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정, '스노비시'로 영국인 꿰뚫어 본 관록의 센스

김형규 기자 / 기사승인 : 2021-04-14 11: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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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체험하며 익힌 높은 문화적 이해도와 언어 감각이 바탕

배우 윤여정의 지난 11일(현지시간) 제74회 영국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수상 소감 이후 ‘snobbish(스노비시)’라는 단어가 연일 대중에게 회자되고 있다.

유명 포털 검색창에 ‘snobbish’만 입력해도 ‘snobbish people(스노비시 피플)’이 연관 검색어로 자동 완성될 정도다. 

 

윤여정은 과연 ‘속물적인’, ‘고상한 체하는’, ‘우월감에 젖어있는’ 정도의 사전적 의미를 지닌 ‘스노비시’를 어떤 의미로 사용해 영미권의 권위적인 시상식을 들었다 놓았을까.
 

▲ 윤여정은 지난 11일(현지시간) 제74회 영국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영화 '미나리'로 한국 배우로는 처음으로 연기상(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당시 시상식에서 센스있는 영어 소감을 밝혀 전세계적인 주목을 끌었다. [사진=연합뉴스]

우선 이 단어의 명사형인 ‘snob(스놉)’은 ‘고상한 체하는 사람’, ‘속물’을 의미한다. 여기서 파생한 ‘snobbish‘는 사전적으로는 ‘속물스러운’, ‘젠체하는’, ‘아는 척하는’, 등의 뜻이 된다.

실제 영미권에선 이보다 ‘snobbism(스노비즘)’ 혹은 ‘snobbery(스노버리)’의 형태로 더 자주 쓰인다.

‘스노비즘’은 ‘지적 허영’이라는 사전적 의미로, 소위 말하는 ‘아는 척’에 가까운 뉘앙스다.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주로 부정적인 뜻으로 많이 쓰인다.

반면 조금 더 주목해봐야 할 표현은 ‘스노버리’다.

화제의 단어 ‘스노비시’가 바로 이 ‘스노버리’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스노버리는 사전적 의미인 ‘속물근성’, ‘우월 의식’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굳이 한국식으로 해석하자면 ‘고상함’과 ‘고상한 척’, 그 중간에 위치한다.

기자가 영국 유학 시절 만났던 영국인들을 떠올려보자면, 엄밀히 그들은 그 둘을 굳이 구분하지 않는다. ‘고상한 척’도 ‘고상함’이라고 여긴다. 내면을 중시하는 동양의 정서와 달리 서양에선 행동이 곧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개봉한 SF 영화 ‘테넷’은 영국 출신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작품이다.

작중 미국인 주인공(데이비드 워싱턴 분)이 고급 수트를 권하는 영국인 조력자(마이클 케인 분)에게 ”영국인들만이 모든 고상함을 독점하고 있는 건 아니죠“라고 하자, 영국인은 ”독점은 아니야. 지배지분 정도라고나 할까“라고 답하며 뿌듯해하는 듯한 미소를 짓는다.

해당 대사에서 ‘고상함’으로 쓰인 단어는 ‘snobbery(스노버리)’다. 이 단어가 영국인들에게는 우리의 사전적 의미인 ‘속물근성’과 다소 다르게 해석된다는 점을 잘 보여주는 예다.

윤여정이 수상 소감에서 영국인을 빗대 “노운 애스 베리 스노비시 피플(known as very snobbish people)“이라고 과감히 표현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런 언어적 정서를 온전히 이해한 그녀의 관록과 감각이 크게 자리한다.

그렇기에 그녀가 이날 발언한 ‘snobbish’는 칭찬도, 과한 비아냥도 아닌 ”그 고상하신“ 정도의 일침 섞인 유머로 전달될 수 있었고, 좌중을 사로잡았다.

윤여정이 과거 미국 생활 경험으로 유창한 영어 실력을 갖추고 있다는 점은 이미 유명하다.

하지만 우리말을 잘한다고 한국인 모두가 웃기지 않듯, 영어를 단순히 잘할 뿐만 아니라 유머까지 구사할 수 있다는 점은 윤여정의 개인적 능력이다.

tvn의 관찰예능 ‘윤식당’ 시리즈와 ‘윤스테이’를 통해 외국인들을 차분한 영어 몇 마디로 박장대소하게 만드는 그녀의 유머감각을 확인할 수 있다.

이에 더해 윤여정이 기자회견에서 밝혔듯 그녀는 10년 전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펠로십 참여를 통해 영국 생활과 문화를 직접 체험한 바 있다.

수상 소감에 앞서 정중히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부군 필립 공에 대한 애도를 표한 그녀의 태도 역시 이러한 문화적 이해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지난 9일 99세로 세상을 떠난 ‘에딘버러 공작’ 필립 공은 영국 여왕의 부군이 되기까지 겪은 파란만장한 유년시절과, 70년 가까이 묵묵히 여왕의 곁을 지킨 신뢰 덕에 영국인들에게 많은 존경을 받아왔다.

윤여정이 이러한 문화적 존중으로 그들의 마음을 먼저 열어놓았기에 잇따른 촌철살인의 수상 소감에도 영국인들은 환호할 수 있었을 것이다.

 

[메가경제=김형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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