는 박달재’ 등 평소 고인이 즐겨 부르던 노래들을 담은 가요 모음집이었다. 1970년대 초반에는 특유의 유쾌한 말솜씨가 돋보이는 코미디 음반을 내놓기도 했다.
2011년에는 전국을 돌며 단독 콘서트를 열며 노익장을 과시하기도 했고, 이후 국내 ‘최고령’ 음반이라는 기록을 세워 모두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2018년 91세의 나이에 ‘딴따라’ 음반을 발매했고, 1년 뒤에는 ‘내 고향 갈 때까지’ 싱글 음반으로 자신이 갖고 있던 최고령 음반 취입 기록을 경신했다.
송해는 2017년 가수의 꿈을 갖고 있지만 어려운 환경에 있거나 기회가 없어 데뷔하지 못하는 지망생들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돕는 ‘송해 가요제’를 개최하기도 했다.
송해는 후배 연예인들이 술자리를 함께하는 걸 꺼릴 정도로 ‘원조 주당’으로도 유명했다. 10여 년 전부터는 기력이 떨어지면 방송에 지장이 있을까 봐 많이 줄였지만 “그것도 안 먹으면 인생이 적막하다”며 완전히 끊지는 못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이처럼 MC, 가수, 희극인으로서 전 국민들의 희로애락을 함께 해 온 송해의 인생은 지난해 11월 다큐멘터리 영화 ‘송해 1927’로 재탄생해 개봉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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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송해길의 모습. [서울=연합뉴스] |
송해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평생 안고 살았다.
1998년 금강산 관광단으로 고향 땅을 밟았을 때는 아이처럼 좋아했고, 2003년 ‘전국노래자랑’ 평양 편에서는 모란봉공원 평화정 앞 무대에 올라 ‘한 많은 대동강’을 부르며 “다시 만납시다”라고 안타까운 작별인사를 전했다.
송해는 부인 고향인 대구 달성군에 부부가 함께 묻히고 싶다는 바람을 생전에 밝혔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뜻을 기려 달성군은 송해공원을 조성했으며 지난해 12월 ‘송해 기념관’을 개관했다.
유족으로는 두 딸이 있다. 부인 석옥이 씨는 2018년 먼저 세상을 떠났고, 아들은 1994년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장례는 대한민국방송코미디언협회장으로 치러진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2·3호실에 마련되며, 이날 저녁부터 조문을 받는다. 발인은 10일이다.
[메가경제=류수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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